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에도 당당했을 것 같은데, 어떤 아이였나?
끼가 넘쳐흘렀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음악만 나오면 몸을 흔들어댔으니. 다만 학교에선 튀지 않는 아이였다. 조용하게 지낸 데는 계기가 있었다. 어릴 적 크게 아팠었다. 허약한 몸을 보하려고 먹은 한약이 부작용을 일으켜 살이 비대하게 쪘었다. 이 때문에 위축돼서 학교에서 소극적이다. 집만 오면 비디오 보며 홀로 춤추고 놀았다. 그러다 처음 무대에 오른 건 고등학생 때다.
춤에 영향을 준 사람이 있나?
셀 수 없이 많다. 동기 부여가 된 가수들도 있고. 하지만 가족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와 함께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트위스트를 자주 췄었다. 그때의 감성이 내 안에 그대로 쌓여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 나는 이게 좋아 재밌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춤이 권태로운 순간도 있나?
어느 순간 괴로움이 클 때가 있다. 대중의 기대치에 맞추려다 보니 현재 구사하는 춤사위와 전혀 다르거나 더욱 멋있는 걸 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롭기도 하다. 육체적인 문제도 크다. 몸을 오랜 기간 험하게 굴려왔더니 요즘은 꽤나 욱신거린다. 한두 군데 고장 나기 시작하더라. 그렇다고 휴식 기간을 가지면 퇴보할 것 같은 불안감에 쉬지 못하겠다. 춤은 내게 없어선 안 될 존재지만 이를 완벽하게 즐기려면 그만큼 고통이 따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댄서 조진수는 힙합 댄서 제이블랙과 걸리시 댄서 제이핑크로 나뉜다. 구분한 계기가 있나?
처음에는 제이블랙이라는 이름으로만 활동했었다. 하지만 걸리시 댄스는 늘 춰왔다. 프리스타일 춤을 추기 때문에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알아채셨을 거다. 중간중간 걸리시한 춤이 숨어 있거든. 프리스타일러 제이블랙에서 걸리시 댄스만 쏙 빼내 제이핑크라는 인물을 만든 데는 아내 ‘마리’의 영향이 컸다. 제이핑크로 무대에 설 땐 여장을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때부터 여성들이 쓰는 아이템, 사소한 행동, 버릇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자세도 다르더라. 그런 요소를 생활 속에서 많이 발견하고 내 몸으로 직접 표현해보기도 했다.
다른 성의 A부터 Z까지 연구하는 건 꽤 어려웠을 텐데?
마스터하는 데 몇 년 걸렸다.
하이힐 신고 추는 댄스가 굉장히 자연스럽던데.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고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 다른 인생을 사는 느낌이랄까? 너무 재밌는 거지. 내 안에 잠재된 여성성이 확 튀어나오는 순간이 생겼다. 이런 생각도 든다. 모든 남성과 여성은 내면에 반대 성의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지금은 제이핑크가 삶의 활력소다.
7월 12일에 발매된 새 앨범도 제이핑크 콘셉트 아닌가?
디지털 싱글이고 의미 깊은 첫 정식 앨범이다. 여전히 실감이 안 난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는 거니까. 제이핑크로 활동할 때 너무 여성성을 강조하다 보니 이질감을 느끼는 분들도 있더라. 이번 앨범에선 중성적인 느낌을 강조했다. 한쪽 성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애썼다.
안무를 구상할 때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 편인가?
생활 속 별의별 곳에서 영감을 받는다. 가끔 제자나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르게 보이고 이는 곧 영감으로 이어진다고. 지금 내 인터뷰가 녹음되고 있는 녹음기의 음성 감지 흐름을 보면서도 음악과 안무가 떠오른다. 또 다른 영감의 출발지는 자연이다. 바다가 일렁이는 모습만 봐도 다채로운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 우울하든 시원하든 신비롭든. 감정은 춤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잖아. 이 때문에 자연과 맞닿을 수 있는 취미를 필수적으로 즐긴다.
어떤 취미?
너무 많다. 스키, 수영, 낚시, 골프, 게임 등. 사람들은 취미를 가볍게 생각하는데 나는 그 반대다. 수영과 스키 강사 자격증을 땄고, 낚시도 전문적으로 배우는 중이다. 게임은 랭크에 오를 때까지 하고 검도 사범도 했었다. 정말 좋아하는 것들엔 깊이 몰두한다.
언젠가부터 TV에 자주 보이더라. 방송이 힘들진 않았나?
처음에는 내 성향과 맞지 않다는 생각에 안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권유가 쏟아지더라. 참고 하다 보니 적응되고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중이 내 춤을 쉽게 접하고 그만큼 춤 장르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일반 댄서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요즘 댄서들 보면 기분이 어떤가?
내가 방송 활동하기 전에는 댄서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소개된 사람은 팝핀현준 형밖에 없었다. 그래서 쉽사리 도전하기 힘들었다. 내가 추는 춤이 대중에게 덜 알려진 스트리트 댄스이기도 했고. 하지만 방송 활동이 잦아지면서 댄서가 설 자리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댄서에 대한 인식도 순화되었고 과거에 비해 개선된 환경에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점이 반갑다.
춤 없는 인생을 상상해본 적 있나?
불가능하다. 말도 안 되는 판타지 같은 거다. 신이 부와 명예를 줄 테니 영원히 춤추지 말라 명한다 해도 춤을 택하겠지. 하하하. 어떻게 해서든 출 거다.
댄서가 아니었다면 뭘 했을까?
운동하고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운동을 해왔고 체육대학교 출신이다. 전공 살려서 강사가 되지 않았을까. 아, 아니다. 강사도 금방 그만두고 댄서 하겠지. 출퇴근이 정해지고 기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은 절대 못 하겠다.
조진수는 언제까지 춤을 출까?
힘 닿는 데까지 추고 싶다. 지금은 파워풀한 춤을 많이 추지만 정년퇴임하는 나이쯤엔 그러진 못하겠지. 여전히 아쉬운 점은 대중이 춤을 자극적인 콘텐츠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과거에 비보이가 많이 알려져 거의 기예에 가까운 춤들을 선보이다 보니 신기하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춤은 신기한 게 아니다. 음악을 멋스럽고 리드미컬하게 표현하는 것이 춤이다. 허리를 꺾고 점프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그렇다. 작은 손짓 하나에도 감각과 멋이 담겨 있잖아. 60대가 되어 홀로 무대를 만들어서라도 꾸준히 춰나가고 싶다. 백발에 정장 입고 가벼운 음악에 손가락만 튕겨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댄서. 그게 정말 멋진 댄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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