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The Critique

히어로 언니, 김연경

김연경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배구 실력은 기본이고, 유쾌한 성격과 미담을 쏟아내는 인성까지 갖췄다. 마블 히어로에 비유한다면…, 아니. 비유하기도 아깝다. 김연경에게는 이면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김연경이다. ‘식빵’을 외쳐대는 김연경이 우리가 아는 그가 맞고, 숨겨진 다른 면모 따위 없다. 플레이 중엔 시원하게 호통도 치고, 누가 뭐라 하든 자기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김연경이다.

UpdatedOn April 02, 2021


사람들은 배구에 관심 없다(이 말은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데, 모든 사람이 배구에 관심 없다는 건 아니고, 배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야구와 축구에 비해 적다, 정도로 이해해주면 되겠음). 하지만 김연경에겐 관심 있다. 김연경을 좋아한다. 키도 훤칠하고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박장대소하는 모습도 뭐랄까, 보는 사람의 막힌 속을 뻥 뚫어준달까. 존재 자체가 그냥, 강 스파이크다.
김연경이 배구 코트에서, 정확하게 배구 코트 공중에서, 공을 내리꽂는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김연경을 생각하면 강 스파이크가 떠오른다. 김연경이 어릴 때 적성 검사를 받았다면, 추천 직업란에 ‘배구 선수’라고 적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났는데 ‘아, 식빵’ 하던 ‘언니’가 이 언니였네. 난 남자다. 식빵 언니보다 나이도 많다. 상관없다. 나보다 키 크고 나보다 멋있으면 ‘언니’다. 김연경한테는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다. 언니.

헛소리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뭐, 헛소리라고 해도 딱히 부정할 순 없기도 한데, 아무튼 속 터지는 일이 세상에 아주 많다. LH 직원이 땅 투기를 하질 않나, 친구를 괴롭힌 ‘학폭’ 사건이 터지질 않나, 5명 이상 모이지 말라고 해도 말 안 듣고 모여 전염병을 확산시키질 않나…. (헛소리 안 하게 생겼어?) 굳이 이딴 현실을 여기에 가져다 붙일 필요 없겠으나, 세상이 하 답답하고, 김연경은 긴 다리와 팔을 힘차게 뻗으며 나타났다. ‘히어로’ 같았다고 적으면 만화 같은가.

이름에 ‘김연’이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보물이 될 운명을 타고난 게 아닐까 싶은데, 대표적으로 김연아와 김연경이 있다. 신기하게도 한 글자 차이다. 김연경은 김연아와 다른 맥락에서 미적이다. 김연아가 정교한 아름다움의 상징이라면, 김연경은 거침없는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정말 ‘상징’이 되었어, 라고 묻는다면, 반문하고 싶다. 그럼 아니야?

여기서 중요한 건 ‘거침없는’과 ‘아름다움’을 연이어 사용하기가 낯설다는 것이다. ‘거침없는’과 어울리는 건 ‘하이킥’ 같은 단어일 텐데, ‘아름다움’이라니. 나는 이것이 저 위에 적은 ‘하 답답한 세상’에 김연경이 활짝 열어젖힌 미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배구 코트 위에서 김연경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면 이 부분에 확신을 갖게 된다. 김연경은 당연히, 의심할 바 없이, 압도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한 공격수다. 그러니까 공격을 잘하는 건 물론인데, 박수도 잘 친다. 박수? 그렇다. 동료들이 멋진 플레이를 펼치면 박수를 치고, 잘했다고 외치고, 등을 두드려준다. 좋은 리더십의 형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그 단계를 넘어선다. 이기기 위해서만 그렇게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경이 누군가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이 선수로서, 한 명의 인격체로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객관적인 증거, 없다. 뇌피셜이다. 나는 그저 감이 아주 좋은 사람으로서 그렇다고 우길 뿐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 거침없는 아름다움이라는 건 이런 의견을 포함한다. 전제는 이렇다. 김연경은 강하다. 엄청 강하다.

이런 바람까지 여기 적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나는 이미 적고 있다), 벌칙으로 김연경 스파이크를 얼굴로 받기 같은 걸 하면 어떨까? 아까 말한, 우리를 속 터지게 만든 주범들이 벌칙 받는 대상이고.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뒷조사를 해봤다. 김연경과 광고 촬영한 사람들에게. 인상을 잘 쓴다고 한다. 무서울 정도는 아니지만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광고 담당자들이 요청하는 건 어지간하면 다 해준다고 한다. 뭘 하든 빨리빨리 끝내고 시원시원하다고. 김연경답다. 인상을 안 쓰고 친절하게 요청을 다 들어주는 건 김연경이랑 안 어울린다. 인상은 좀 쓰고, 할 건 하고, 어영부영 시간 때우지 않는 게 김연경답다. 뒷조사 중에 들은 말 중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건 “거만하지 않아, 그 정도 위치에 있으면서”였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김연경의 행동을 한 가지 말하자면, 같은 배구팀 소속 쌍둥이 자매의 ‘학폭’ 사건이 터지기 전, 쌍둥이 중 한 명이 김연경을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당연히 불화설이 돌았다. 김연경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에둘러 인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나라면 멱살 잡고 싸웠을 텐데.

김연경에 대한 미담은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미담 발표회라는 게 생길 걸 미리 알고 준비해둔 학생 같다. 그런 게 있을 걸 미리 알 수도 없고, 물론 그런 게 있지도 않다. 그러니 그냥 멋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훈훈한 이야기들은 김연경을 빛나게 할 뿐 김연경 그 자체는 아니다. 어느 순간 김연경은 한 명의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김연경은 배구 선수다. 김연경이 배구 선수인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배구 선수 김연경이 배구 하는 걸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면 사람들은 배구에 관심이 없거든.

