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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오신 날

앙리가 빠진 프리미어 리그는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호사가들은 부상에서 이제 막 회복한 그를 세리에 A나 라 리가로 보내지 못해 안달이 났다. 지금 명명백백한 한 가지 사실은, 그는 여전히 아스날의 멤버이고, 아스날에서 자신이 할 일이 남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의 선와(旋渦)에 있는 골에어리어의 지배자, 앙리가 <아레나 코리아>의 열일곱 번째 커버 모델로 등극했던 그날의 기록. <br><br> [2007년 7월호]

UpdatedOn June 22, 2007

Photography 류형원  Styling 구정란  Editor 정석헌
cooperation 리복 코리아  Make-up 손대식(Bourjois & Misoro Beauty Place)  Fashion Assistant 최유진

허벅지를 남 몰래 있는 힘껏 꼬집었다. 눈물을 보일 뻔했다. 너무 아파서였는지 황송해서였는지 모를 눈물을…. 티에리 앙리가, 티에리 앙리가 없었다면 아스날의 경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많은 밤을 지새울 일도 없었던 내 앞에 있다. 스르륵 자기 최면에 걸린 나는 그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하이파이브를 나눴고, 손에 땀을 쥐는 빠듯한 인터뷰 대신 커피 브레이크에 동료들과 나눌 법한 수다를 밑도 끝도 늘어놓았다. 
앙리가 2006~07 시즌 도중에 전력에서 이탈한 뒤의 프리미어 리그는 낙승 가능마가 빠진 더비와 같았다. 그래서 그를 둘러싼 이적설의 진위 여부보다도 부상 중인 그의 안부가 더 궁금했다. 발끝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머리 위로, 머리 위에서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공에 키스를 하고, 어느새 발끝으로 내려간 그 공을 가슴 높이로 차올린 뒤 2회 연속 헛다리 짚기 하는 매직쇼를 서른 명 남짓의 스태프들에게 선보인 앙리는 누가 봐도 거뜬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아직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지금 당장은 괜찮다. 괜찮은데, 다음 주 유럽에 돌아가서 몸 상태가 어떤지 꼼꼼히 확인해볼 것이다. 다음 시즌 개막전에 팀 동료들과 함께 뛸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많이 나아졌는데, 불행하게도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다.”
지난 5년간 앙리는 유벤투스의 젊고 싱싱한 왼쪽 날개에서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스스로를 바꿔나갔다. 아르센 벵거 감독의 조언도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 ‘실과 바늘’ 간의 신뢰는 좀처럼 흔들리는 일이 없다. “당신이 아스날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아르센일 것이다. 그는 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내게도 아르센은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내가 열일곱 살 때부터 어떻게 축구를 하고 경기를 풀어나가면 좋은지를 알려주었다. 그와 함께한 오랜 세월보다 특별한 건 없다.”
최근 중도 해약은 없다고 천명한 아르센에게 앙리는 FC 바르셀로나 이적설을 보도한 언론에 유감을 표시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이로써 2007~08 시즌 프리미어 리그는 ‘사권분립’의 재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프리미어 리그는 빅 4와 나머지 팀 간의 전력 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력의 차이는 빈부의 차와 무관하지 않고, 이런 구도가 계속되면 재미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앙리의 해석은 조금 달랐다. “네 팀 중의 한 팀은 우리 팀이지만, 우리는 첼시 같은 부자 구단이 아니다. 하지만 아스날은 젊은 팀이다. 우리는 지난 시즌 우승하진 못했지만 늘 좋은 게임을 했다. 우리는 노력해왔고, 그만큼 승점을 얻었고, 승점이 올라간 만큼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이것이 큰 원칙이다.”
그는 조화로운 팀워크와 혈기지분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아스날에서 팀의 승리를 매듭짓곤 하는 -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 꼭짓점이 되었다. 그가 집보다 편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라 리가나 세리에 A로 무대를 옮기려면 훨씬 더 큰 명분이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럴 수는 있다. 에투, 호나우딩요와 ‘위닝 일레븐’에서나 가능할 법한 삼각 편대를 구축하거나 리버풀을 꺾고 세리에 A의 위상을 드높인 AC 밀란의 스트라이커가 되어 5년 전에 진 빚을 갚는다든지 말이다. 하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는 리그의 성격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팬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축구를 생각할 뿐이다. “리그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그것은 선수가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 따라 결정되곤 한다. 디펜스를 중시하는, 타이트한 게임을 좋아한다면 이탈리아 리그를 보면 된다. 공격적이고 흥미진진한 게임을 원한다면 프리미어 리그를 보면 될 것이다. 내가 어떤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지는, 당신이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난 여느 바보들처럼 또 물었다. “혹시라도 다음 시즌, 아스날이 아닌 다른 유니폼을 입은 앙리를 볼 가능성은 전혀 없나?” 앙리의 대답은 그의 유년 시절에 대한 회고- 이를테면 “부잣집에서 태어난 건 아니었죠” 같은 - 만큼이나 간단명료했다.
“난 아스날에 남는다. 수도 없이 들은 똑같은 질문인데, 수도 없이 말한 똑같은 나의 대답이다.” 누구나 생각하듯이 앙리는 아스날에서 할 일이 더 남아 있다. 우선 아스날의 변함없는 골잡이로 팀을 리그 정상에 다시 올려놓아야 한다. 세계 올해의 선수상도 사정권에 있다. 나아가 유로 2008이나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서른 살이 된 앙리는 게임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지만 여전히 매 경기 공부하는 학생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지만 이제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선임이고, 매혹적인 볼 감각과 테크닉을 갖고 있지만 팀워크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단언하는 팀의 리더이다. 그러니 20대의 앙리를 그리워할 필요는 없다. 
