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잡지를 만들며 생긴 직업병이 있다. 사진을 볼 때 머릿속으로 가장자리를 3mm씩 잘라보는 것이다. 편집할 때 사진 주위에 여백을 줄지 판단하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어느새 버릇이 되었다. 잡지는 커다란 용지 한 장에 여러 페이지를 배열해 인쇄하고, 이를 접고 자르고 붙여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접지 면과 재단 면은 3mm 잘려나가고, 제본 면은 3mm 맞물리게 된다. 한 페이지에 사진을 가득 채워 편집하면, 잡지에는 결과적으로 상하좌우 3mm씩 잘린 이미지가 실린다. 3mm쯤 잘려나가도 대개 지장은 없다.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장면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조차 허용하지 않는 사진이 있다. 3mm만 잘려나가도 프레임을 이루는 조화와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그렇다. 그의 사진은 3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완벽한 프레이밍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가령, 그의 작품 ‘Ken Moody and Robert Sherman’ 왼쪽에는 백인이, 오른쪽에는 흑인이 서 있다. 백인과 흑인 뒤로 보이는 검은 색 면과 회색 면은 화면을 정확하게 양분한다. 서로 다른 색이 만나는 선을 기준으로 서로 뒤통수와 등을 맞대고 있는 백인과 흑인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을 이룬다. 여기에서 어느 한쪽이라도 3mm 잘려나가면 팽팽하던 시각적 긴장감은 균형을 잃고 만다. 이 사진을 잡지에 싣는다면 반드시 여백을 줘야 한다. 완벽한 프레임이 잘려나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니까.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완벽한 프레임보다 금기에 도전하는 내용으로 유명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뉴욕에서 활동했던 그는 당시 금기시되었던 흑인 남성 누드, 동성애와 게이 서브컬처, 사디즘과 마조히즘 등을 작품으로 다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1977년에 열린 그의 사진전 <에로틱한 사진들>은 수갑과 눈가리개를 한 남성들이 가학적, 피학적 성행위를 하는 장면들로 채워졌다. “그 사진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율하며 고개를 돌렸어요. 그런데 그 사진들을 알게 된 사람 중에 그 광경들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죠.” 비평가 잉그리드 시시의 평이다. 그의 말처럼 메이플소프의 사진 중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기 힘든 것이 많다. 자신의 항문에 채찍을 꽂은 채 대담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 누군가의 주먹이 항문에 들어간 장면, 소변을 받아먹기 위해 입 벌린 남자의 모습 등은 지금 봐도 충격적이고 경악스럽다. 평생 섹스와 마약을 탐닉하고 1989년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작가의 삶도 자극적인 이야기로 다뤄진다. 하지만 예술이든 삶이든 ‘충격과 경악’이라는 식의 원색적인 키워드로 로버트 메이플소프에 접근하는 것은 무색한 일이다.
때로 ‘충격과 경악’ 요법은 예술의 주요한 전략 중의 하나다. 당대가 금기시하거나 터부시하는 주제로 사회의 이면을 폭로하고 기존의 가치관에 균열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은 의도적으로 보는 이를 충격에 빠뜨리며, 극단적인 내용을 다룬다.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예술가는 많고, 메이플소프보다 하드코어한 섹스 장면을 보여주는 사진 작품도 찾아보면 꽤 있다. 하지만 메이플소프처럼 보석을 세공하듯 섬세하고 정교하게 찍은 이를 찾긴 어렵다. 금기를 넘나드는 극단적인 세계를 완벽한 아름다움을 통해 도달했던 예술가는 아마도 메이플소프가 유일할 것이다.
다시 그의 작품을 보자. ‘3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이란, 단순히 프레임만의 문제는 아니다. 흑과 백으로 대비되는 두 인물의 피부 톤을 살리기 위한 조명은 섬세하다. 두 사람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포즈를 찾기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 필름은 풍부한 계조를 표현한 프린트가 되었다. 여기에 호사스러운 실크 매트와 물푸레나무를 더해 흠결 없는 액자를 완성했다. 이러한 작품은 ‘순간 포착’이나 ‘우연성’ 등 흔히 사진 고유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탓인지 메이플소프는 자신이 관심 있는 건 사진이 아니라고 피력했다. “내가 찍은 사진은 게리 위노그랜드의 것과는 정반대예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위노그랜드의 스트리트 포토와 달리 자신의 사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계산과 의도의 결과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메이플소프의 카메라 앞에서 모델로 섰던 큐레이터 샌디 네언은 그의 촬영 과정을 조각에 비유했다. “로버트는 내가 마치 돌덩어리라도 되는 듯이 나를 사진으로 조각해 나갔어요.” 네언의 말은 메이플소프의 다큐멘터리 속 촬영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메이플소프는 모델에게 얼굴과 눈빛의 방향, 각도 등을 아주 세심하게 주문하고, 미세한 차이를 확인하며 셔터를 눌렀다. 그 모습은 단번에 피사체를 낚아채는 사진가보다는 돌을 깎고 다듬는 일을 되풀이하는 조각가에 가까워 보였다. 실제로도 메이플소프는 이렇게 말했다. “내 사진은 조각품과 같으니, 조각처럼 감상하길 바랍니다.”
조각은 어떤 형상을 돌로 옮겨오기 위해 눈과 손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행위다. 조각가가 눈과 손을 동기화시켜 바라보고 깎고 다듬는 일을 수만 번 되풀이하는 것은 형상의 완전한 상태를 찾기 위한 일이다. 오로지 단 한 번, 형상의 본질이 드러나는 완벽한 순간만이 돌로 옮겨와 영원히 고정되는 것이다. 조각의 의미를 곱씹으면, 3mm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순간을 추구했던 메이플소프는 조각가와 다를 바 없고, 그의 사진은 조각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메이플소프는 조각과 같은 방식으로 얼굴을, 남근을, 꽃을, 해골을 사진에 새겼다. “내가 꽃을 촬영하는 방식은 남근을 촬영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남근을 찍든 꽃을 찍든, 얼굴을 찍든 해골을 찍든 메이플소프에겐 ‘완전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완벽한 순간’을 찾는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일이었다. 비평가 아서 단토는 ‘메이플소프가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특성을 모두 구현했다’고 썼다. ‘광란의 신’인 디오니소스와 ‘비율과 형태의 신’ 아폴론이 공존한다는 것은 어쩌면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완벽한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순간(The Perfect Moment)’은 메이플소프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열었던 그의 마지막 전시 제목이기도 하다. 어쩌면 예술에서 또 인생에서 자신만의 ‘완벽한 순간’에 도달했던 시점에서 메이플소프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마주했다. 섹스를 ‘살아야 할 이유를 주는 유일하게 가치 있는 활동’이라 여겼던 그에게 찾아온 에이즈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명성을 감상할 만큼 충분히 오래 살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야.” 메이플소프의 마지막 바람은 그의 시간과 공간에서 멀리 벗어나 2021년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 제목에 메아리처럼 울린다. ‘Mor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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