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봄, 여름, 가을, 겨울
나무가 서 있다. 푸른 잎을 무성히 피워내고 열매를 맺었다가 붉은 낙엽으로 물들고,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지와 분분히 떨어지는 낙엽이 마음을 흔든다. 전시장 벽에 한 그루 나무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분 안에 담겨 무수히 반복된다. 작품명은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미디어 아트, ‘Judy Crook 12(2019)’. 사과, 오렌지, 자두가 꽃 넝쿨과 뒤섞여 우주의 행성들처럼 유유히 떠다니는 작품은 ‘Still-Life 4(2019)’, 울창하게 흔들리는 자작나무 숲은 ‘Blind Eye 4’다. 미디어 아트 설치 작가 제니퍼 스타인캠프는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정교하게 렌더링한 영상을 투사하며 건물 안에 꽃을 피워내고, 계절을 반복한다. 액자도 스크린도 없는 전시장에서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영상 속을 오갈 수 있다. 실제보다 생생한 자연에 대한 상상. 수많은 몰입형 미디어 아트 전시들이 열리는 시대에, 나무의 생장 과정을 보여주는 스타인캠프의 작품 안에선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기술은 이제 공간뿐 아니라 시간마저 품게 되었으므로. 리안갤러리와 리만 머핀이 공동으로 개최 중인 제니퍼 스타인캠프 전시 이름은 ‘Souls’다. 기술과 자연, 영혼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는 이번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열린다.
리안갤러리 02-730-2243
② 시간은 정지하고
소나무는 수백 년, 길게는 천년까지도 살 수 있다고 한다. 구리를 용접해 만든 이길래 작가의 소나무들은 거친 표면과 휜 형태까지 영락없이 실제 소나무와 닮았다. 구불구불 엉킨 역동적인 뿌리, 울퉁불퉁한 나이테에선 하늘로, 땅으로 뻗어갈 것처럼 응축된 힘과 자연에 대한 경외와 공포가 느껴진다. 구리라는 물성 안에 정지한 포즈지만, 작가가 포착한 순간 속에 살아 있는 듯하다. 2017년 오페라 갤러리 뉴욕 전시 후 3년 만의 개인전 <이길래: TIMELESS PINE TREE>에선 대형 작품과 드로잉 연작을 포함한 신작 40여 점을 발표한다. 10월 16일까지.
오페라갤러리 02-3446-0070
③ 가장 최소의 자연
재현하는 작업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예술로 삼는 보태닉 아티스트의 작업도 있다. 식물관 PH의 기획전으로 진행되는 슬로우파마씨의 전시는 흥미롭다. 정갈한 자갈 정원을 조경해놓고, 컨베이어벨트 위에 작은 자연물을 두어 돌아가게 둔다. 관객들은 좌석에 착석해 접시 위에 놓인 자연물을 새삼스럽게,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을 생각하기. 전시 제목인 ‘심심당’은 마음을 살피는 곳이라는 뜻이다. 접시 위에 놓인 자연물을 물끄러미 보는 동안, 마음은 조용히 흐른다. 18일까지.
식물관 PH 02-445-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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