앙리에게 영감을 주는 마이클 조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재능은 게임을 이기게 한다. 그러나 팀워크와 이해심은 챔피언을 만든다”라고. 앙리는 자신의 월등히 뛰어난 재능과 팀워크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까? “어렸을 때라면 MJ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을 테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 뛰어난 개인의 재능이 게임을 이기게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팀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더욱이 축구에서 혼자 많은 득점을 올리는 것은 팀플레이가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축구는 단체 운동이고, 팀이 토너먼트나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비로소 개인의 재능이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1명이 모두 다 잘해야 하고, 스트라이커는 골의 마지막을 처리할 뿐이다. 단지 점수를 올릴 기회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뿐이다. 사실 축구는 농구와 조금 다르다. 농구에서는 혼자 공을 몰고 다니거나 오랜 시간 점유하면서 슛을 자주 던질 수 있지만, 축구는 전혀 그렇지 않다. MJ의 말에서 개인이 팀을 이기게 만드는 경우는, 더 정확히 말하면 팀을 위한 플레이를 했을 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팀플레이는 축구에서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이것이 내가 팀이 아닌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언급하지 않는 이유다). 농구는 공을 잡는 즉시 점수를 낼 수도 있고 컨디션이 좋은 날은 한두 명이 게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축구는 계속 뛰면서도 공을 항상 가질 수 없다. 서너 번 정도면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 즉 한두 번 정도가 단독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축구는 오직 팀을 위한 것이다. 난 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앙리가 한국을 찾은 것은 아픈 기억이 되고 만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07 리복 스프린트핏(Sprintfit) 투어’ 일정으로 방한한 그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축구화에 자부심을 보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내게 더 잘 맞고 나 자신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내가 리복으로 스폰서를 옮긴 이유다. 스프린트핏은 정말이지 놀라운 신발이다. 무척 가볍고, 유니폼은 물론 평소의 내 옷들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보시다시피!” 그는 리복과 타미 힐피거와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지만, 한두 개 브랜드에 얽매이는 쪽은 아니다. “한동안 본 더치를 입은 적이 있는데, 본 더치가 유행을 타는 즉시 그만 입었다.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다기보다는, 컬러의 매치업이나 옷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블랙&화이트, 베이지, 브라운, 네이비 등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티셔츠 세대이다. 체(Che)처럼 슬로건이나 문구가 있는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앙리가 서울에 머문 3박 4일 중 6시간은 온전히 <아레나>의 차지였다. 6시간은 그가 유쾌하고 진실한 사람이란 걸 알기에 부족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앙리에 대한 ‘A TO Z’를 남김, 미련, 후회 없이 다 풀이하기에 6시간은 긴 시간도 아니었다. 그가 촬영한 사진을 모두 휴대폰 내장 카메라로 찍은 뒤 스튜디오를 떠나고 있다. 그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물론 그것은 2007년 8월 11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풀럼전일 것이다.
앙리는 <아레나>와의 인터뷰 전날 있었던 기자 회견장에서 “붉은 악마와 안정환의 플레이를 기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한국에 대한 기억 속에 <아레나>가 이제 막 추가되었다.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본 앙리의 취향
아침형 인간인가?
하루를 늦게 시작하는 편이다. 파티 광인가? 클럽에 가는 걸 좋아하지만, 파티 광은 아니다. 자주 가는 레스토랑은? 서인도제도의 음식을 좋아한다. 비록 요리하기 힘들지만, 대개는 집에서 먹는다. 가끔 스시를 먹는다. 좋아하는 술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인가? 아이들을 사랑한다. 특이한 습관이 있나? 오전에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내한했을 때에도 모 고등학교 실내 체육관에서 리복 스태프들과 ‘격한’ 농구를 즐겼다. 100M를 몇 초에 끊을 수 있나? 10.5초 좋아하는 음악은? 카사브는 그의 유년 시절과 뿌리에 대한 추억을 불러온다. 힙합도 마찬가지. 특히 퍼블릭 에너미, 아프리카 밤바타, 제이 지, 50Cent 등을 좋아한다. 게임은? 오직 한 게임, 코나미사의 위닝11. TV 앞에서는 어떤가? 24 Hours! 최고의 쇼다.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스포츠 뉴스와 게임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모든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특히 NBA에 열광한다. 축구의 우상은? 마르코 반 바스텐. 영감을 주는 사람은? 마이클 조던, 무하마드 알리,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싸워야만 할 때? 그는 정의롭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싸운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인종차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다. 그에 대한 놀라운 사실은 없나? 그는 친구가 별로 없다. 혼자 있는 편이다. 사람들에게 매우 개방적이고 친근하게 대하지만, 그들이 그의 내부에 들어오게 하지는 않는다. 그는 몇몇 사람에게만 신뢰를 보인다. 그의 내부 사람들은 그의 가족들이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그는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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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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