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왔어요?
네. 택시 타고 왔어요. JYP 있을 때도 자유롭게 다니는 타입이었는데 일할 때도 이렇게 혼자 다니니까 새롭네요.
멤버들 모두 JYP에서 독립하는 동시에 갓세븐으로서 함께하기로 했죠. 리더로서도 결단이 필요했겠죠?
JYP와 함께하지 않게 됐지만, 다들 갓세븐을 계속하고 싶어 했어요. 다 같이 나와서 우리끼리 해보자고 의견이 모였죠. 제가 총대 메고 진행해서 만든 게 얼마 전 발매한 싱글 ‘Encore’예요. 새로운 음반사와 전 과정에 직접 참여했죠. 반응이 좋아서 기쁘더라고요. 미숙한 점도 있었지만 여태까지와 다른 행보를 보여드린 게 뿌듯했어요. 이번 싱글을 통해 ‘우리는 해체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줬으니 다음이 더 중요하겠죠. JYP를 나올 때 정욱 이사님께서 “리더로서의 역할은 이제부터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실감하고 있어요.
리더로서의 역할은 오히려 이제부터다.
예전엔 리더 자리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각자의 길을 응원하면서 다시 뭉칠 때는 제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싶었죠. 단톡방에서도 자주 이야기해요. 얼마 전 잭슨이 중국에 갔거든요. 마크가 미국 갈 땐 배웅했었는데, 잭슨이 갈 땐 일정 때문에 함께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잘 가라고, 배웅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하니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조심히 다녀오고, 그랬죠.
오랫동안 몸담은 대형 기획사를 떠난 계기는 뭐예요?
갓세븐으로 활동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받는 모든 혜택을 당연하게 여기는 건 아닌가. 스케줄이 나오면 그대로 하고, 컨펌해달라면 하는데, 이게 내게 오기까지 어떤 많은 과정을 거쳤을까? 누가 요청하고 어떻게 진행되는데, 내게 오기까지 난 왜 기다리고만 있고 바라만 보는 거지? 일의 프로세스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어요. 곡 하나, 앨범 하나가 나오는 과정이 어떤지, 얼마나 힘든 건지 하나하나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겸손해지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이에요.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나요?
필요했죠. 겁도 났고. 제 위치는 여기까지 올라와 있는데, 정작 제가 아는 지식은 저기까지밖에 안 되는 것 같았어요. 회사를 나오면 그 차이가 너무 크게 다가올까봐 겁나긴 했어요. 하지만 JYP에 계속 있었다면 더 두려웠을 거예요. 그 차이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질 테니까. 진짜 내 모습은 여기에 있으니 좀 더 빨리 헤딩하자. 그렇게 생각했어요.
JAY B로서도, 믹스테이프를 내거나 사진전을 여는 Def.로서도 새로운 걸 하려는 의욕에 차 있는 상태겠어요.
성급하지 않게, 하나하나 연구하며 차근차근 쌓아가고 싶어요. JAY B는 JAY B대로 대중성 있는 힙합 알앤비를 보여드릴 거고, Def.로서는 Def.대로 하고 싶은 활동을 보여드릴 거예요. 믹스테이프를 발매할 수도 사진전을 열 수도 있고, 다른 분야의 픽션을 보여드릴 수도 있겠죠. Def.는 제가 연습생이 되기 전 사용하던 비보이 네임인데, 떠다니는 공기 같은 거예요. 하우스나 소울이 됐다가도 어쿠스틱이나 모던록이 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Def.가 ‘본캐’에 가깝지만 데뷔한 건 JAY B니, JAY B로서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드릴 거예요. 해야 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기존에 발매한 믹스테이프를 듣고 뮤지션 디앤젤로, 레이 찰스를 좋아한다는 취향을 들으니, 미국 남부의 리듬 앤 블루스, 소울 뮤직에 대한 애착이 커 보여요.
많이 좋아하죠. 거기서 기원한 힙합 문화 자체를 좋아해요. 그 문화 안에는 디제잉도, 그라피티도, 비보잉도 있죠. 첫 시작이 비보이였으니, 같이 비보잉하던 크루 형들과 옛날 영상 찾아 보고, 문화를 공부하고, 춤 동작 하나도 어떤 의미를 지니고 시작됐는지 연구하다 매료된 거예요. 가장 매혹된 지점은 그들이 지닌 고집이었죠. 그들이 지닌 문화에 대한 고집과 신념에 존경심이 들었어요.
지금도 당신의 음악과 춤에 그 무드가 묻어 있나요?
네. 이를테면 전 안무는 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춤은 음악이 나와서, 그 리듬이 좋아서, 흥얼거리듯 고개를 까딱이거나 몸짓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춤은 즐거워서 하는 자유로운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비보이로 시작했다가 아이돌 그룹의 길을 택한 이유는요?
