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는 지난 몇 년간 전 지구적 열풍이었다. 패션, 공간, 제품, 서비스 등 뉴트로를 차용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는 어땠을까. 뉴트로 열기라면 폭스바겐의 e-비틀을 비롯한 몇몇 차종이 있지만, 이것들은 이벤트에 가까웠다. IT와 패션 등 다른 산업 분야에서 화두로 떠오른 젠지(GENERATION Z)를 겨냥한 자동차 서비스 상품 역시 드물다. 자동차 산업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 걸까.
EDITOR 조진혁
자동차만의 라이프스타일
요즘 시대에도 석기 시대 같은 분야가 존재한다.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하는데 따라가지 못한다. 첨단 분야인데도 과거에 머무른다. 국방이나 우주 개발 분야가 그렇다. 요즘 개인 컴퓨터 성능이 과거 워크스테이션보다 뛰어나고, 스마트폰도 용량이나 처리 장치가 컴퓨터 못지않게 우수하다. 그런데 군용 장비나 우주선에 들어가는 컴퓨터는 수십 년 전 규격 그대로다. 날씨와 환경 등 악조건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하고, 특정 용도로만 써야 하므로 설계가 어렵고 개발비가 많이 들어 쉽게 바꿀 수 없어서다. 안정성이 중요해 초창기부터 써온 검증된 부품을 바꾸지 못한다. 그냥 좋은 부속 갖다 쓰면 될 듯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동차도 은근히 발달이 더딘 분야다. 첨단 기술의 결정체는 맞지만 타 분야와 접목이 빠르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이 본격화된 시점은 2007년쯤이다. 그 뒤 2~3년 내로 스마트폰이 급속하게 보급됐다. 당시 자동차에도 모니터가 달려 있었지만 조작 방식이나 표시 내용은 스마트폰을 따라갈 수 없었다. 자동차 모니터 자리에 스마트폰을 갖다 붙이면 통신망을 활용하는 등 기능 향상이 단번에 이뤄지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본다. 그런 바람이 이뤄진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것 또한 스마트폰 그대로는 아니고 자동차 시스템에 융화된 형태여서, 스마트폰의 성능과 기능을 온전히 따라가지는 못한다.
기술만 아니라 자동차의 어떤 부분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자동차는 개발 기간이 오래 걸린다. 세대교체 주기는 6~7년이고 빨라야 4~5년이다. 연식 변경 모델이 해마다 나오지만 간단한 개선에 그친다. 현재 트렌드를 반영하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를 반영한 자동차는 4~5년 후에나 볼 수 있다. 이미 트렌드가 한참 지나고 난 뒤다. 트렌드를 예측해서 반영할 수도 있겠지만, 4~5년 후 트렌드를 예상하기는 힘들다.
자동차는 삶의 필수품이다. 직접 소유하지 않더라도 집 밖으로 나가면 어디서든 마주친다. 자동차는 당연히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따른다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지난해 두드러진 라이프스타일 중 하나는 ‘뉴트로’다. 새로운 복고를 뜻한다. 단순히 과거 것을 불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요즘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복고다. 패션, 가전, 식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뉴트로 열풍이 불었다. 아날로그 감성을 풍기지만 첨단을 더해 요즘 시대에 활용하는 데 문제없다. 그런데 자동차 분야는 뉴트로 열풍이 그리 뜨겁게 불어닥치지 않았다.
자동차 분야는 복고가 한 장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과거 모델을 재해석하거나 영감을 받아 최신 모델에 반영한다. 가끔 복고 모델이 유행을 탄다. 자동차는 뉴트로 열풍이 불기 전부터 뉴트로를 전파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와 자동차의 뉴트로는 발맞춰 움직이지 않는다.
최근에 나온 뉴트로 모델이 없지는 않다. 504 쿠페를 재해석한 푸조 e-레전드, 클래식 미니 일렉트릭, 폭스바겐 e-비틀, 포니의 환생이라 불리는 45 콘셉트카, 1970년대 콘셉트카를 되살린 BMW 가르미슈, 재규어 E-타입 제로, 과거 모델을 복원한 애스턴마틴 DB4 GT 자가토 컨티뉴에이션 등 여러 뉴트로 모델이 등장했다. 그러나 콘셉트카나 일회성 스페셜 모델이 대부분이다. 모터쇼에서도 한 해 흐름을 주도할 정도는 아닌, 여러 작은 트렌드 중 하나에 그쳤다. 정작 일반인이 생활 속에서 체감할 자동차 뉴트로 트렌드는 거의 없다.
이런 현상은 당연한 결과다. 자동차 회사가 유행에 둔감하거나 유행 따르기를 거부해서가 아니다. 개발 주기가 긴 자동차 특성상 최신 트렌드를 양산차에 담을 수 없다. 게다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유행 주기가 짧다. 현재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개발을 시작해서 몇 년 후 양산차가 나오면 유행은 다 지나가버린 후다.
요즘 라이프스타일을 주도하는 계층은 Z세대(줄여서 ‘젠지’)다. 1995~2010년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젠지는 이전 세대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디지털과 동영상에 익숙하고, 정보 소비가 즉각적이고 직접 찾은 정보를 신뢰하고, 기대 수준이 높아서 완성도 높은 제품을 찾으며,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고 솔직한 소통을 중시한다. 이런 특성을 보이는 데다 소비력이 상당하고 가족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새로운 소비층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는다. 젠지가 소비의 중심으로 떠오르지만 자동차는 이들을 직접 타깃으로 삼지 않는다. 젠지의 연령대는 주요 자동차 구매층이 아니다. 자동차는 타깃을 정해놓고 만들지만 폭을 넓게 잡는다. 특히 대중차라면 타깃을 특정 계층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주요 구매층이 아닌 젠지만을 위한 차를 만든다면 판매를 보장하기 힘들다. 젠지가 아니더라도 특정 계층이 트렌드를 주도한다고 해서 그들에게만 맞춘 차를 내놓기는 쉽지 않다. 자동차는 철저하게 자동차 산업 안에서 유행을 만들어내고 따라간다. 어차피 다른 분야 유행을 따라가지 못할 바에는 ‘우리끼리 잘해보자’는 주의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도 일반 사회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자동차의 발전에 맞게 자체적으로 만들어낸다. 간혹 자동차가 주도한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사회 전반으로 퍼지기도 하는데, 그럴 때는 자동차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일치하지만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
라이프스타일 트렌드가 오래갈 조짐을 보이면 자동차도 따라간다. 예를 들어 아웃도어를 중시하는 레저 문화가 계속되면 자동차 회사는 SUV 차종을 늘려 대응하거나 관련 기능을 강화한다. 뉴트로가 반짝 유행에 그치지 않고 오래간다면 자동차 회사도 뉴트로 모델 출시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잠깐 유행을 따라가기에는 자동차의 대응 속도는 느리다.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고 유지해나간다. 최신 유행을 자동차에서도 보고 싶다면, 자동차 자체의 유행과 사회의 유행이 운 좋게 맞아떨어지기를 기대하거나 그 유행이 정말 오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자동차 산업과 라이프스타일은 다른 길을 다른 속도로 달리는 별개 운명이다.
WORDS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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