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목이 ‘꽃파당’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 선 김민재는 유연하게 몸을 움직이며 한 줄기 꽃 같은 자태를 보였다. 촬영 중에는 포토그래퍼와 다정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하면 될까요?’라고 하는데 민방위 6년 차의 가슴이 뛰는 건 왜일까.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의 인기에 힘입어 승승장구하는 김민재를 만났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촬영을 끝낸 후 마지막 회 방영을 앞두고서였다. 차기작 <낭만닥터 김사부 2>의 촬영을 시작한 시기였다. 그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답했다.
다음 주가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종방이다.
촬영 끝난 지는 한 2주일 됐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이후 다른 일들이 이어졌다. 매일 일하면서 지내다 하루 쉬고, <낭만닥터 김사부 2> 촬영을 시작했다. 너무 바쁘게 보내고 있다.
작품 끝나자마자 새 작품 들어간 거네. 충전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충전은 항상 필요하다. 그보다 담아두었던 걸 버리는 시간이 더 절실하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에서 마훈 역할로 6개월을 지냈다. 마훈의 말투와 표정, 근육들로 살았으니 한순간에 다른 인물이 된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지금은 마훈을 털어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틈틈이 마훈으로부터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는데, <낭만닥터 김사부 2>를 찍다가 가끔 사극 말투가 나올 때가 있다. 그때 다들 재미있게 웃어주신다.
사극이라 발성에 노력을 기울였을 것 같다. 그나저나 평소 목소리도 참 중후하다.
현대극과 다르게 표현하려고 했다. 물론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이 퓨전 사극이라서 현대어를 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캐릭터를 고전적으로 잡았기 때문에 발성을 사극 톤에 맞췄다. 원래 저음이지만 더 낮게 발성할 때도 있었고, 무거운 대사를 전달해야 하는 상황 때문에 많이 신경을 썼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은 주연으로서 부담이 컸을 텐데 다행히 성적이 좋다.
일단 너무 감사한 일이다. 시청자가 좋게 봐주었다는 점이 너무 감사한데, 아직 뿌듯한 마음은 안 든다. 최선을 다했고, 정말 열심히 했지만 아직도 내가 잘한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배우 김민재가 실검에 오르고, 팬들의 피드백도 늘고, 미디어의 관심도 높다. 부담되나?
그렇다. 내 연기에 대한 반응, 현상, 그런 것들은 너무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최대한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이 부담을 느끼면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위축될 수 있다. 흔들리지 않을 거다.
2014년 데뷔했으니 벌써 5년이 됐다. 지난 5년 동안 축적한 것은 무엇인가?
좋은 동료 배우, 감독님과 연기를 하면서 얻은 것들이 많다. 그 내공을 기반으로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을 찍게 됐다. 그래도 한없이 부족함을 느꼈다. 더 큰 역량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연기를 하면서 비참한 순간도 있었고, 뼈저리게 아프고,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진짜 재미있게 찍은 작품이다. 아픔을 겪으면서 많이 배우게 된다. ‘내가 왜 그렇게 연기했을까’ 이런 것들을 느끼면서 배운다. 그러니 값지면서도 아픈 시간이었지.
실패에서 배운다는 뜻인가?
어떻게 보면 실패일 수도 있지만, 순간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냥 겪으면서 배우는 것들이다. 실패라는 생각은 안 한다.
배우를 시작할 때의 목표는 뭐였나?
처음에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고, 그게 배우로서의 내 목표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목표를 세우는 건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을 하기로 했다. 내가 재미를 느껴야 진정성이 더 드러나고, 진실된 모습을 꾸준히 보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통해 누군가는 나를 믿고 보는 배우로 신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믿지 못하는 배우가 될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고 재미있게 일하는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내 목표다. 목표란 이뤄버리면 끝이다. 그것보다는 그 순간 하고 싶은 것, 즐길 수 있는 걸 해야 내가 이런 사람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가 중요하다. 이 순간 재미를 느껴야 한다. 이런 건 보통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다. 성숙하다는 소리 좀 듣나?
하하하. 어려서부터 성숙하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예전에는 그런 말이 듣기 좋았는데, 지금은 성숙해지고 싶지 않다. 어른이 되면 더 많이 책임져야 하는데, 부담된다.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영향력이 커질수록 일이 많아지고, 사람도 모이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늘어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책임감을 갖는 것은 좋지만 책임감에만 함몰되면 사람이 무너지더라. 내가 책임질 건 지고, 재미있는 건 재미있게 하고.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요즘 가장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글쎄 요즘 푹 빠져 있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작품을 촬영하는 중이라 그런 것 같다. 작품 생각을 가장 많이 하지 않나?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 들어가는 단계여서 변화하는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아서 연기 외 다른 재미를 찾기 어렵다.