춤뿐 아니라 음악에도 관심이 생겼거든요. 어릴 적 디앤젤로의 음악을 듣고 그처럼 노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처음 JYP에 들어갔을 땐 반항적이었어요. 하하. 한 달간 연습생 정지를 당한 적도 있어요. 저는 분명 인사를 했는데 안 했다면서 “우기려면 집에 가라” 하셔서 어린 마음에 “그럼 집에 가겠습니다” 하고 나왔죠. 그리고 오랜만에 비보잉 크루를 만났는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다른 세상이 되어 있는 거예요. 크루 사람들은 저 위에 있는데, 저 혼자 먼 곳에 있는 게 느껴져 고민했어요. 비보이로 돌아갈까? 연습생을 계속할까? 결국 제 선택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가수의 길을 가기로 했죠. 음악을 하고 싶었으니까. 후회 없는 선택이었어요.
춤으로 시작해서 결국 메인 보컬을 맡았죠. 그때 당신에게 음악은 어떤 것이었나요?
도전이었죠. 연습생은 노래와 춤으로 나뉘어요. 저는 춤으로 들어왔지만 하고 싶은 건 춤만 추는 게 아닌 가수였어요. 그런데 저를 춤으로만 나누니까, 그 편견을 깨부수려 더 열심히 노래했어요. 수많은 좌절도 했고. 노래는 아직도 좌절하고 있어요. 하하. 음악은 끊임없는 연구예요. 이젠 공부보단 연구죠.
농장을 하던 부모님 아래 외동으로 컸다면서요?
평범한 애였어요.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책을 재미있게 봤는데, ‘색채가 없는’ 아이가 꼭 저 같다고 느꼈어요. 부모님 농장 일 돕는 차분한 애였어요. 형제가 없어서 그런지 혼잣말을 많이 했대요. 어머니가 제가 집에 돌아올 때면 오고 있는지 아는 방법이 있었대요. 혼잣말로 대화하듯 “어 그랬어?” “어 나 그랬어” 이러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더라고요. 하하.
그 나이에 하루키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로 비범한데요?
아는 형이 있었는데, 좀 겉멋이 있었어요. 버스에서 다리 탁 꼬고 책 보는 모습이 멋져 보였죠. 형이 그랬죠. “야 책 읽어. 지식도 좀 쌓고.” 그 멋을 따라 하려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읽는 행위에 재미를 느껴서 많이 읽기 시작했죠.
어떤 책을 좋아해요?
10대 때 청소년기의 방황을 담아낸 <해변의 카프카>를 많이 읽었어요. 카프카가 꼭 저 같았고, 보면서 울기도 했죠. <무라카미 라디오>도 문체가 재미있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이걸 더 좋아합니다만…” 이렇게 끝맺는 문체가 위트 있어요. 중고 서점에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1회부터 모으고 있는데, 1회 수상작 중 이장욱 작가의 단편 ‘변희봉’을 좋아해요. 주인공은 변희봉 배우를 아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영화 <괴물>에 나온 변희봉 몰라요?” 하는데 아무도 몰라요. 전 웃기려고 작정하지 않았는데 피식 하게 되는 이야길 좋아해요.
요즘엔 뭘 읽어요?
시를 보려고 해요.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시인선을 첫 권부터 구입해서 읽었는데 한자가 너무 많아서, 하하. 문학동네 시인선부터 시작했어요. 1권부터 85권까지 가지고 있네요. 박준 시인의 시집, 이은규 시인의 <다정한 호칭>도 따듯하게 읽었어요. 밑줄 치고 필사하기도 했죠.
제가 만난 아이돌 뮤지션 중 가장 다독가인 것 같네요.
해외 투어를 자주 다녔는데, 호텔방에 있는 시간이 길거든요. 밖에 나가면 사진을 찍고, 호텔방에 있을 땐 책을 봤어요. 한 번 해외 투어 가면 캐리어에 서른 권 정도 넣어 가요. 인상 깊은 책들은 가져오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거기서 처분하기도 하고. 요즘엔 독립 출판물도 찾아봐요. 낙성대나 해방촌에 있는 독립 출판 서점들을 찾곤 해요. 다듬어지지 않은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많은데, 그런 문장들이 지닌 힘이 굉장해요.
책을 보는 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시적 허용이라 하는 표현을 보면 가사 쓰는 데 도움받죠. ‘이게 뭘 표현한 거지?’ 하고 읽게 되는 새로운 문장, 새롭게 그려지는 심상을 통해 영감을 받아요. 전 가사도 시라고 생각해요.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쓸 때도 있지만, 의미를 담고 싶을 때는 시처럼 써보고 싶어요.
