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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아라비안 나이트

우리는 아직도 중동의 어두운 면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인공 섬 위의 7성 호텔과 사막 사파리 옆의 스키장, 디즈니랜드의 1.5배인 테마 파크는 돈이나 허세만으로 도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의 서정민 중동 전문 기자가 본 중동의 밝은 미래.

UpdatedOn February 19, 2006

  18세기와 19세기 서양 여행객이 그려낸 중동의 모습은 이국적 낭만이었다. 왕궁을 방문한 정부 관료는 비밀스러운 하렘의 모습을 전하기에 바빴다. 반나의 하렘 여성 사진이나 스케치도 유럽 책에 많이 소개됐다. 초콜릿색 피부에 뚜렷한 이목구비의 아랍 여성은 유럽 남성의 호기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에서도 아랍은 낭만적인 곳으로 등장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출신 로렌스의 눈에 비친 아랍의 신비감이 영화 전반을 흐른다. 홀로 말을 타고 광활한 사막을 거쳐 오아시스에 도착하는 로렌스는 이미 산업 사회에 들어간 유럽인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아랍에 대한 낭만과 신비감은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사라져버렸다. 유대인과 서구인이 아랍에 대한 반감을 만들어왔다. 특히 팔레스타인 땅에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부터 특히 ‘반아랍 담론 생산’이 거세졌다. 미국의 역할도 컸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으로 이스라엘에 이어 중동 내 두 번째 교두보인 이란을 잃은 미국은 ‘이슬람=테러리즘’이라는 등식을 더욱 다져 나갔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이 등식을 적용해 미국은 군사적인 보복을 단행했다. 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그리고 지난 수년간 이라크 내 독립 투사 모두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었다.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은 명확한 테러지만 그 이면에 있는 저항의 원인은 가려진 채 현상만을 강조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마호메트(무하마드) 풍자 만화’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평 12컷으로 현재 유럽과 이슬람권은 ‘문화 전쟁’ 중이다. 마호메트가 심지에 불이 붙은 폭탄 모양의 터번을 쓴 모습으로 등장한다. 명백히 이슬람의 폭력성을 냉소적으로 표현한 만화다. 이번 만평은 중동의 테러 문제를 부각하려는 한 유럽 언론사의 의도였다. 사실 중동권도 ‘중동=테러리즘’ 공식에 대해 불만이 있지만 완전히 부인하지는 않는다. 테러가 발생하는 현상을 직접 목격하고 피해를 가장 많이 입는 당사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테러리즘’은 또 다른 얘기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 단체가 대서방 테러를 본격화한 것도 1991년 걸프전 이후였다. 미국이 이슬람의 성지인 사우디에 주둔하기 시작한 해였다.

테러로 인해 야만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중동. 하지만 현지 모습은 서구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다. 야만적인 사회에서 휴대폰으로 ‘vote4nour’란 메시지가 올 수 있을까? 지난해 이집트의 대통령 선거에서 내 휴대폰에까지 날아온 문자 메시지다. 야당 지도자 아이만 누르에게 표를 던지라는 선거 캠페인의 한 방법이었다.

이처럼 중동 지역은 물질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두바이나 카이로는 물론 전화를 겪은 바그다드까지 현대식 제품의 광고가 난립할 정도다. 바그다드에는 삼성과 LG 등 우리나라 전자 제품 광고가 판을 친다. 특히 두바이가 있는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하고 있는 나라다. 전 세계 타워 크레인의 10%가 두바이에 몰려와 있다. 삼성물산이 짓고 있는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두바이 건설 현장에만 수십 대의 타워 크레인이 있다. 높이 800m 이상의 160층짜리 건물을 올리기 위해 타워 크레인은 더 높이 올라갈 전망이다. 팜 아일랜드와 더불어 ‘더 월드’라는 세계 최대 인공 섬도 들어서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문을 연 실내 스키장도 압권이다. 높이 62m, 길이 400m, 면적 3,000m²의 규모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실내 스키장이다. 두바이는 이제 한여름 외부 온도가 영상 50℃에 이르는 열사의 사막 사파리와 스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타이거 우즈가 매년 출전하는 두바이 데저트 클래식이 열리는 두바이의 골프장을 포함한 8개의 골프장 외에도 추가로 4개가 더 건설되고 있다. 석유보다 비싼 물이 매일 수천만 리터 뿌려져야 하는 등 유지 비용이 엄청난 사업들이다. 미국 디즈니랜드의 1.5배에 이르는 두바이 랜드도 50억 달러의 예산으로 추진되고 있다. 수심 20m의 해저 호텔 하이드로 폴리스도 구상 중이다.