김연경이 소속된 배구팀 흥국생명은 쌍둥이 자매가 이탈한 후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흥국생명은 우승 후보 영순위였지만,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우승은 어려워 보인다. 김연경 혼자 이끌고 가기엔 팀에 악재가 많다. 김연경은 해외 리그에 진출한 첫 번째 한국 여자 배구 선수였다. 유럽 리그에서 최고 용병으로 활약했다. 한국으로 복귀한 이유는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서라고 한다. 지긋지긋한 전염병 때문에 올림픽이 열릴지 미지수다. 나는 다만, 뛰어난 실력과 존경받는 인성을 지닌 한 선수가, 자신의 마지막 꿈을 향해 스파이크를 날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래 현역 생활을 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도 보고 싶다. 김연경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기면 좋겠는데, 최근의 경기를 보면 안쓰럽다.

이런 글을 쓸 때 ‘팬심’을 드러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상관없다. 김연경이 소심한 내 마음에 채찍을 날리며, “야, 정신 안 차려”라고 호통친 적이 많고, 그때마다 멘탈을 부여잡으며 가까스로 일어섰기 때문이다. 내 앞에 나타나서 그랬다는 게 아니라, 김연경의 거침없는 행동과 말, 경기 중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위로! 따뜻한 말, 온화한 미소, 부드러운 포옹을 위로로 여기던 시대도 분명 있고, 지금도 그런 시대이긴 할 테지만, 김연경이 주는 위로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르다. 등짝을 후려치는 위로랄까.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그전에, 김연경이 최근 찍은 캠페인 영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김연경이 거기서 이렇게 말한다. “멘탈, 준비됐어?” 나는 이 영상이 많은 부분을 건너뛰었다고 생각한다. “자, 준비해”라고 말한다고 ‘멘탈’이 준비하거나 되는 게 아니다. 어떤 시간을 묵묵히 견뎌내야 한다. 멘탈은 그래야만 준비하고 준비된다. 갑자기 ‘교훈’이라는 단어를 적는 건 뜬금없지만, 김연경이라는 상징이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 김연경은 강하다. 엄청 강하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야, 정신 안 차릴래!” 배구공을 내리찍던 손바닥으로 누군가의 등짝을 후려치며. 어쩜 좋나, 우리의 언니는 이미 욕도 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정소진
WORDS 이우성(미남컴퍼니 대표)

2021년 04월호

MOST POPULAR

  • 1
    없는 게 없는 포차
  • 2
    CAMP WITH ME
  • 3
    피트의 모든것
  • 4
    Spring Breeze
  • 5
    Bloom&Petal

RELATED STORIES

  • LIFE

    없는 게 없는 포차

    다음 주 약속은 여기에서?

  • LIFE

    하나를 고른다면 이것! 그들의 최애 술 5

    막걸리부터, 와인, 샴페인까지.

  • LIFE

    그때 와인 한 잔

    와인 애호가들은 봄에 어떤 와인을 떠올릴까? 그림 같은 풍경에서 즐긴 와인,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미식과 곁들인 와인, 일본 한 와인 바에서 맛본 새로운 와인. 이 계절 어떤 순간 마신, 잊지 못할 와인과 이야기에 대해 들었다.

  • LIFE

    피트의 모든것

    라프로익 10년은 누구나 좋아할 위스키는 아니다. 하지만 누구든 그 매력을 알면 빠질 수밖에 없다. 피트 자체를 선명하게 한 모금으로 구현한 위스키. 피티드 위스키라는 영역에서 라프로익 10년이 서 있는 위치다.

  • LIFE

    진짜 K-팝은 발라드다

    K-팝 가수들이 코첼라 무대에 오르고 그래미에서 상을 탄다. ‘두 유 노 BTS?’는 ‘아임 프롬 코리아’를 대신하는 인사말이 됐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각한다. 가장 ‘K스러운’ ‘팝’은 발라드라고. 한국인의 얼과 혼이 담긴 그 장르. 발라드에 기대어 위안을 얻던 시절로 돌아가 그 매력과 진가를 살폈다.

MORE FROM ARENA

  • LIFE

    디에디트

    뉴미디어가 언급된 것은 몇 해 전 일이다. 이제 뉴미디어는 기존 미디어와 어깨를 견주는 규모로 성장했다. 시사, 정치, 사회,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뉴미디어 시장을 보며 의문이 솟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뉴스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이 뉴미디어를 구독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새로운 세대의 미디어는 어떻게 변화하고 또 달라질까. 뉴미디어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 DESIGN

    청년의 집

    청년은 ‘헬조선’ 시대를 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땅치 않다. 하지만 함께 생각해볼 수는 있다. 청년의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현시대 청년이 마주한 주택난에 대해 기성세대 건축가와 함께 고민했다. 세 건축가가 청년을 위해 아이디어를 냈다.

  • LIFE

    술 맛 나는 술잔

    눈으로 한 번, 혀끝으로 한 번. 술맛 살리는 매끈한 글라스.

  • CAR

    SHOOTING STAR

    모터와 엔진을 달구며 유성을 쫓던 밤.

  • FASHION

    A NEW LIFE

    골프웨어라고 해서 필드 위에서만 입으란 법은 없잖아.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