지난해에 열었던 사진전 <ALONE.>에선 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사물, 표지판 같은 것들을 찍었더군요.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엄청 외롭지 않을까요? 카메라는 찰나에 본 것이지만 대상은 계속 거기 있을 테니. 사람들은 각자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 성립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의 드로잉에선 외로움이 느껴져요. 왜 자꾸 외로움에 대해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외로움과 친숙한 편인가 봐요.
인물보다 사물이나 정경을 많이 찍는 것 같더라고요.
인물 찍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인물은 눈을 통해 감정이 그대로 보이잖아요. 전 속내를 너무 드러내는 것보단 감추고 있는 걸 더 좋아해요. 대놓고 ‘나야!’ 표출하는 피사체보다는 사물, 배경, 자연물이 좋아요. 잔잔한 것, 지나고 나서 ‘그랬습니다’라고 하는 게 좋아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직업이라 열심히 노력하지만 원래의 전 그래요.
영화는 어떤 영화감독을 제일 좋아해요?
우디 앨런. <매치 포인트>를 제일 좋아해요. 금기를 넘는 사랑 이야기인데, 찌릿찌릿하죠. 재회한 연인에게 몰래 번호를 알려달라 하는 배우의 얼굴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저렇게 진짜 같은, 날것의 눈빛을 디렉팅했을까? 연극영화과 다닐 땐 연기보다 연출 수업을 듣곤 했어요. 작품을 연출한다면, 전계수 감독의 <러브픽션> 같은 엉뚱한 위트가 섞인 로맨틱 코미디를 찍어보고 싶네요.
아티스트로서 자의식이 강한 편인가요?
전 이런저런 장르에 관심이 많고 크루들과도 자주 교류하지만, 자신이 아티스트라고 막 까불어도 된다는 태도는 건방지다고 생각해요. 어떤 일을 하든 모든 사람들은 다 각자만의 아티스트잖아요? 허세 부리려는 게 아니라, 표현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뿐 사무직에 종사하는 분들도 자기만의 아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아티스트라는 호칭이 좀 낯부끄러워요. 아티스트라고 우쭐댈 필요가 있나요? 그냥, 사람이죠.
‘왓츠인마이백’ 콘텐츠를 촬영하면서, 상비하고 다니는 우울증과 공황장애 약을 쓱 공개하더군요. 언제 자신의 우울과 마주했어요?
전 제가 우울증인 걸 몰랐어요. 잠깐 나약해진 거겠거니, 하고 넘기곤 했죠. 그런데 어떤 계기로 검사를 받다 우울증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간 어떻게 정신과에 안 오고 지냈냐 묻더라고요. 제가 원초적으로 좀 우울한 사람이라 그런 줄 알았다고 말했죠. 하하. 제가 티를 안 내는 성격이라 그렇지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 하더라고요. 상담과 약물 치료를 병행하며 이제는 거의 괜찮아졌어요.
말할 용기를 낸 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진단받고 주변을 살펴봤어요. 우울증을 창피해하고 감추려는 친구도 있고, 너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친구도 있더군요. 그냥 저는 말하고 싶었어요. 티가 안 나서 그렇지, 우울증은 생각보다 흔한 동시에 위험한 병이라는 걸. 마음의 병도 병이죠. 제 팬들, 인터뷰를 보는 분들 중에도 우울감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창피해하지 말고 치료를 받으며 이겨내길 바라요.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숨길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제 가방에 있는 아이템을 소개하는 콘텐츠인데 거짓말할 수 없잖아요? 저는 모두가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거짓말 못 해요?
네.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아예 말을 안 하는 편이 낫죠. 솔직하고 직설적인 편이라 돌려 말하는 것도 안 좋아해요.
우울증에서 한 발짝 나아가는 법에 대해 공유해줄래요?
세상을 넓게 바라보기. 가보지 못한 곳도 많고 느껴보지 못한 것도 많다는 것을 아는 것. 산책하며 늘 다니던 코스를 벗어나 안 가봤던 길로 가보는 것도 좋아요. 작은 모험도 큰 도움이 돼요. 일단 집 밖으로 나오면 절반 이상입니다. 자신을 리프레시할 기회는 안보다 밖에 더 많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전 스스로에게 솔직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 좀 더 솔직하고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럴 때만큼은 남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세요.
당신은 뭘 믿나요?
그냥 신을 믿어요. 종교는 없어요. 그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신은 있다고 생각하죠. 고맙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땐 기도해요. 고맙습니다. 지혜롭게 넘길 수 있게 해주세요.
당신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무엇인가요?
살아 있는 동안에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전 다음 생은 없다고 믿거든요. 지금 이 시간에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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