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직업인 류준열은 쉼 없이 일하는 남자로 정평이 나 있어요. 데뷔 이후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해왔죠. 흥행 결과나 관객의 평가 등에 연연하는 스타일인가요?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작품 하나를 만드는 과정은 저희끼리만 알 수 있는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좋았던 기억들이 공개 후 결과와 동일할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과정에서 당신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배우죠?
맞아요. 저뿐 아니라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다들 열심히 해요. 결과가 좋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래도 외부 영향을 받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지금 헤어스타일은 거의 장발이네요. 곧 촬영에 들어갈 작품 때문에 기른 건가요?
맞아요. 최동훈 감독님의 신작 속 역할 때문에 부득이 기르게 됐어요. 하하.
잘 어울리네요.
감사합니다. 머리를 기른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더라고요. 이전 영화 <봉오동 전투>에선 굉장히 머리가 짧았어요. 그때부터 길러 지금에 이르렀죠. 전국의 모든 긴 머리 소유자 분들에게 존경을!
류준열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신기한 게 있어요. 보통 단역과 조연 시절이 긴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느껴져요. 2015년 선보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부터 곧장 상승세를 탔어요. 대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가요?
저요? 글쎄요. 갑자기 어디에서 나타났냐고요? 하하. 연극영화과를 열심히 다녔고, 28세에 졸업했어요. 이후 독립 영화 촬영을 하고 연극도 했어요. 2013년쯤부터 시작했고, 2015년 데뷔작 <소셜포비아>가 개봉했죠.
데뷔 이후 곧장 류준열은 톱스타 반열에 올랐어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신원호 감독님도 그렇고, 동료 배우들도 그렇고, 이후에 만난 감독님도 운 좋게 다 좋은 분들이었고요. 20대 시절은 남들만큼 평범하게 보냈어요. 남들 재수하고 대학 갈 때 저도 재수해서 대학생이 됐죠.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재학 중에 남들처럼 오디션도 봤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도 영화 하는, 연기하는 친구들하고만 어울렸던 것 같아요.
오로지 이 길만 바라봤다는 거네요.
맞아요. 20대 청춘이 그렇듯 허투루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언제나 내 마음속 1순위는 연기였어요. 밥을 먹어도, 놀아도, 게임을 해도 항상 연기하는 친구들과 어울렸어요. 그 사실은 분명했어요.
그럼 연기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제 삶 속 절반 정도는 차지하고 있을 거예요.
인생 절반은 연기라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요즘 삶에서 밸런스를 찾는 게 중요함을 느껴요. 흔히 말하는 ‘워라밸’처럼요. 연기는 저의 반이고, 나머지는 또 다른 삶이에요. 이게 섞이기도 하니 딱 잘라 구분하긴 어렵지만요. 아무튼 연기라는 직업 이외에 또 다른 작업도 많이 하고 있으니 절반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다른 작업이라면 어떤 것들일까요?
사진도 찍고, 여행도 하고 그래요.
그럼 이제 나머지 절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여행 예능 방송 <트래블러>를 보며 ‘저 사람은 진짜 여행을 많이 해봤구나!’라고 느꼈어요. 일할 때 말고는 여행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편인가요?
일을 하지 않을 때 여행을 떠난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것 같아요. 삶 속에서 일이랑 여행을 구분하기보다는, 여행을 하면서 ‘삶 자체가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행이란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게 아니라, 오늘 화보 촬영 역시 여행 중 일부일 수 있다는 의미죠. 많은 이들이 주중 일을 하고 주말에 여행을 하잖아요. 열심히 일한 후 휴가를 내어 떠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저도 영화를 준비하며 평일에 일을 하고 주말을 쉰다고 계획하니, 평일에 하는 일들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어요. 주말만 기다리게 되고.
어딜 가고 싶은데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가요?
그렇죠. 영화를 준비한다는 건 무척 즐겁기만 한데, 이 작업을 왜 일로만 생각하고 주말만 기다리는 것인지 너무 바보 같다고 생각했어요. 소처럼 일할 때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정말로 재미있기만 했어요. 근데 최근에 남들처럼 일과 휴식을 구분 지었더니 일하는 시간이 고통스럽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평일에도 여행하듯 일하자라고 마음먹었죠.
배우라는 직업은 그게 가능할 것 같아요. 직장인은 매일 같은 곳에 출근하는데 배우는 출근지도 종종 바뀌잖아요.
그런 것보다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게 여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몇 시까지 이걸 하고 쉬어야지’라는 생각을 안 해요.
2019년 연말께 꽤 오랫동안 해외에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로스앤젤레스에 3개월 정도 있었어요.
공부하러 갔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간 김에 영어 공부를 하면 어떨까 했죠. 여행처럼 갔는데, 그 일정 중에 학교를 다니기로 한 거죠. 근데 평일에 학교 가고 주말에 쉬어보니까 평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일에 대한 사고방식이 변화한 듯하네요.
맞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도 평일이 힘들었어요. 그렇게 느낀 후부터는 평일과 주말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어요.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서 영어는 많이 늘었어요?
아니요. 하하하.
여행 버킷 리스트가 존재하나요?
어디를 꼭 가기보다는, 딱 정해진 내 집이 없는 것 같아요. 여행을 가기보다는 그냥 정처 없이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여행지가 마치 집인 듯 느껴지는 순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여행을 가도 특별한 걸 하지 않고 그 지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곤 해요. 우리 동네 주민 바라보듯 말이죠.
