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그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했다. 4년간 대장암 투병을 숨기고, 자신의 삶에 주어진 사명을 수행하듯 쉼없이 영화를 찍다가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채드윅 보스만의 이야기다. <블랙팬서>의 왕이자 첫 흑인 히어로, 영화를 넘어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아이콘이 된 인물.
‘Dignity, honor, nobility. 품위과 명예, 고결함.’ 주변인들이 그를 기릴 때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들이다. 그리고 ‘warm hearted, 따듯한 마음.’ 브리 라슨은 그를 “힘과 평화로 빛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 일생을 싸웠다. 그러나 늘 미소 지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아한 사람”이라 회상했다. 열여섯 살 때부터 그를 알고 지낸 마이클 B 조던은 장문의 글로 그를 기렸다. “당신은 늘 가족과 친구, 아이들, 공동체, 정신, 우리의 문화와 인류를 아꼈어. 남은 날들을 당신처럼 살려 해. 용기를 지니고, 후회 없이.” ‘슈리’ 역의 레티샤 라이트는 “당신이 들어서면 어디든 평화로워졌고, 따듯한 기운이 감돌았다. 당신을 보면 세상이 한층 더 좋은 곳으로 보였다. 당신이 지구상에 뿌려놓은 모든 씨앗이 자라고 꽃을 피우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낭독하는 영상을 올렸다. 의미 없는 미사여구들이 아니다. 스크린으로 그를 접한 관객인 나조차도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채드윅 보스만을 본 첫 기억은 영화 <42>에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야구선수이자 백 넘버 42번을 영구 결번으로 남긴 전설적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연기하는 모습이었다. 갖은 차별과 핍박, 무시 속에 배트를 쥐고 우뚝 선 그의 등은 아직 소년 같았다. 그 외로운 등을 한껏 끌어안아주고 싶다가도, 돌아서 영민하게 반짝이는 두 눈엔 지지 않는 의지와 고결한 마음이 보여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는 것만으로 충분한, 채드윅은 그런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그는 재키 로빈슨과 꼭 닮은 삶을 살았다.
제국주의가 사라진 시대에 왕이라는 것이 아직 남아있다면 응당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블랙팬서’ 티찰라는 몹시 품위 있고 곧고 온화하여,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의 첫 등장에서부터 시선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 이면엔 온화한 왕이 되기까지 그의 싸움이 있었다. 단지 병마와의 투병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위엄 있는 왕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마블은 영국식 영어 억양을 제안했지만, 채드윅은 남아프리카 민족의 고유어인 코사어를 영화 속에 넣을 것을 제안했고 영어를 쓸 때도 아프리카 억양을 썼다. 그것이 투박하게 들렸나? 그의 말엔 어떤 언어보다 자긍심이 있었고, 단단한 품격이 있었다.
“<블랙팬서>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이 영화가 세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 시대에 가치 있는 작품인가? 제 대답은 ‘맞다’입니다. 단순한 현실 도피 수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죠. 그건 정말로 큰 의미 아닐까요?” 채드윅 보스만의 말대로, <블랙팬서>는 단순한 히어로 무비 그 이상이었다. 영화가 전세계 영화 흥행 수익 11위에 랭크되고 히어로 무비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며 온갖 신기록을 달성하는 동안 흑인 사회는 와칸다의 표식을 세레모니로 삼으며 “와칸다 포에버”를 외쳤고, 영웅의 활약에 고무됐다.
채드윅은 전기 영화에 자주 출연했다. <42>에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 <마셜>에서는 흑인 최초의 미국 대법관 서굿 마셜, <겟 온 업>에서는 소울 장르의 대부인 뮤지션 제임스 브라운을 연기했다. 그리고 매번 그들의 영혼을 닮아갔다. 이 아이코닉한 인물이 첫 흑인 히어로이자 그들의 왕이 되어 자신이 연기한 이들과 삶의 궤적을 같이 함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 기록이니 말이다.
2016년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은 그가 <블랙팬서>를 비롯한 숱한 영화를 전투적으로 찍는 동안, 그 사실을 안 건 극소수의 최측근 지인과 에이전시뿐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블랙팬서>의 라이언 쿠글러 감독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블랙팬서2> 각본을 쓰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항암 투병만으로도 모자랄 시간에 몸을 키우고, 전신 수트를 입고 액션 연기를 하며, 블록버스터를 비롯한 크고 작은 영화들까지 찍었던 건? 베트남 전쟁을 겪은 미국 흑인 군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파이크 리 감독의 <Da 5 블러드>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고, 미국 최초의 여성 블루스 뮤지션인 마 레이니의 이야기를 흑인 극작가 어거스트 윌슨이 그려낸 영화 <Ma Rainey's Black Bottom>은 촬영을 마쳤다. 이것이 그의 유작이 됐다.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이 영화들이 자신의 죽음을 앞당길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걸까? 혹은죽음을 예상했기에 더 열심히 많은 영화들을 찍었던 걸까? 사람들은 과거 영상 클립을 뒤져 그가 소아암 환자인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블랙팬서>를 보고 세상을 떠났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내용에 대해 말해달라는 질문에 “전 죽어요”라는 답으로 일관하는 장면들을 되새기며 그가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영화를 찍었을 것이라 예측한다. 혹은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투병 사실을 밝히지 않았을 거라 예상한다. 어느 쪽이든 그는 투사였다. 세상에서 가장 온화하고 의연한 투사. 삶과 태도와 신념이 하나가 된 사람에겐, 병마와 시한부의 삶마저 아무것도 빼앗아갈 수 없는 것이다.
채드윅 보스만의 마지막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마지막까지 보여준 방송이었다. 4월 15일, 재키 로빈슨을 기리는 ‘재키 로빈슨 데이’에 방송을 켠 그는 코로나 시대에 부족한 의료품과 검사 수를 우려하며 미국 정부를 비판하고, 영화 <42>를 만든 자신의 친구 토코가 420만개의 보호 장비를 기부하기로 한 사실을 격려하며, 이런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리더십”이라며 참여를 독려한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하지만 모든 게 제대로 되기 전까지 사람들이 죽어만 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어. 그렇기에 재키 로빈슨이 여전히 살아있는 거야. 여전히 2루에 있고, 3루에 있지. 우린 여전히 홈을 향해 도루를 하고 있어. 그러니 오늘 재키 로빈슨의 날을 기념하자. 의료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분들에게 그저 고맙다고만 할 수는 없어. 그들에게 필요한 걸 채워주자.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곳에 말이야.”
모든 메이저리거들이 등 번호 42번을 달고 뛰는 ‘재키 로빈슨 데이’는 코로나로 인해 8월 28일로 미뤄졌고, 채드윅은 바로 그날 죽었다.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과 닮아간 한 배우의 마지막은 많은 이들에게 슬픔을 주었지만 그 이상으로 유지를 받들 의지를 안겼다. 재키 로빈슨과 서굿 마셜의 이야기가 아직도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 같은가? 여전히 수많은 흑인들이 공권력에 의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시대, ‘Black Lives Matter’를 외쳐야 하는 시대에, 채드윅 보스만은 불씨를 지폈고 그것을 일생 동안 불태웠으며, 죽음 이후, “그가 심은 씨앗들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난 당신처럼 살 거야. 용기를 지니고, 후회없이”라는 동료 흑인 배우들의 선언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그렇다. 그는 여전히 3루에 서서 홈을 향해 달리는 중이다. 그러니, 죽음은 그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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