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때때로 미래는 과거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기, 문예인들의 작품들이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라는 전시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채운다. 정지용, 이상, 김기림 등의 시인과 구본웅, 이중섭, 김환기 등의 화가들은 이상이 운영했던 다방 ‘제비’에 모여 앉아 전위와 실험, 새로운 시대 인식을 꿈꾸며 영감을 주고받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신문 소설 삽화가를 재조명하고,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 시집 원본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문학인과 미술인 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한 ‘이인행각’ 전시실에서는 정지용과 장발, 백석과 정현웅 등의 ‘쌍’들을 비롯해 예술가들의 다중적 관계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화가이자 문학적 재능을 지녔던 장욱진, 천경자, 김환기의 글과 그림도 동시에 펼쳐진다. 억압과 수모의 시대 한가운데, 풍요로운 예술로 들끓었던 모순적인 아름다움을 봄과 함께 맞는다. 5월 30일까지.
잊힌 언어를 찾아
과거 언어는 음성과 문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키푸’는 끈으로 만든 매듭을 이용해 시각적, 촉각적 의사소통 및 기록을 남기는 고대 안데스의 언어 체계다. 칠레 출신 작가 세실리아 비쿠냐는 작가이자 시인, 운동가로서 동시대가 당면한 환경 파괴와 인권, 문화 동질화 현상을 마주하는 퍼포먼스, 회화, 시, 설치 작업을 아우른다.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제13회 광주 비엔날레와 함께 열린다. 전시 제목인 <키푸 기록>은 고대 안데스어와 한국어를 조합한 것으로, 비쿠냐는 키푸를 선대의 문자 체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저항적 행동으로서 자신의 예술에 활용해왔다. 전시의 대표작이자 제목과 동명의 작품인 ‘키푸 기록’은 오래된 직조물 위에 채색한 거즈, 한복에 사용되는 실크와 면으로 이루어진 대형 설치 작품으로, 현재까지도 작업 중이며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리만머핀 서울에서 4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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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손을 위한 환상곡
피아니스트 임동민, 임동혁 쌍둥이 형제가 데뷔 후 처음으로 듀오 무대를 선보인다. 1부는 쇼팽 콩쿠르 최초의 한국인 입상자이자 형제 수상자로 두각을 드러내온 쌍둥이의 기량을 각각 펼쳐 보이는 쇼팽 콩쿠르 스페셜 갈라 콘서트로, 임동민이 쇼팽 스케르초 1번과 3번을, 임동혁이 쇼팽 발라드 1번, 녹턴 8번을 연주한다. 2부는 형제의 듀오 연주로,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한 대의 피아노에 앉아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을 쌍둥이 버전으로 들을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우아하면서도 격정적으로 주고받는 강렬한 화음과 체념한 듯 서정적인 멜로디, 푸가풍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종결구를 듣고 나면 만개한 봄을 맞이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 중 로망스, 타란텔라도 연주한다. 공연은 2월 20일 통영에서 시작해 3월 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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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
두 여자가 남편을 잃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남은 자들은 묻는다. 왜? 각자의 고통과 비밀 속에서 두 여자는 마주치고, 생채기를 파헤치며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를 묻는다. 그러나 모든 것은 무용하다. 거대한 공장에서 비정하게 돌아갈 뿐인 기계처럼. 두 주연 배우, 염혜란과 김시은이 팽팽히 주고받는 연기의 합이 굉장하다. 염혜란이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정성스레 씻기다 말고 뺨을 매섭게 올려붙이고, 눈물을 한 방울 떨굴 때는 절로 숨을 죽이게 된다. 김시은의 모든 감정이 말라붙은 듯한 고요, 편집증적인 집념을 표현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전주국제영화제 배우상 수상작이다. 2월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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