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미식 트렌드 중 하나는 논알코올 드링크다. 콤부차 같은 음료를 필두로 여러 대체 드링크가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이미 일본은 논알코올 음료를 내세운 레스토랑과 바가 많고 여러 주류 브랜드도 무알코올 맥주와 술을 선보이는 상황. 국내 맥주 업계 1위 오비맥주는 카스제로로 출사표를 냈다. 와인과 막걸리 등도 논알코올 제품이 속속 출시되는 중. 영국 펍의 절반은 무알코올, 일본 식당에서도 50% 이상 무알코올이 팔린다고 한다. 저알코올, 무알코올 시장은 확대되고 있다. 왜 알코올 없는 술이 인기를 끄는 걸까.
20대와 30대는 혈중 알코올 농도 99%의 시간이었다. 몸을 매일 술독에 푹 담근 뒤 건져냈다. 혼자 그럴 리 만무하다. 지인들도 유유상종이라 한 친구는 ‘술은 마셔야 제맛’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의 건배사이기도 했다. “술은 마셔야!” “제맛!”이 선창과 후창으로 이어지는 날들이었다. 술을 잔뜩 마시는 날이면 서울 전체가 앞마당이었다. 청담동 새벽집에서 마블링 끝내주는 한우 등심과 레드 와인으로 1차, 연남동 바다회사랑에서 기름기 가득 흐르는 대방어와 한라산 소주로 2차, 다시 한남동 와이낫에서 압생트로 입가심 뒤 싱글 몰트위스키로 3차, 평창동 절벽에서 짜파게티와 달걀 프라이로 4차, 이태원 클럽에서 진을 한 잔 들고 비틀거리는지 춤을 추는지 모른 채로 하이에나처럼 서성이다 삼촌네 햄버거 집에서 커다란 스페셜 버거를 해장식으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면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취기로 두 눈 후벼 파고 싶은 글을 휘갈겼고,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영 마음에 들지 않던 상사와 후배에게 독기를 뿜어냈다. 그래서 차마 읽어볼 엄두를 못 냈고, 다음 날 휴대폰 전원을 켜지 않았고, 회사 로비에서 출근을 망설이거나 때로는 헤픈 웃음과 사죄로 무마하려 했다. 그럼에도 술이 좋았다. 술의 취기는 우리의 연결고리였으니까. 더군다나 연말은 매일이 들뜬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동네 와인 바 사장이다. 하지만 이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취기가 육체적 노동을 반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서서히 불고 있는 ‘논알코올 드링크’ 바람도 그렇다. 알코올이 없는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통한 새로운 일상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실제로 뉴욕은 이미 4~5년 전부터 알코올이 없는 칵테일인 목테일이 인기를 끌었고, 이제는 맥주와 와인 등 다양한 주류로 확장되고 있다. 화려한 DJ 부스와 타투 코너, 춤추는 사람들, 여느 바나 클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지만 목테일과 콤부차, 무알코올 맥주만 판매하는 팝업 바가 리스본의 한 호텔에 이벤트성으로 문을 열기도 해서 주목을 받았다. 일종의 논알코올 바다. 실제로 이런 논알코올 바도 하나둘 늘고 있는 추세다. 물론 뉴욕에 한해서.
이 흐름에 맞춘 캠페인을 발 빠르게 진행한 나라도 있다. 영국 공중보건국은 2015년부터 과도한 음주가 이어지는 12월의 악화된 건강을 1월의 금주로 되찾자는 ‘드라이 재뉴어리(Dry January)’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캠페인은 대중에게 꽤 큰 호응을 얻었고, 다른 나라에도 전파됐다. 프랑스 정부 역시 드라이 재뉴어리 캠페인을 도입하려 했지만 엄청난 반발에 무산됐다. 프랑스의 유명 셰프인 알랭 뒤카스는 드라이 재뉴어리에 맞서 1월 한 달 동안 와인 가격을 인하하는 행사까지 열 정도였으니까.
국내에도 무알코올 맥주 생산이 늘어나고, 저도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소주의 도수가 알게 모르게 낮아지는 것도 상술보다 소비 취향의 변화에 발맞춘 것에 가깝다. ‘진로이즈백’이나 ‘대선’의 레트로 감성도 16.9도의 낮은 도수이기 때문에 먹힌 것이다. 이런 논알코올로 향하는 흐름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논알코올 드링크가 아니라 술을 즐기지만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싶은 이들을 위한 대안이다. 일부러 술을 마시지 않는 행동을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관련 책도 많이 출간되고, 온라인상에서 ‘#sobercurious’라는 해시태그 게시물도 상승하는 추세다. 손에 술병을 들고 있던 과거의 만취 사진과 논알코올 드링크를 손에 든 지금의 건강한 사진을 대조해서 올리거나 여행이나 요가, 독서, 미식 등 술 마시는 시간을 이제는 어떤 일상으로 채우는지, 그 시간에 대한 소회를 글로 써서 올리는 피드가 주를 이룬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전과 후랄까.
어찌됐든 알코올의존증에 대한 치료가 보편화된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하는 트렌드다. 크래프트 맥주나 내추럴 와인처럼 감각적인 레이블을 붙인 무알코올 맥주나 화이트 스피릿, 맥주 출시량도 늘고 있다. 코카콜라는 지난해부터 논알코올 칵테일 라인업인 ‘바 논(Bar None)’을 애틀랜타 지역에 한정 판매하고 있다. 상그리아와 드라이 에이지드 사이다, 벨리니 스피릿, 진저 뮬 등 총 4가지다. 일종의 테스트 음료인데 이전 세대보다 술을 마시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보다 술을 더 마시지 않는 Z세대를 위해 전략적으로 내놓은 음료다.
아직 맛이 소비자를 충족시키는 수준은 아니다. 논알코올 와인도 있는데 아직 내추럴 와인도 시장에 완전히 뿌리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논알코올 와인을 대중이 소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금주 혹은 술에 취하지 않는 트렌드는 계속 확장 중이다. 아직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비건이나 베지테리언, 팜투테이블, 내추럴 와인, 지속 가능한 생산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환경과 육체, 정신적 건강을 지향하는 흐름과 맞물린다. 호황이 이어지던 이전 세대는 취해도 자산이 불어났지만 금융사태나 메르스, 코로나19 등 불황의 악재가 끊이지 않는 지금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취기보다 내일을 위한 현실적인 고민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건강한 신체와 우리의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일상이 올바른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란 믿음은 타당하다.
그럼에도 논알코올의 한계는 분명하다. 논알코올 음료가 입안 가득 메우는 샴페인의 상큼한 기포나 와인의 풍미, 위스키의 보디감과 여운, 진의 시원한 출렁거림, 진한 맥주 홉의 알싸함을 느끼게 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비건 음식이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와 진짜 치즈를 올린 피자를 대체할 수 없는 이유와 마찬가지다. 산도르 마라이의 말을 인용한다면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르는 정열” 같은 우리의 젊은 치기를, 젊은 취기를 갈망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술은 마셔야 제맛’이니까. 물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다만 건강한 일상을 위한 제정신은 챙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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