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GUCCI
밀라노 디지털 패션위크의 마지막 날인 지난 7월 17일, 대미를 장식한 건 역시 구찌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기존의 S/S, F/W, 프리폴, 크루즈로 선보이던 컬렉션 캘린더를 축소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래된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이번 에필로그(Epilogue) 컬렉션은 두 가지 영상으로 공개됐는데, 하나는 12시간 진행된 광고 캠페인 촬영 현장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소개했고, 이후 공개된 또 다른 영상은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익스클루시브 내러티브 영상’. 미켈레의 컴퓨터 화면을 함께 보면서 에필로그 컬렉션을 소개하는 콘셉트와 구찌 디자이너팀이 잠시 각자의 역할을 내려놓고 모델로 선 방식도 물론 구찌다웠지만, 특히 쇼장에서 피날레에만 짧게 등장하던 미켈레가 스토리텔러로 나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소통 방식이 탁월했다. 오프라인이 아니어서 가능한, 참신하고 재기발랄하기만 한 비주얼의 향연에 현장에 대한 갈증을 해소했달까. 미켈레가 창조하고 소개하는 구찌의 세계를 목도할 수 있었던 즐거운 경험.
EDITOR 이상
2 MAISON MARGIELA
메종 마르지엘라의 2020 A/W 아티즈널 컬렉션을 위해 존 갈리아노와 닉 나이트가 오랜만에 뭉쳤다. 내러티브 이미지와 다큐멘터리 영상을 엮은 약 50분 길이의 ‘S.W.A.L.K.’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록다운을 겪고 난 이후의 컬렉션 준비 과정과 비하인드가 낱낱이 담겼다. 초반에는 존 갈리아노를 필두로 한 팀원들이 영감을 위한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구체화하는 단계까지 메일과 화상회의 영상을 교차 편집해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틀리에의 피팅 장면에서는 고프로와 드론, 열화상 카메라가 이용됐다. 열화상 카메라가 만든 반전 화면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패션 필름 콘셉트와도 연결된다. 닉 나이트는 영화적인 기법과 관음적인 시선으로 포착한 영상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희망, 영웅주의, 집단적 재생의 순간을 조명한 이번 컬렉션의 메시지를 강조하고자 했다.
EDITOR 이상
3 BERLUTI
벨루티도 디지털 프레젠테이션으로 오프라인 쇼를 대신했다. 크리스 반 아쉐는 지난 몇 시즌 대리석의 패턴과 물성에서 힌트를 얻은 컬렉션을 소개했었다. 이번 시즌에는 본격적으로 캘리포니아 출신의 유망한 세라믹 디자이너 브라이언 로슈포트(Brian Rochefort)의 작품을 컬렉션에 옮겼다. 크리스 반 아쉐는 브라이언 로슈포트의 복잡하게 점철된 텍스처와 형이상학적인 형태의 세라믹 오브제에서 벨루티와의 접점을 찾았다. 세라믹 작품의 입체적인 형태와 질감을 가장 가깝게 구현해 프린트한 울과 나일론, 실크 소재를 사용했고, 자수로 그의 작품 전체를 표현하기도 하고, 슈즈에 스크리토 패턴 대신 작품의 세부를 입히는 등 벨루티로서도 아주 흥미로운 시도를 보였다. 이번 협업은 코로나로 인한 록다운 사태로 메일과 화상 미팅을 통해 파리와 로스앤젤레스의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었다. 이들의 소통과 진행 과정은 10여 분의 영상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EDITOR 이상
4 JW ANDERSON
JW 앤더슨과 로에베를 이끄는 조너선 앤더슨은 2021 S/S 남성 컬렉션과 여성 리조트 컬렉션을 직접 설명하는 영상을 디지털 채널로 선보였다. 남성 봄·여름 컬렉션과 여성 리조트 컬렉션 룩북 모두 마스크를 쓴 마네킹에 옷을 입혔다. 차이라면 남성 컬렉션은 젊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허구의 인물을 그린 마스크를 씌웠고, 여성 리조트 컬렉션은 소용돌이 모양의 독특한 위빙 마스크를 씌웠다는 점. 원래 그의 컬렉션에서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크게 의미 없는 것처럼, 아래로 갈수록 풍성해지는 실루엣, 패치워크 디테일, 폼폼 장식, 태피스트리 같은 디자인 요소들을 ‘따로 또 같이’ 활용했다. 조너선 앤더슨은 ‘쇼 인 어 박스(Show in a box)’라는 짤막한 비디오에 등장해 이번 시즌에 대해 직접 설명했다. 그의 친절한 편지가 적힌 패브릭으로 포장된 프레스킷 박스는 룩북 이미지뿐 아니라 스와치 원단, 남성 컬렉션에 등장한 마스크, 압화 등 이번 컬렉션을 이루는 재료들로 구성해 디지털 방식 속의 아날로그 감성이 느껴졌다.
EDITOR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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