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작년 초, 파리 맨즈 컬렉션 출장 마지막 날 셀린느 매장에서 길고 단정한 돌고래색 맥 코트를 입어만 봤다. 스산한 날씨는 물론 매일 입을 수 있고 어깨부터 똑 떨어지는 코트는 간만이라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한 번 고민해보고 싶은 가격과 다음에 또 살 기회가 있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 탓에 그냥 걸어두고 향수와 선글라스만 사고 말았다. 당시에는 캐리어의 남은 공간을 생각할 여유마저 있었던 것 같다. 결심이 섰다면 사소한 것들은 뒤로해야 했다. 결국 코트 한 벌 사지 못하고 한 해를 보냈지만 올해도 에디 슬리먼의 셀린느에 대한 흥미는 여전하다. 특히, 셀린느 옴므의 ‘더 댄싱 키드’ 컬렉션은 화려한 테디 재킷, 빈티지, 반짝이는 스팽글 장식 등 에디 슬리먼의 청춘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새로운 목표는 낮에도 밤에도 별 스팽글이 차르르한 이 줄무늬 카디건이다. 내 단조로운 취향에서 가장 과감한 지점이 아닐까 싶지만, 아른하게 반짝이는 장식들이 부정적인 기운도 밀어낼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번엔 정말 사고야 말겠다. EDITOR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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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난해 아끼던 반지를 잃어버린 후 정신없이 지내는 자신을 반성하며 한동안 새로운 아이템을 들이지 못했다. 불편하지 않고 과하지 않되 매일 손이 가는 주얼리를 찾는 일이란 쉬울 리가 없었다. 방황 끝에 1064 스튜디오의 반지를 마주하게 됐는데, ‘Shape of Water’라는 콘셉트부터 마음에 들었다. 물의 흐름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반지는 1064 스튜디오의 장점인 곡선과 곡면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아이템이다. 오랜 망설임을 한번에 보상받듯 반지에 이어 네크리스도 눈에 들어왔다. ‘Curvilinear Archives’ 컬렉션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두 아이템을 들이며 새해에는 많은 것을 놓치지 않기를, 오래도록 함께하며 좀 더 차분해진 나의 모습을 기대한다고 되뇌었다. EDITOR 이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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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아마도 다른 나라로 갈 수 없을 2021년, 원래 휴가 계획대로라면 다녀올 모로코를 생각한다. 아프리카 최북단에 있어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문화가 뒤섞인 이 아라비안 국가에서는 아랍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리야드라 불리는 중정에서 뜨거운 민트차를 마신다. 마티스와 이브 생 로랑이 반했던 선명한 빛과 색, 성벽으로 둘러싸인 메디나, 백색 리야드 한가운데서 투명한 물을 뿜어 올리는 분수 등이 무척 아름답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을 꼽자면 타일 모자이크다. 극도로 정교하게 제작된 모자이크들은 신의 초상이라 한다. 신은 인간의 모습을 하지 않았고 형상화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모자이크로 그려진다. 설계도처럼 그려진 신. 루이 비통의 모로코 트래블 북은 아티스트 마르셀 드자마가 마라케시부터 탕헤르까지 모로코 곳곳을 여행하며 받은 인상을 형형한 금빛으로 그려냈다. 타일 모자이크도, 리야드도, 그곳 사람들과 색과 빛도 담겨 있다. 가지 못하는 곳을 마음에 품고 새해를 맞아야지. 신의 설계도를 품은 모로코인들처럼. EDITOR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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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이른 아침 차가운 햇살에 마음이 쉽게 들뜨고, 매일 새로운 저물녘 하늘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지만, 암전 상태에선 절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가느다란 빛이라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한 줄기가 안정이자 위안이다. 나도 내게 ‘빛’의 존재감이 이렇게나 큰 줄 몰랐지. 루이스 폴센 판텔라 포터블은 분명 2021년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될 거다. 그 부드럽고 영롱한 빛은 확실히 품격이 남다르다. 늦은 밤 거실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땐 테이블 위에, 잠들지 못하는 새벽엔 침대 가까이 내 작은 달을 띄워야지. 