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나>와 오혁의 지난 만남은 2019년 10월이었어요. 그 사이에 세상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네요. 팬데믹이 당신에게 가져온 영향으로 가장 먼저 언급할 만한 건 뭘까요?
이 상황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아주 당황스럽긴 했어요. 아무래도 오랜 시간 동안 준비해온 프로젝트가 있었고, 그것을 매개로 또 파생될 프로젝트들이 쭉 있었어요. 모든 게 한꺼번에 취소되면서 혼란스럽긴 했죠. 하지만 이제 시간이 좀 지났고, 이런 환경에 적응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속에서 제 패턴도 찾아가고 있는 것 같고요.
그 프로젝트가 뭐였는지 물어도 될까요?
혁오의 월드 투어를 기반으로 한 여러 프로모션과 공연들이었어요.
스트리밍을 통해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실제 무대 위에서 수많은 관객과 호흡하는 느낌. 그 감흥이 그리울 것 같아요.
굉장히 그립죠. 직접적으로 그 에너지를 느낀 지가 오래된 것 같아요. 사실 그런 무대의 영향을 받아 곡이 만들어지는 것도 있거든요.
우리가 만났을 때만 해도 앨범 작업 중이었고, 만나지 못한 2020년에 혁오의 EP 앨범 <사랑으로>가 발매되었어요. 그 앨범 이야기를 잠깐 해야 할 것 같아요. 왜냐면 저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이 기대하던 혁오의 사운드가 아니었기 때문이죠. 되려 조금 더 ‘인디’스러워졌다고 할까요?
맞아요. 그 앨범은 의도된 대로 나온 결과예요. 당시에는 과거의 혁오 음악보다는 그 순간에 더 집중하고 싶었거든요. 그때 제일 집중한 부분이 ‘덜어내는’ 작업이었어요. 최대한 간결하고, 있어야 할 것만 있는 형태로 앨범을 만들어보자. 이런 접근에서 시작했고, 결과물이 과거와 다르게 나왔던 것 같아요.
의식적으로 혁오의 음악에 뭔가가 많다라고 생각하고 빼기 시작한 걸까요?
처음 생각은 ‘힘주어 부르는 게 재미 없다’는 것이었어요. 곡을 만들 때 이 타이밍에서는 힘을 이렇게 주고, 고음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는 전개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과거에는 참았던 에너지를 분출하는 식의 전개였는데, 그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어요. 자연스럽게 더 재미있는 게 무엇일까를 찾다 보니 음악적으로 간결함을 선택하게 됐어요. 또 당시에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가 ‘사랑과 행복을 찾는 법’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사랑으로> 앨범으로 이어진 거죠.
최근에는 밴드 작업보다는 개인 활동을 좀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멤버들의 개인 사정이 있어 혁오 활동보다는 오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자연스럽게 각자 개인 활동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 시기인 듯해요.
그럼 오혁은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서로 컬러가 맞는 뮤지션들의 곡에 피처링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결과물은 시기에 맞춰 나올 예정이구요.
<사랑으로> 앨범 속 ‘Help’는 이디오테잎, ‘Silverhair Express’는 장기하의 리믹스 싱글로 다시 선보였어요.
앨범을 만들 때부터 기획한 프로젝트였어요. 아무래도 곡 작업을 할 때부터 심플하게 접근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구조와 뼈대만 있는 곡을 다른 분들이 재활용해 다른 방식으로 생산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던 거죠. 앨범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진행한 프로젝트였어요. 아직 리믹스 프로젝트가 하나 더 남아 있어요. 그게 발매되면 완료되는 거예요.
요즘 음반 시장은 피지컬 앨범으로는 CD보다는 바이닐 레코드가 더 각광 받는 것 같아요. 혁오도 바이닐 레코드를 기획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아날로그가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많은 뮤지션들이 바이닐 레코드 프레싱을 시도하고 있어요. 그래서 공장 스케줄 잡기가 어렵대요. 혁오의 앨범들도 이왕 내는 거 제대로 내려고 해요. 퀄리티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죠. 지금 당장 주문이 들어가도 내년 하반기에나 나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계획 중이긴 해요.
