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뮤직비디오 장인’
권용수 감독
SuperM ‘호랑이’, NCT DREAM ‘Ridin’, 위너 ‘SOSO’, 로제 ‘Gone’ 등 화려한 필모그래피의 아이돌 뮤직비디오 메이커, 알고 보면 어릴 적부터 빅뱅과 투애니원에 열광하며 자란 아이돌 ‘성덕’. 오리지널리티의 힘을 믿고, CG를 쓰기보단 로케이션을 찾고 세트를 짓고 빈티지 렌즈를 쓰는 게 좋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협업이라는, ‘요즘 애들’ 같지 않은 권용수 감독의 고집과 평화.
사카린은 설탕보다 백 배 달다. 그래서 ‘사카린 필름’이라는 사명을 지었다. “우리랑 일했을 때 ‘달달’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이번 달이 창업한 지 딱 1주년 되는데 찾아주셨네요.” 풋풋한 이름에 깜찍한 간판, 스타워즈 레고와 피겨들이 놓인 프로덕션 사무실만 보면 이제 갓 일을 시작한 신인의 사무실을 열어본 듯하다. 그런데 한쪽 벽에는 위너, 블랙핑크, 아이콘, TREASURE 등 쟁쟁한 아이돌들의 사인과 메시지가 적힌 앨범들로 가득하다. 예사 사인 앨범은 아닌 것이, 권용수 감독에 대한 구구절절한 감사함과 고마움, 덕담까지, 사인은 거들 뿐 거의 편지들을 써놨다.
이쯤 되면 알 수 있다. 권용수 감독은 젊은 나이와 풋풋한 외모와는 달리, 일찍이 일을 시작해 조연출 경험까지 통틀어 업계에서 10년 일한 베테랑이다. 2018년 입봉 후 3년 간 그가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아티스트들은 SuperM, NCT DREAM, 블랙핑크 로제, WINNER, 아이콘, TREASURE , 악동뮤지션 등등. 주로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작업하는 그는 어릴 적부터 아이돌을 사랑해온 ‘성덕’이다. “아이돌을 진짜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빅뱅과 투애니원에 열광하며 자란 세대거든요. 아직도 촬영장에서 아이돌이 퍼포먼스와 립싱크를 하는 걸 보면 심장이 엄청 뛴다니까요. 합이 잘 맞아 제 의도대로 순간이 담길 때면 모니터를 보고 소리를 지르기도 해요. 아티스트도 제 그런 리액션을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아이돌을 사랑하는 만큼 권용수 감독의 뮤직비디오는 예쁘다. 속된 말로 때깔이 좋다. 그는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3요소로 ‘얼굴, 춤, 립싱크’를 꼽는다. “얼굴을 잡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각’이에요. 멤버마다 고유한 ‘뷰티 포인트’를 찾아, 최적의 얼굴 각에 맞춰 조명을 쓰고 앵글을 잡죠.” 얼굴을 예쁘게 담았다면 퍼포먼스를 담을 순서다. “퍼포먼스를 잘 찍으려면 그만큼 안무를 잘 알아야 해요. 전 동작을 실제로 해보고 익히며 파악하는 편이에요. 물론 잘 추진 못하지만.”(웃음)
비주얼과 퍼포먼스만큼 중요한 게 립싱크다. “립싱크에선 입모양만 쓰기보다 액팅과 제스처, 퍼포먼스가 살아야 해요. 그 상황에서 아티스트의 능력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게 감독의 역할이죠. 밥하고 간장만 있으면 숟가락도 안 들고 싶잖아요? 여러 반찬을 차려놓고 풍부한 연기를 끌어내야죠.” 연차에 비해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뮤직비디오를 자주 연출한 비결은 멀리 있지 않다. “아티스트가 더 좋은 상황에서 몰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요. 제 개성은 특이한 비주얼라이징이 아닌 성격인 듯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최선을 이끌어내는 것. 저도 아티스트도 클라이언트도 만족스러운 작업을 지향하거든요.”
오랜 조연출 경력과 입봉까지 정통적인 길을 밟았고, ‘요즘 애들’과는 영 다른 권용수 감독은 오리지널리티의 힘을 믿는다. CG보다는 진짜 세트, 특수효과에서 오는 직접 찍은 장면들을 더 사랑한다. “요즘 트렌드는 후반 작업을 많이 하는 거예요. 이젠 세트를 직접 제작하기보단 CG로 대체하는 게 단가가 더 싸졌거든요. 그런데 전 CG보다 여전히 실제로 하는 게 좋아요. 진짜를 찍었을 때 더 와 닿거든요. 스케일이 큰 위너 ‘SOSO’요? 그것도 다 세트 만들고 로케이션 찾은 거예요. 스케일이 큰 촬영에서도 CG를 잘 쓰지 않는 편이고, 빈티지 렌즈를 자주 써요. 일반 렌즈보다 질감과 밀도감이 좋죠.”
후반 보정으로 만든 것보다 처음부터 그렇게 찍힌 것이 더 아름답다고 믿는 권용수 감독은 점점 더 짧아지는 영상 문화에 할 말이 있다. “요즘엔 3분도 길어요. 1분 안에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죠. 요즘 쏟아지는 트레일러, 티저 영상은 결국 1분짜리 아티스트 브랜드 광고라고 볼 수 있어요. 짧은 시간에 농축된 내러티브를 담는 게 중요해요. 그러나 결국엔 타이틀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 위한 빌드업이기 때문에 여전히 뮤직비디오는 가장 중요하고 묵직한 한 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그의 꿈은 포토그래퍼였다. 하지만 “사진은 순간을 포착하고 영상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이기에,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매혹돼 영상을 택했다. 그래서 권용수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가사다. 위너 ‘SOSO’는 ‘그냥 그저 그런 밤이야’라고 덤덤히 노래하지만, 뮤직비디오에선 멤버마다 각자의 외로움을 사막, 눈을 가린 이들의 파티, 나신의 자신들이 둘러싼 거울 공간 등 초현실적 이미지로 구현해 고독에 뼛속까지 다가선다. 영상이 노래를 확장하는 경우다. “가사를 듣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으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생각해봤어요. 멤버마다 외면, 내면의 두 가지 상황을 설정했고, 이승훈 씨는 벌거벗겨진 듯한 마음을 표현하는 설정으로 전라 노출 연기를 감행해줬어요. 제가 연출한 작품 중 가장 애착을 지닌 작품이죠.”
영상의 시대에 권용수 감독이 가장 두드러지게 느끼는 현상은 “뮤직비디오 감독이 CF를 찍고, 영화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찍는 확장성”이다.(그의 사카린 필름에도 광고와 바이럴 필름, 행사 영상을 전문으로 하는 피디가 있다.) “언젠가는 드라마 감독을 해보고 싶어요.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같은 것. 하지만 어느 분야에서도 1등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은 없어요. 그냥 오래오래 이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죠. 업계의 트렌드 변화가 워낙 빠르다보니 이 직업은 수명이 짧고 나이가 들면 감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는데, 전 가능한 이 일을 오래 하고 싶어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내는 것 역시 늘 같은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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