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극장가가 스멀스멀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K-좀비물 영화 <#살아있다>가 개봉했고 또 다른 좀비물인 기대작 <반도>의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강철비2: 정상회담>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런의 <테넷>까지 출격을 기다리고 있다. <#살아있다>는 충무로 스타 유아인과 박신혜를 앞세워 1백만 관객을 돌파했지만 빈약한 스토리와 개연성으로 호불호를 띈다. <반도> 역시 강동원을 비롯 호화 캐스팅으로 기대를 모으지만 전작 <부산행>의 부담감을 이겨낼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그럼으로 아직까지 여름 극장가의 주인공은 ‘작은 영화’인 <야구소녀>다. 작년 <벌새>, <우리집>, <메기>로 이어졌던 독립영화 신드롬의 명맥을 잇듯 개봉 보름 만에 3만 관객을 넘었다. 앞으로 손익분기점인 6만 명은 가볍게 돌파할 거라는 예측이 나돈다. 특히 SNS에서의 반응은 여타 다른 대형 영화보다 더욱 뜨겁다. 이렇다 보니 독립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또 하나의 ‘힙한’ 문화가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제목에서부터 유출할 수 있는 뻔해 보이는 영화가 왜 힙을 입고 흥행 중일까?
‘소녀’만화의 도전
지금껏 수많은 소년들의 꿈과 도전을 그린 성장 스토리는 많았다. <야구소녀>를 그런 소년만화를 답습하는 클리셰 범벅의 영화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야구소녀>가 그리는 서사는 여타의 소년만화 스포츠 장르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일단 사나이들의 뜨거운 우정과 가슴 벅찬 승부가 없다. 라이벌과의 대립을 통한 성장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승부, 짜릿한 승리 대신 오롯이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고독한 승부를 펼치며 잔잔하게 흘러간다. “해보기도 전에 포기 안 해.” 주인공 수인이 입에 달고 사는 말과 함께. 여기에 ‘소녀’라는 수식어가 주는 편견의 벽도 깨야 하니 어쩌면 다른 소년들과는 달리 배로 힘든 여정이 펼쳐진다. 그러니 <야구소녀>를 일반적인 소년만화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야구라는 소재로 풀어낸 따뜻한 가족 영화
프로 선수를 꿈꿨으나 문턱을 넘지 못한 최진태 코치는 프로 입단을 꿈꾸며 트라이아웃을 바라보는 주수인이 못마땅하다. 그 누구보다 현실의 벽이 높다는 걸 알기에 수인에게 포기를 권한다. 아니, 강요하는 수준이다. 매번 떨어지면서도 시험을 준비하는 무능한 가장인 아버지를 닮을까 겁이 나는 어머니에게 수인은 아픈 손가락이다. 그만큼 딸을 사랑하기에 꿈을 가로막는다. 아버지가 부정행위로 경찰서에 간 후 어머니가 수인의 글러브를 태우는 장면은 두 사람 간의 갈등이 고조에 달한 대목. 하지만 모두의 만류에도 묵묵히 꿈을 향해 걷는 수인에게 최진태 코치는 동하게 되고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된다. 그는 수인에게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투영하며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머니 역시 수인의 트라이아웃을 가슴 졸이며 바라보며 눈물을 쏟는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해온 정호, 트라이아웃에서 만난 또 다른 여자 선수 제이미 등 우승을 향해 달려가는 시합 장면 하나 없는 야구 영화를 각 캐릭터 저마다의 사연으로 스토리를 풀어낸다. 수인을 둘러싼 각 캐릭터들의 위로와 공감을 바탕으로 ‘뜨거운’ 야구 영화보다는 ‘따뜻한’ 야구 영화를 지향한다.
독립영화계의 스타 이주영
무엇보다 이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은 배우 이주영의 존재감이다.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으며 독립영화계에서 입지를 넓힌 이주영은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됐다. 영화 <메기>와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 이어 <야구소녀>까지. 그녀는 묵직한 직구를 스트라이크 존으로 꽂았다. <야구소녀>의 GV 행사 때마다 가득 찬 객석은 그녀의 인기를 반증하는 증거. 영화 속 주수인처럼 외부적인 벽과 내면의 벽을 넘으며 단단해진 이주영이기에 더욱 주수인이라는 캐릭터에 어울리지 않았나 싶다. 자유와 열정을 가지고 독립영화를 지지하고 만들어온 이주영은 이번 <야구소녀>로 내일의 주수인, 아니 세상의 모든 주수인을 응원하며 건강한 마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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