엄청난 바이닐 레코드가 되겠군요. 빨리 나오길 고대하겠습니다. 일전 저희와의 인터뷰에서 책도 좋아하지만 당시엔 영화를 많이 본다고 했어요. 요즘도 그래요? 아니면 오혁만의 또 다른 관심사가 생겼나요?
굳이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여전히 영화를 습관적으로 더 많이 봐요. 최근 관심사는 하이파이 오디오 쪽이에요. 공부를 좀 하고 있어요.(웃음)
어떤 계기로 오디오 쪽에 관심이 높아졌어요?
스튜디오에 가면 어찌 됐든 기본 이상의 사운드를 들을 수 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소리 자체가 재미 없다는 걸 작년 말쯤부터 느꼈어요. 항상 비슷한 느낌으로만 들린다고 할까요.
스튜디오라면 대부분 최신 기종으로 세팅되어 있을 텐데요. 너무 좋은 기계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식상했나요?
그냥 모니터 스튜디오 세팅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에 약간 싫증이 났나 봐요. 그러던 와중에 밴드 기타리스트인 친구와 비슷한 시기에 하이파이 오디오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같이 공부하면서 들어봤는데 많이 다르더라고요. 제가 평소에 음악을 듣던 사운드랑, 그 기기로 들었을 때 말이에요.
하이파이 오디오라는 표현은 스피커, 앰프 등을 말하는 거겠죠?
개인적으로는 빈티지 오디오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 좋다는 기준은 너무 다르잖아요. 제가 녹음할 때는 아날로그 장비를 꽤 많이 사용했는데, 그런 장비로 음악을 들을 생각을 해보진 않았던 거죠. 그런데 들어보니 그 맛이 굉장하더라고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럼 현재는 이 기기, 저 기기를 사용해보면서 취향을 찾아가는 시기겠네요.
맞아요.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싶어서 특히 국가별로 다른 성향을 체험해보고 있어요. 독일에서 만드는 제품들의 특징이 분명 있고, 미국, 영국 브랜드의 성향이 있어요. 조금씩 다른 그 소리들을 비교해보고 있어요.
오혁이 수차례 경험해보면서 현재 가장 근사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조합은 무엇일까요?
현재 제가 사용하고 있는 조합은 ‘린(LINN)’이라는 브랜드의 영국산 70년대 스피커, ‘네임(NAIM)’이라는 영국 브랜드의 앰프예요. (자신의 모바일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며) 사이즈는 생각보다 작아요. 이렇게 공부해보고 있어요.
오혁의 새로운 취미를 엿들어서 재미있었어요. 각설하고, 영화도 여전히 많이 본다고 했잖아요. 요즘은 어떤 장르를 많이 봐요?
과거에는 장르를 좀 가려서 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진짜 필요한 장르를 찾아보는 것 같아요. 제가 영화를 보는 건 단순한 취미라기보다는, 일종의 ‘인풋’ 개념이에요. 어떤 내러티브가 필요하고, 또 어떤 이미지를 상상할 때 필요한 정보인 거죠.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필요할 때 꺼내어 변용하는 자료들인 거네요?
맞아요. 참고 자료랑 비슷한 거 같아요.
숱하게 많이 본 영화들이 오혁의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인가요?
네. 저는 이미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어떤 이미지들을 가지고 생각을 계속 이어가는 것. 그 이미지들이 결과물에 많은 영향을 미치거든요.
어떤 감독의 어떤 작품이 오혁의 음악 작업에 영감을 주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사랑으로> 앨범 제작 당시에는 스파이크 존즈(<그녀> <존 말코비치 되기> 등 연출), 테리 길리엄(<브라질> <피셔 킹> <12 몽키즈> 등 연출)의 영화들을 많이 봤어요.
그들의 영화를 본 이유는요?
그들은 사랑이라는 본질을 잘 다루는 감독인 것 같아요. <그녀>라는 영화를 본 분들이 많을 텐데요. 저도 그 영화를 진짜 여러 번 봤어요. 앨범 작업을 하는 동안.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에도 관심이 많은 걸로 알아요. 오늘은 보테가 베네타의 옷을 입고 촬영했어요. 오혁의 패션 레이더에 보테가 베네타도 있었나요?
물론 브랜드의 존재는 당연히 알고 있죠. 그럼에도 2~3년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눈이 가진 않았어요.