<트래블러>를 보면 류준열 곁에는 항상 카메라가 있어요. 언제부터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원래 사진을 좋아했어요. 조금 더 깊게 관심을 기울여 촬영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어요. 팬들이 선물로 주신 카메라가 계기가 되었죠. 그때부터예요. 너무 재미있게 셔터를 누르고 있죠.
아주 잘 찍던데요? 리터칭도 직접 하고요?
네. 직접 해요. 그런데 공개하고 싶은 사진들은 따로 있어서 별도로 작업해 모아두고 있어요.
SNS를 보면 사진과 함께 한 줄씩 쓴 글들도 좋더군요. <아레나>에서 사진 칼럼을 한번 진행해보실래요?
칼럼이요? 그럼 저도 <아레나> 명함이 나오는 건가요?
류준열은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의 어떤 면을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삶의 밸런스를 보는 것 같아요. 뷰파인더 속 세상의 균형, 조화 등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제가 배우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고민거리나 흔들리던 기준을 바로잡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작은 프레임 안에서 말이죠. 그게 아주 재미있어요.
사진은 순간의 역사를 담아낸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고, 정리한다는 건 그 속에 담긴 역사를 재정립함을 의미하겠죠. 류준열에게 사진은 찰나의 재미로 끝나는 건지, 그걸 다시 정리하며 역사를 써나가는 것인지 궁금해요.
그럼요. 사진은 찍는 것보다 어떻게 정리하고 보여주는지가 더 중요하고, 작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류준열의 일상을 훔쳐보면 축구에 대한 애정이 굉장한 듯했어요.
네. 맞아요. 저는 다시 태어나면 축구 선수가 될 거예요.
포지션은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축구 선수면 돼요.
언제부터 사랑이 싹텄나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요.
어린 류준열에게 축구는 어떤 매력으로 다가왔나요?
그때는 남들과 어울려 축구를 보는 재미가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려 놀 만한 게 축구 말고 없었거든요. 아니면 농구였죠.
다음 생애에는 축구 선수가 될 거라는 말이 재미있어요. 그러기 위해선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그렇죠. 재능 없인 힘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말이에요. 그걸 이겨낼 수 있는 노력이란 게 있으니까요.
직접 공을 차는 걸로 아는데, 어떤 이들과 어울리나요.
너무 재미있어요. 축구를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해요. 어떻게 하면 아내를 잘 달래고 나와 공을 찰까 고민하는 형들이죠. 하하. 휴일에 공 한 번 차려고 노력하는 분들이에요. 진짜 건강하죠?
리오넬 메시도 직접 만나보았고, 손흥민과는 심지어 친해요. 그 외에 꼭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특별히 없어요. 저는 이미 손흥민 선수를 만났고, 소원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그와 만나면 주로 무슨 이야기를 해요?
축구 이야기만 해요.
이외에 류준열의 또 다른 관심사는 뭘까요?
옷이요.
오늘 폴로 랄프 로렌과 <아레나> 표지 및 화보 촬영을 했잖아요. 지금도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와 폴로 랄프 로렌의 협업 보머 재킷을 입었고, 폴로 랄프 로렌 셔츠를 입고 있네요.
전부 제가 사 입은 거예요. 원래 폴로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오늘 촬영 결과물이 좋았나 봐요. 폴로 랄프 로렌 브랜드의 매력 때문에 좋아하나요?
분명 매력이 있죠. 모든 연령층이 입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또 20대 시절에 활용한 스타일을 30대에도 입을 수 있고요. 옷 관리가 중요하지 디자인 자체에 큰 변화가 없어서 가능한 일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폴로 랄프 로렌과의 촬영은 굉장히 기쁜 일이었죠.
그럼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옷들을 좋아하나요?
거창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진 않아요.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스타일을 좋아하죠. 저는 잡다하게 구매하기보다 진짜 좋은 거 하나를 사는 편이에요. 그리고 그걸 오래 입어요. 옷장 정리를 하다 보면 15년 넘은 재킷도 있어요. 아직도 입고요.
옷에 대한 관점과 삶의 형식이 꽤 유사해 보여요. 궁극적으로 류준열이 꿈꾸는 삶의 형태가 있나요? 아니 바꿔 말해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요?
요즘 매일 고민하는 문제예요. 결국엔 지금 제가 원하는 걸 하는 게 중요한 듯해요.
30대의 류준열이 50대가 되어도,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면 행복한 삶이겠네요.
맞아요. 아까 말했듯 평일과 주말을 똑같이 보낼 수 있는 삶이 중요해요. 뭔가를 구분 짓는 것 자체가 저랑 잘 맞지 않아요. 되려 그런 구분 짓기를 피하려 노력하고요.
최근 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중에 ‘조기 은퇴’가 있어요. 열심히 일해서 자금을 마련하고 재미있고 여유 있게 살아보자는 거죠. 그럼 류준열은 배우라는 직업을 언제까지 하고 싶어요?
저는 이 질문에 오히려 반문해보고 싶어요. 은퇴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겠다는 건, 그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걸까요? 물론 개인의 삶과 취향을 존중해야겠지만, 반대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재미있게 오래 한다면 은퇴를 위해 인내해야 하는 고통은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일이 내 삶의 친구가 된다고 생각해요.
아주 긍정적인 청년인데요?
이것만 참으면 쉴 수 있어가 아니라, 참지 말고 재미있게 하자. 그게 제 삶의 방식이에요.
그나저나 올 한 해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 촬영으로 여념이 없겠네요. 작품으로 류준열을 만나보기도 어려울 것 같고.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아레나>에서 우리 만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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