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죽이기> 테이크아웃마인드
불운한 삶이 주는 슬픔을 대체할 수 있는 건 뭘까.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해수의 운은 그때 이미 소진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이테 같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친척에게 유린당했던 그녀는 자살을 상비약으로 지니고 다녔다. 저자 ‘해수’는 <연필로 죽이기>에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겪었던 처참한 경험들을 활자로 풀어냈다. 당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고 지금까지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해수는 자신이 느꼈던 우울증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울은 나의 증명이자 내 존재의 고통을 잠시나마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게 해주는 감정 동력기.” 어쩌면 해수는 무게로 측정할 수 없는 고통과 울음을 그저 함께 공감해주는 것에 그치기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슬프고 야하고 다정한> 사는재미연구소
표지에 노골적으로 나열된 세 단어는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킨 채 살아가는 우리의 인생을 드러낸다. “사는 건, 사랑하는 건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저자 ‘슝슝’의 말처럼 이 책은 달콤한 인생에 대한 발견을 기조로 삼고 있다. 슝슝은 심리상담사로서, 책에 상담 일지를 담아내 심리를 관통하는 대화를 선보인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따뜻한 에피소드들을 시, 에세이, 대화 형식으로 자유롭게 풀어놓아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어렵다. 위태로운 삶을 꾸역꾸역 지탱하는 인간에게 위로를 건네고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아작
미래를 상상하는 SF 작가 ‘심너울’은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시스템들을 변화된 모습으로 미래에 안착시킨다. 이를테면 이 책에 수록된 아홉 편의 단편 중 하나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는 미래 세계에서 노인들이 받는 대우를 가감 없이 그린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에어팟이 미래에는 ‘에어팟 실버’라는 이름으로 보청기 기능을 갖추게 되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에어팟 실버를 장착한 노인들이 그럼에도 젊은이에겐 노추로 취급당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심너울은 코로나 이후 시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세상은 우리 밀레니얼 세대가 알던 세상과 크게 다를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쓴 SF 단편 소설들을 한데 모아놓은 책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심너울이 상상한 미래 모습을 통해 풍자하며, 짧지만 강력한 한 방을 먹인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21세기북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의 저자 ‘유성호’는 법의학자로, 20년간 약 1천5 백 번의 부검을 담당해왔다. 오랜 세월 죽음을 깊이 고찰한 그는 그 시간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이 책은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그가 연구했던 죽음에 얽힌 몇몇 사례가 이어지고, 2부의 골자는 자살 이야기, 3부에서는 올바른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이 나열된다. ‘유한한 삶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감사히 여기고 소멸 전까지 나와 다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앞서 언급한 건전한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이라는 구절처럼, 우리는 멸할 존재며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제 존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심어준다.
<결혼 탈출> 봄알람
결혼은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이 아니다.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해 결혼을 택하는 게 옳은 일도 아니다. ‘결혼 성공’ 문구가 버스 광고에 도배되는 현실에 맞서 <결혼 탈출>은 결혼 아닌 탈혼한 저자 ‘맹장미’의 이야기를 담았다. 결혼 제도는 맹장미를 탈출구 없는 통로에 가뒀고, 그녀는 그 안에서 순응하고 적응하는 것만이 어른스럽고 옳은 일인 양 취급하는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만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전환점이 주는 고통과 부조리에 그저 묵묵히 따르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을 적나라하고 파격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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