조정석이 좋다. 안 잘생겼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남자다. 암튼 저 말은 약간 내가 욕 들어먹기 좋은 표현인데, 만약 조정석이 잘생겼어도 지금처럼 인기가 많았을까? 안 어울리는 예를 하나 들자면, 애인에게 나는 종종 묻는다. “나 정도면 잘생긴 거야?” 애인은 “응”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십 번 물었지만 한 번도 “응”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귀여워. 나 귀여운 남자 좋아해.” 이게 조정석이 인기 있는 비결이다. 귀엽다.
물론 정우성도 인기가 많고 당연히 차은우도 인기가 많다. 음, 조정석보다 더…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인기는 많다. 하지만 조정석에겐 특별한 매력이 있단 말이지. 그게 뭘까? 조정석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문장이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은 그냥 조정석 같다. 이익준이 조정석을 연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연기를 너무 잘해서,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느끼게 된다기보다, 음, 그건가…? 천의무봉의 솜씨라 바느질한 티가 안 나는 뭐 그런 거?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자. “야, 너도 영어 할 수 있어”라고 말한 게 조정석이 아니라 이익준이라고 한다면, 이상할까? 이익준이 ‘야너두’ 광고를 찍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이건 연기가 아니라 삶 같은, 정석이가 익준이고 익준이가 정석인 거, 아닐까? 연기의 기능에 대한 게 아니라, 바람이나 물처럼 흘러가는 것. 조정석은 바람 같고 물 같다고 적으면 쓸데없이 철학적이지만 그렇게 가뿐하고 경쾌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20~30대는 희망을 얻었다. 뜬금없이 무슨 희망? 그것은 굉장한 설득력을 지녔다. 위에서 언급한 한마디. 야, 너도 영어 할 수 있어! 나는 그 설득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약간의 공백 뒤에, 따뜻하고 친근한 인상으로 건넨 한마디에 나는 39년간 꿈도 꿔보지 못한 새로운 언어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정말 나도 할 수 있을까? 다시 뜬금없게도 그 한마디에서 사람들이 느낀 건 단순하게, 아 그래? 나도 영어 할 수 있다고? 개이득, 정도의 희망이 아니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영어든 수학이든, 취업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성공이든 부귀와 영화든, 소박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꽤 울림 큰 언어였다. 지친 저녁 별 생각 없이 TV를 켰는데 귀여운 정석 오빠 형 동생이 나와서 할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20~30대만이 아니라 40대인 나도 가능성을 선물받은 것 같았다. 내 친구 정석이한테. 친구? 정석아, 우리 동갑인데 친구라고 해도 되겠니? 그러니까 조정석은 직업은 배우이나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 같다. 지금 전 국민이 다 속고 있는 거야. 조정석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핵심은 ‘따뜻하고 즐거운’일 거 같다. 조정석은 얼굴 찌푸리게 하는 법이 없다. 일단 남자 연예인이 문제 일으키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여자와 관련된 건데, 결혼, 했다. 잘 산다. 배우자는 실력을 인정받는 뮤지션이다. 평판, 좋다.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존중받는 직업인의 삶을 살고 있다. 구설수, 없다. 그리고 조정석은 대체로 따뜻하고 즐거운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조정석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칼럼니스트로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만, 저 위에서부터 쭉 적고 있는 바와 같이, 조정석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어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역할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좋은 사람인지 어떻게 아냐고? 모르지. 그런데 우리 다 그렇게 느끼고 있잖아. ‘고맙게도’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고맙게도 그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조정석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관심이 없다. 연기를 잘하지만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 배우가 많으니까, 역설적으로 연기는 그저 기능의 하나일 뿐이라고, 이 글에서만은 우기고 싶달까. 누군가를 좋아할 이유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흔히 조정석 같은 배우에 대해 동네에 한 명 있을 것 같은 적당히 귀엽게 생긴 편안하고 착한 오빠 혹은 형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동네에 그런 오빠 있어? 없다. 현실에 있을 거 같은데 은근 없는 캐릭터. 딱 이 지점이 매력적이다.
한 가지 문제가, 정말 문제 아닌 문제가 있다. 질린다. (자, 팬분들 화부터 내지 말고 끝까지 읽으세요!) 캐릭터가 제한적이라고 해야 하나?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도 <오 나의 귀신님>에서도 모두 다른 역할을 맡았는데 모두 다 조정석 같다. 뭘 하든 조정석이 조정석 하는 느낌. 갑자기 악역을 맡거나 음, 마블에 캐스팅되면 안 질리려나? 그래도 질릴 거 같다. 나는 조정석이 연기하는 악당에게서 조정석류의 인간적 고뇌를 느낄 것 같고, 화려한 마블 캐릭터 속에서, 아 이건 너무 뜬구름 잡는 예인 거 같으니 없던 걸로. 아무튼 무엇을 연기하든 조정석은 조정석이겠지? 그리고 방금 말했듯 동네에 있을 법한 청년이니 질리는 게 당연하다.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이런 글은 대체로 끝이 훈훈해야 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거듭, 동네에 이런 오빠는 없다. 평범하고 귀엽고 깔끔하게 생겼는데 착하고 매너 좋고 재밌고 푼수 같으면서도 세련된 오빠가 어딨어?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거. 그래서 안 질린다. 질릴 거 같은데 안 질린다. 뭔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미세한 변별력 같은 것. 미세해서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숨을 내쉬었다면 진부했을 텐데, 하나 두울 하는 순간 숨을 내쉬어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 뭐 이런 작은 차이.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조정석의 리듬이랄까. 비유가 아니라, 그것은 마약 같아서 남녀노소 중독될 수밖에 없다고 적으면 진부할까? 뭐 어쩔 수 없지. 그러니 나는 여기 한마디 더 적어둔다. 조정석 님, 부탁드립니다. 이미지 변신하지 마세요. 악역 하지 마세요. 계속 따뜻하고 즐거운 역할 해주세요. 모두 닮은 조정석도 모두 다른 조정석이에요. 그리고 동네에 정말 당신 같은 이웃이 있다면, 아, 말도 안 돼, 절대 질릴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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