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의 부장들> 예고편을 보고 왔다. 댓글을 보니 사람들의 기대가 크더라.
관심이 많이 모인 것 같다. 관객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너무 궁금하다. 이 영화가 쉬운 주제는 아니니까.
민감한 소재를 다뤘다. 역사일 뿐인데, 중심 잡고 설명하기 쉬운 역사는 아니다.
영화는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국민이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 만들었다. 내가 연기한 경호실장 곽상천이 총을 맞고 기어갔던 방향이나, 피가 묻어 있던 방향, 그 상에 놓여 있던 음식들까지. 실제 사건 현장과 동일하게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 선배님의 의상은 당시 대통령의 의상을 맞춤 제작한 테일러를 섭외해 만든 것이다. 디테일과 객관적 사실 두 가지 요소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어 언제 박하사탕을 주었는지까지. 정말 정교하다.
세밀한 재현도 놀랍지만 취재와 조사도 만만치 않았겠다.
이미 나와 있는 사료들을 근거로 했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캐릭터가 당시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을 더했다.
곽상천의 모티브가 되는 경호실장은 실제 작고 다부진 체형이다. 이희준은 키가 큰 배우라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고민했을 것 같다.
일단 엄청 놀랐다. 감독님이 왜 나한테 이런 역할을 줬는지 의아했다. 평소 내가 인텔리 역할을 자주 맡았는데. 하하. 처음에는 의아했고 이런 역할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분도 했다. 곽상천은 복합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아주 단순한 인물이다. 직선 같은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곽상천 외에도 이병헌이 연기한 김규평과 곽도원이 연기한 박용각도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가장 끌린 인물은 누구였나?
사실은 곽도원 선배님이 연기한 박용각이 조금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믿었던 대통령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는 인물이다. 나는 그런 심리에 더 공감된다. 곽상천처럼 대통령을 완전히 믿고 목숨 바칠 각오로 살아가는 인물보다 더 끌렸다.
박용각이라는 실제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낯설게 느끼는 관객도 많을 것이다.
이 영화를 작업하면서 자료를 찾아봤다. 그런데 남아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가족을 인터뷰한 자료도 없다. 그가 왜 사라졌는지 궁금해지더라.
한 나라의 요직을 맡은 사람이 어떻게 증발할 수가 있나?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영화는 그중 가장 유력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무섭게 느껴졌다.
실화라는 점에서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다.
예민한 주제다. 아직은 너무 가까운 역사고, 이 일에 대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많고 또 극단적인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영화다. 이런 영화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는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했으리라고 본다. 중심을 잡고 이야기해야 정치적 입장에서 조금 더 자유로울 테니까.
이병헌 선배님도 그런 노력을 한 것 같다. 나 역시 곽상천을 맡으며 다양한 조사를 했다. 특히 이 인물에 대한 상반된 평가, 책들, 자료들을 보았다. 실제로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상상도 많이 했다.
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을 것 같다. 나라를 위한, 대의를 위한 최선의 일이라고 확고히 믿고 있었던 것 같다.
온 국민이 관심 갖는 이슈다 보니 촬영 현장 분위기도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긴장된 상황이었다. 애드리브를 한다는 게 무척 조심스럽고 신중했다. 사실을 근거로 조사한 대사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산의 부장들>에 출연한 배우들이 서로 칭찬하는 형식의 예고편을 봤다. 예고편에서 이성민은 이희준이 몸을 불리고 촬영장에 나타난 것을 보고 감탄하더라.
감독님이 역할을 제안했을 때, “저는 살을 좀 찌워야 되지 않나요?” 물으니, 그냥 연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근데 병헌이 형은 마른 체격으로 나오는데, 나까지 마른 몸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외형적인 차이를 보여줘야 할 것 같고, 실제 모티브로 삼은 인물도 덩치가 컸으니까. 한 일주일 뒤에 아무래도 찌우는 게 나을 것 같아 다시 물었다. “희준 씨가 원하면 해도 되는데, 강요는 못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얼마 전에 다시 물으니 다 계획에 있었다고 하더라. 하하. 일부러 강요하지 않았고, 처음부터 내가 알아서 찌울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3개월간 몸을 100kg까지 만들었다.