무엇보다 얼른 이 겨울이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선선한 루프톱에 올라, 이 맑은 불을 밝히고, 아끼는 친구들이랑 함께 화이트 와인을 마셔야 한다고. EDITOR 최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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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예전부터 생각은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슈혼을 구매하는 일이다. 이게 뭐 대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준치보다 상한가인 가격대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슈혼을 사야겠다고 결심한 건 최근 ‘강방천’ 회장님을 만나고 나서였다. 투자의 대가 가라사대,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에는 아낌없이 투자하라. 다소 합리적인 한마디가 달콤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는 마음. 초심으로 돌아가 발뒤꿈치부터 시작한다. 성공으로 가는 황금빛 보디도 다소 깜찍한 외모의 강아지도 반갑게만 느껴졌다. 부드러운 ‘발 넘김’도 좋을 것만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침마다 빨리 일어나게 하는 피그말리온 효과가 발동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올해의 ‘원픽’은 이거다. 평생 쓴다는 전제하에. EDITOR 차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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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지난 12월, 인사동 ‘코트(KOTE)’에서 열린 발렌타인 팝업 스페이스 ‘Too Good To Hide’에서 맡은 발렌타인 싱글 몰트 글렌버기 18년의 향은 새롭고 강렬했다. 산뜻한 사과와 레드베리 향에 언뜻 느껴지는 달콤함.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도 그 향이 잊히지 않았다. 궁금했다. 얼른 맛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팝업 스페이스에서 받은 미니어처 버전의 글렌버기 18년을 꺼내 들었다. 발렌타인 싱글 몰트 라인을 비로소 완성시킨 위스키답게 맛이 풍부했다. 18년간 숙성되어 더욱 깊은 풍미가 느껴졌다. 이 위스키와 연말, 연초를 함께 보낼 생각에 들떴다. 발렌타인의 싱글 몰트 시리즈는 싱글 몰트 글렌버기 12년, 글렌버기 15년, 그리고 피날레를 장식한 글렌버기 18년이다. 삼형제 모두 경험한 2021년의 시작. 왠지 새해에는 싱글 몰트 글렌버기 18년처럼 더욱 성숙해진 나로 거듭날 것 같다. GUEST EDITOR 정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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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스트레스 안 받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거울에 비친 몸을 보니 아니었다. 스트레스는 인지할 틈도 없이 허리에 등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런저런 일들로 촘촘히 채워진 한 달에 쉴 틈이란, 컴컴한 방에 틀어박혀 콘솔 게임기로 축구를 할 때뿐이다. 위닝도 하고 피파도 하는데 잘하는 건 아니고, 깨지기 일쑤지만 그래도 동틀 때까지 축구 게임만 할 때가 있다. 패스가 안 되고, 골문 앞에서 실수를 자주 한다. 패드 때문이다. 게임기가 이상해서 그렇다. 상대가 잘하는 게 아니라, 내 게임기가 오래돼서 그렇다. 엑스박스 시리즈 X는 최신 콘솔 게임기인데 사양이 매우 훌륭하다. 패드의 그립감도 좋다. 손에 쥐니 착 감겼다. 이거다. 이거면 된다. 2021년에는 게임 좀 한다는 전 세계 초딩들이 긴장해야 할 거다. 직장인의 분노 서린 골에 좌절할 지구촌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토템으로 집어본다. EDITOR 조진혁
⑧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상황에서 새로 발견한 취미가 있다. 바로 촛불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거다. 기나긴 밤을 보내려 이소라의 노래를 틀고 켠 촛불이 그 시작. 속절없이 타들어가는 초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어찌나 좋던지, 정신을 차렸을 땐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 후 매일같이 초를 켰고 조금 더 근사한 멍을 때리기 위해 캔들 홀더를 찾았다. 바카라의 아워파이어는 내 작은 취미에 동참할 충분한 명분을 갖췄다. 반지르르 광택이 도는 크리스털과 필립 스탁의 손이 닿은 우아한 형태감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빨간색 점까지. 명분을 열거하다 보니 고급스러운 자태의 캔들 홀더를 멍 때리기에만 쓰기엔 아쉽다. 어두웠던 지난해를 뒤로하고 새해를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되기를 염원하며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 GOD의 노랫말은 덤으로 적으며.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EDITOR 김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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