고유가로 인한 중동의 석유 수입 증가로 이같은 ‘두바이식 개발 신드롬’은 현재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가장 엄격한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도 홍해 연안에 대규모 무역항을 건설 중이다. 반미의 대표인 리비아도 이제 국가의 중추 산업인 석유 산업을 개방하고 있다. 다른 강성 국가인 예멘·시리아 등도 관광 산업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외부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중동의 진정한 변화는 사회 밑바닥에서 시작되고 있다. 위성 방송과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이제 서구 문화에 접근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폐쇄적인 독재 정권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현상이다. 여기에 휴대폰은 특히 여성에게 자유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가부장적 대가족 제도하에서 여성이 사적인 통화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개인 통신 수단은 여성에게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휴대폰이 보편화된 지난 몇 년간 중동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일부 여성은 이를 ‘비밀스러운 직업’에 쓰기도 한다. 휴대폰을 손에 쥔 여성이 밤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에서 매춘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지만 휴대폰을 이용한 개인적인 움직임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카이로·바그다드·다마스쿠스뿐만 아니라 이슬람 혁명 정신이 아직도 유지되는 이란의 밤거리에는 이제 전화를 통해 고객을 맞이하려고 서성대는 여성이 부쩍 늘었다. 무역과 교통의 중동 내 거점인 두바이는 아예 조직적인 매춘을 눈감아주고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와 생활 능력이 높아지면서 큰소리치던 중동의 남성도 이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부인에게 맞고 사는 남편의 수가 수십만 명이라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산유국이 아닌 이집트·시리아·수단· 요르단 같은 빈곤한 중동 국가에서는 남자가 결혼을 위해 40줄을 바라봐야 한다. 여성에게 지불해야 할 ‘신부 값’을 마련하고 살 집을 구하기 위해 수십 년을 벌어야 결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가진 여성의 콧대는 높아만 가고 집안에서의 발언권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자라난 소녀의 모습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확실히 표현한다. 축구장에서는 자국의 국기를 얼굴에 그리고 친구와 응원에 나선다. 수십 개에 달하는 시내 중심가의 디스코텍에는 밤을 지새며 노는 여성이 급증하고 있다. 언니는 히잡(이슬람 여성의 머리 두건)을 쓰지만 동생은 쓰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예멘·이란 등 엄격한 이슬람 사회에서는 아직도 검은색 히잡이 주류를 이루지만 더 개방된 국가에서는 이제 그 색깔이 파스텔 톤에서 원색의 빨간색으로 머리를 장식한 여성이 거리를 활보한다. 유럽과 가까운 북아프리카의 아랍 국가에서는 아예 히잡을 쓴 여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새로운 패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랍권의 패션쇼는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가장 개방된 국가인 레바논에서는 이제 패션쇼에서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여성의 상체를 보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구와 우리 언론은 아랍권을 신정 일치 국가라고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종교가 정치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권 36개국 중 이슬람법을 정치 및 사회 제도에 적용하는 나라는 단지 두 곳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유럽식 실정법이 법 체계를 이룬다. 정치 제도나 경제법도 모두 세속적이다. 결국 문제는 중동 정권의 대부분이 독재 체제라는 데 있다. 이에 저항하는 반정부 세력이 과격하게 투쟁하고 있을 뿐이다.

수년 전 중동학 관련 박사 학위를 받은 한 우리나라 여성은 팔레스타인으로 현지 조사를 떠나기 전에 크게 걱정했다. “테러가 난무하고 엄격한 이슬람법을 적용하는 지역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하지만 3개월 동안의 현지 조사를 마친 후 그는 “중동도 사람 사는 곳이다” 임을 강조했다. 우리는 중동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두바이의 괄목할 만한 발전도 고유가의 덕을 보는 산유국 현상이라고 치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두바이에는 석유가 그리 많지 않다. 두바이의 주요 세일즈 품목은 ‘상상력’이다. 광활한 사막에 상상력을 발휘해 중동 최대의 무역·금융·교통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중동은 이제 이렇게 아이디어가 사회·경제 발전을 주도하는 지역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Arabia Now

1 레바논의 한 패션쇼에 나온 도발적인 의상. 등 뒤에 새겨진 글씨를 해석하면 Oh, hey lady!

2 이슬람식 수영복을 볼 수 있는 이집트의 홍해. 3 타워크레인이 하늘을 수놓은 두바이 외곽의 주마이라 지역 건설 현장.

4 다국적 기업과 금융 기관이 몰려 있는 셰이크 자이드 로드.

5 카메라 폰을 든 쿠웨이트 여성.

6 이집트 카이로의 소문난 쇼핑몰인 시티스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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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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