그럼 현재는 꽤 관심이 가는 브랜드라는 말이네요. 그 시기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가 자리한 시기 즈음인데요.
그를 잘 알지는 못해요. 하지만 그가 맡으면서 보테가 베네타가 아무래도 수면 위로 급부상한 것 같긴 해요. 그러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요. 지켜보면서 잘하고, 좋은 것 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 (촬영 직전 본인 스타일에서) 본인이 소속된 크루 ‘다다(多多)’의 볼캡을 착용하고 있는데요. 다다를 크루라고 부르는 게 맞나요, 브랜드인가요?
다다는 원래 멀티 플랫폼으로 시작했어요. 여러 브랜드랑 협업을 통해 결과물을 내는 그런 플랫폼이었죠. 지금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어요.
다다는 몇 명이 모여 있는 공동체인지 궁금해요.
총 6명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저를 포함해 포토그래퍼, 비디오그래퍼, 운영자, 디자인 및 영상 담당자, 매니저. 이렇게요.
구성원이 패션보다는 콘텐츠 기반의 멤버들이네요.
다다는 주종이 패션이기보다는 모든 분야에 다 열려 있어요. 현대미술 작가인 김희천 님과도 작업을 했고요.
최근 많은 뮤지션 및 배우들이 자신의 크루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유아인도 그렇고, 빈지노도 그렇고요. 요즘은 ‘부캐’ 시대잖아요. 오혁도 본업은 음악가인데, 다다를 통해 어떤 걸 풀어내나요?
말 그대로 음악 외적인 부분을 모두 다다라는 플랫폼으로 해소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평소에는 하기 어려운 작업들을 다다와 연계해서 하기도 하거든요.
지난번 만남 때에 패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 다카하시 준, 마틴 로즈 등과 가끔 연락하고 지낸다고 했어요. 만나기도 하고요. 현재는 그런 직접적 만남이 부재한 상황이에요. 어떻게 그들과 소통하나요?
제가 연락을 직접 하지는 않아요. 원래 누구와도 그리 자주 연락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하하. 그럼에도 SNS 다이렉트 메시지나 스냅챗 등의 메신저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누긴 해요. 시대 상황이 그런 만큼 ‘잘 살고 있어요?’ 같은 대화를 나누죠. 서로가 동시대 속에서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있는지 등에 대해. 신세한탄 같은 거죠.
오프화이트의 버질 아블로와도 인연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오혁이 관심을 갖는 패션 스타일이 따로 있나요?
사실 요즘은 관심이 좀 줄어든 것 같아요. 아마도 팬데믹 상황이 가져온 무관심일 듯한데요. 말 그대로 옷을 차려입을 일이 별로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시선도 좀 바뀌는 것 같아요. 원래는 옷 자체를 좋아해서 일상복, 아카이브 하기 좋은 옷, 공연용 의상 등으로 분류하면서 공부도 하고 구입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일 자체가 줄었으니 관심도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 같아요.
코로나19가 야기한 팬데믹은 여전히 진행 중이에요. 언제 종식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죠. 그 시작과 함께 아쉽게도 혁오의 활동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어버렸죠. 그렇다면 이제 뮤지션 오혁의 향후 활동 계획을 좀 알려줄래요?
아까 말한 작업들 빼고 크게 계획은 없어요. 그래도 올초에 스스로 한 해 계획을 세워보긴 했어요. 그때 생각했던 게 제가 오혁이라는 이름으로 아직 앨범을 한 번도 낸 적이 없더라고요. 제 이름으로 좋은 음악을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는 말이에요. 하하.
아, 신선한 계획인데요. 구상 중인 작업인가요?
사실 구상은 계속 하고 있었죠. 하지만 앨범이 언제 나올지는 몰라요.
마지막으로 백신 접종률이 점차 높아지면서 해외여행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어요.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다시 재개된다면 제일 먼저 어디로 날아가고 싶어요?
딱 지금의 날씨라면 베를린이 좋지 않을까 해요. 베를린에 탬펠호프라는 공원이 있어요. 원래는 공항이었는데 공원으로 만든 공간이죠. 그냥 그 공원에 현재의 날씨 속에 앉아 있고 싶어요.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