스틸 컷을 보면 몸이 굉장히 단단한 것 같다. 비만인으로서 보기에 단순히 살만 찌운 게 아닌 것 같다.
치킨도 많이 먹었지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루 두 번씩 했다.
단기간에 살을 찌우는 게 힘든가, 빼는 게 힘든가?
찌는 건 계속 먹으면 되지만 빼는 건 식욕을 참아야 하니까 더 힘들다. 배우를 시작하고 나서 그렇게 죄책감 없이 먹은 건 처음이다. 사실 좋았다. 하하. 매일 술을 마셔도 죄책감이 없었다. 안주도 마음껏 집어 먹을 수 있었다.
갑자기 살을 찌웠는데, 주변에서 걱정하지 않나?
병원에선 분명히 당뇨가 올 거라고 했다. 무섭더라고. 그래서 촬영 끝나고 바로 뺐다. 내가 겁이 많거든. 오래 살고 싶다.
다시 <남산의 부장들> 이야기를 하면, 곽상천 신 중에서 주목해야 할 장면을 꼽아보자.
김규평과의 갈등이다. 멱살 잡고 싸우는 신이다. 그때 곽상천은 각하를 국가라고 생각하고 신념을 갖고 싸운다. 권력 욕심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의 확신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정말 다채로운 역할들을 연기했다. 배역 선택의 기준은 뭔가?
친한 감독님도 그러더라. “너는 대체 작품 선택 기준이 뭐냐?” 파악이 안 된다는 거다. 대본을 보았을 때 심장이 뛰고 너무 하고 싶어서 흥분되는 것, 역할의 비중을 떠나서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 작품이 선택 기준이다. 근데 그 재미의 기준은 항상 변한다. 그래서 작품들이 일정하지 않다. 하하.
극단 차이무 시절까지 포함하면 꽤 오랜 기간 연기해왔다. 연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순간은 언제였나?
최근에 출연한 <미쓰백>이 전환점이었다. 그전에는 잘해야겠다,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쓰백>을 하면서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여자를 지키려고 하는지 공감이 잘 안 되더라. 기존에는 표현에 관심을 뒀다면, 어느 순간 인물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해보려고 애쓰게 됐다. 그러면서 결국은 이 방식이 더 좋은 연기임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연기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졌다. 그다음 영화가 <1987>이었는데, 내가 연기한 그 기자분이 기사를 쓸 때 무섭지 않았을까? 그 당시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뭐가 제일 무서웠을까. 그런데 왜 기사를 썼을까. 인물의 고민을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 내 연기가 어릴 때와는 달라지고 있고, 인물에 접근하는 태도도 많이 변한 것 같다.
가상의 캐릭터가 있고, 실화를 기반으로 한 캐릭터가 있다.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 배우는 그 인물의 행동에 대한 추측을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상상하게 된다. 반면 실제 인물은 자료가 필요하다. 그래서 실제 인물을 연기하는 게 더 어려웠을 것이다.
맞다. 하지만 결국 상상을 해야 한다. 상상의 여지가 남아 있다. 그 사람의 생각을 자료로 전부 알 수는 없으니까. 자료로 채울 수 없는 나머지 부분이 배우의 영역인 것 같다.
배우로서 자극이나 영감을 얻는 순간이 있나?
늘 인터뷰를 한다. 내가 맡은 역할과 비슷한 사람을 찾고, 역할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이희준의 화두는 뭘까?
빅터 프랭클이 쓴 책을 보고 감동받아서 그렇게 살려고 한다. 만약 지금 삶이 내 두 번째 삶이면 어떨까. 지금 하려는 선택이 첫 번째 삶에서 내린 잘못된 선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번째 삶이라는 생각으로 살려고 애쓴다. 선택의 기로에서 지금이 두 번째 삶이라고 생각하면 단순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는 죽는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매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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