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미술관, 극장, 박물관 등 다양한 공공장소를 찍는다. 어떤 기준으로 찍을 공간을 택하나?
흥미가 당기는 곳. 내겐 항상 보고 싶은 장소들이 있다. 그리고 기회가 생긱 때마다 직접 가본다. 그 장소들 안에 서서 그곳을 느끼며, 여태까지 쌓아온 내 경험과 본능에 의해 찍을 공간을 택한다. 그게 전부다.
공공장소를 찍으면서 인물을 배제하는 역설로 유명하다. 많은 인물이 오가는 공간을 텅 빈 채로 찍는 이유는 뭔가? 인간이 만든, 그러나 인간이 없는 공간에서 당신은 어떤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부재하는 것들, 혹은 부재자들은 언제나 우리의 관심을 끌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나? 사람을 위해 지어진 공간은 사람들이 없을 때 그 의도가 더 명확해진다. 그리고 사람들이 공간에서 해온 것들 또한 명확해지지.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를 응시하며 자기 자신을 공간 속에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텅 빈 공간은 그 의도를 선명히 드러내며, 응시하는 관람객을 팔 벌려 초청한다.
당신이 찍는 사진 너머의, 그 공간을 채웠을 인물들에 대해 상상해본 적이 있나?
나는 사진 찍는 순간엔 오로지 공간에만 집중하지만, 좋든 나쁘든 공간은 언제나 역사와 함께 존재하지. 공간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오고 간 사람들. 나에게 이러한 역사는 공간이 지닌 성격 중 일종의 잠재의식에 가까운 부분이다.
당신의 작품은 정직하고 고요하다. 인위적인 조명으로 공간을 미화하거나, 과장된 구도와 앵글로 특정 요소만을 부각하지 않는다. 그 시선은 평등하고 정직해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러한 사진을 찍는 까닭은 무엇인가?
공간은 수많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요소는 그곳에 있을 수 있는 그들만의 권리를 지니고, 그 모든 것들이 모여 공간의 인상을 형성한다. 나는 사진술은 이 모든 요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이상적인 매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보는 이의 시선에 시간을 부여하는 정지된 매체니까 말이다.
빛이 부족한 공간에서 셔터를 누르고 오래도록 뷰파인더를 응시할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나?
노출 시간이 길어질 때면 긴장한다. 혹시 누군가 이 공간을 걸어가며 의도치 않은 떨림을 만들어내진 않을지. 하지만, 뭐, 별 생각을 하진 않는다. 정말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그냥 점심을 먹으러 간다.
두 작품 ‘Folds 2016’ ‘Tables 2016’을 핸드헬드 카메라로 작업했다. 정돈되고 안정된 구도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약간의 비대칭적인 구도와 비정형적인 형태가 인상적이다. 돌이켜보면 초기작 ‘Ethnographisches Museum Lissabon I 1989’도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었다. 이 회귀는 당신 작업에 어떠한 의미인가?
해방. 처음 내가 사진을 시작했을 때처럼,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할 때는 따로 공들여 조작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반응할 수 있고, 색, 선, 우연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체험한 것과 같은 어떠한 해방감이 느껴지더라. 여전히 많은 공간이 기다리고 있고, 나는 여전히 공간들에 대해 궁금하다. 그렇기에 이런 시도는 앞으로 내가 하는 일의 핵심이 될 것이다.
‘Dom Melnikova Moskwa VIII 2017’에서는1920년대 양식이 보존된 멜니코프 하우스 내부와 함께 창밖으로 보이는 동시대의 경관을 보여주고, ‘Muzei Sovremennogo Iskusstva “Garaj” Moskwa VI, VII & VIII 2017’에선 1968년 소련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차용한 레스토랑 ‘사계’의 차고 안에 새로 지은 현대미술관의 내부 전경을 담았다. 한 공간 안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순간이다. 공간과 시간은 어떻게 관계할까?
공간은 그들의 주변을 끌어당기며 만들어진다. 역사는 공간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공간 주변에서도 역사는 일어난다. 주변과 중심, 그 모두의 역사가 공간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공간을 둘러싼 역사는 대체로 공간 내의 역사보다 더 빠르게 진행된다. 그렇기에 공간 속 시차 안에서 우리는 그곳을 거쳐온 다양한 역사의 지질학적 층위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공간이란, 과거의 추억이자 미래에 대한 기대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있는 쾰른을 기반으로 활동하면서도, 근현대 건축물에 더 집중하는 까닭이 있나?
쾰른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많은 도시지. 하지만 내 작품들을 돌아보고, 미래의 프로젝트를 가늠해본다면-확신할 순 없지만-나는 근현대 건축이나 현대 건축에 중점을 두고 있더라. 그래, 그렇다. 나는 새로운 것이 더 궁금하다.
사진이란 매체는 영원에 가까울까?
거의 철학적인 질문이네. 사진 자체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사진술은 이미지를 만드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인간에겐 늘 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과, 보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미지의 필요성은 계속해서 남을 것이라는 거지. 그러므로 사진술이라는 형식 역시 그렇다. 사진은 더 많은 것을 들여다보게 하기 위해, 시선을 늦추는 예술이니까.
지금의 당신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무엇인가?
대답을 회피하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내 작업 과정에서 가장 열정을 느끼는 순간의 작업물을 가장 사랑한다. 그러니까 작업실에서 내 앞에 걸린 모든 사진의 첫 번째 인쇄물, 그것이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다.
코로나 시대에 이제 우리는 미술관,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 모이는 일조차 어려워졌다. 이 시대의 초상을 담아낸다면 어떤 공간을 어떤 모습으로 찍어보고 싶은가?
나는 팬데믹은 공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공간이 가득 찼든, 비어 있든 말이다. 그것은 사람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묘사하는 건 내 능력 밖임을 깨달았다.
팬데믹의 시대가 끝나면, 한국에서 찍어보고 싶은 장소가 있나?
나는 계속해서 한국 친구들의 말을 듣고, 읽고 있다. 부산 전시를 계기로 서울을 넘어, 더 많은 한국을 보고 싶다. 그러면 찍고 싶은 장소도 생기겠지. 조금만 더 참으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 아티스트가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
예술가는 어떤 접근법을 택하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누군가 가르쳐줄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길을 가든, 인내심과 열정을 잃지 말 것.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도 당신과 내가 언젠간 다시 만날 거란 기대를 갖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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