사극 형식 청춘 멜로물의 원조는 <성균관 스캔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의 드라마는 항상 인기를 끌었다. 스타도 배출됐고.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을 준비하면서 기대한 점이 있나?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을 하면서 <성균관 스캔들>을 다시 찾아 봤는데, 아직도 재미있더라. 기대감은 당연히 있었다. 꼭 <성균관 스캔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로 재미있는 드라마가 되길 바랐다. 하하하.
마훈은 ‘츤데레’를 연상시킨다. 마훈 역을 준비하면서 참고한 캐릭터가 있나?
없었다. 이 소설의 원작자가 직접 각색을 했고,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어서 따로 참고한 것은 없었다. 마훈은 은근히 잘 챙겨주는 남자로, 어떻게 보면 단순한 캐릭터다. 마훈으로서 까칠할 때, 잘해줄 때는 어떤 느낌인지를 많이 생각하고 표현했다. 내가 가진 여러 감정을 부분적으로 증폭시켜 만든 캐릭터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고 했는데, 조선 시대 청년치고 다들 수염이 너무 없더라.
퓨전 사극이라 그렇다. 하하.
함께 호흡한 동료 배우들이 전부 또래다. 또래가 모이니 재미있는 일도 많았겠다.
박지훈은 춤을 추는데, 나도 춤을 좋아한다. 공통분모가 있다. 그래서 정말 편했다. 소소한 얘기도 많이 나눴다. ‘롤’에 대해 얘기하거나, ‘밀덕’ 이야기나 그런 소년들의 대화였다. 촬영을 시작하면 젊은 배우들이다 보니 더 치열하고 예민하게 연기에 임했다. 풀어질 때는 풀어지고, 일할 때는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했다.
서로가 자극이 되었나?
자극보다는 ‘으 으 ’ 했다. 각자 개성이 강한 캐릭터였고, 캐릭터에 맞는 매력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면 서로 응원해줬다. 응원을 주고받으니 기분도 좋았다. 또 누군가는 진짜 귀여운 연기를 펼쳐야 했는데, 주로 박지훈이 맡은 영수 역이 그랬다. 그럴 땐 다들 지치지 않게 피드백도 해주곤 했다.
<낭만닥터 김사부 2> 얘기도 해보자. 두 번째 시즌을 시작한다. 반갑기도 하고, 긴장도 될 것 같다.
<낭만닥터 김사부 2>에 대한 인터뷰 답변은 1년 전부터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배우 경력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즌 1에서 내가 느낀 좋은 감정, 선배님들과의 호흡, 감독님, 작가님 그리고 현장 분위기 그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시즌 2가 제작된다고 했을 때 너무 참여하고 싶었다. 시즌 1의 박은탁이 조금 더 성숙해져서 돌아오고 싶었다. 너무 참여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 소원이 이뤄져서 행복하다. 시즌 1과 다른 점은 박은탁을 연기한 김민재가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겉모습도 그렇지만 여러모로 달라졌다. 시청자에게 알리고 싶은 것은 돌담병원이라는 곳이 심상치 않은 병원이고, 여전히 그 뜻을 잇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돌담병원 식구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세월이 지났으니 박은탁의 직급이 올랐나? 승진했냐는 말이다.
하하.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후배 간호사들이 늘었다. 돌담병원의 고인 물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캐릭터로 매년 새로운 연기를 보이는 것인데, 연기에 필요한 아이디어나 자극은 어디서 얻나?
먼저 음악을 많이 듣는다. 연기를 할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고 기억한다. 사람들이 언제 어떤 표정을 왜 짓는지 살핀다. 그리고 대본을 받았을 때 내가 관찰한 사람들 중에서 해당 캐릭터와 잘 어울리는 사람을 떠올린다. 주로 이런 식으로 대입한다. 작품 전체적인 느낌은 음악과 매치해 파악한다.
드라마와 음악을 매치한다니 신선하다.
음악을 진짜 좋아한다.
만들기도 하나?
그렇다. 쉬는 시간에 혼자 피아노 치는 것도 좋아한다. OST 같은 것도 만들어놓는다.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 OST에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그만뒀다. 집에 데모는 있다. 발매는 아직 안 했지만.
마훈 캐릭터와 어울리는 음악도 생각해봤겠지?
마훈의 감정을 표현한 곡을 썼다. 개똥이와의 신에서 쓰면 좋을 것 같은 멜로디를 만들었다. 다비치 누나들의 노래 중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OST를 모티브로 삼은 노래다. 그리고 나는 드라마의 요소 중에 연기, 연출 외에도 음악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본을 읽을 때도 음악을 틀어 놓는다.
12월호라서 묻는다. 세월이 지나 돌이켜본다면 2019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여러 변화가 있었던 해다. 성격도 그렇고 생각하는 관점도 달라졌고, 가치관도 변화했다. 예전에는 무조건 잘 해내겠다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잘 못해도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으로 임한다. 가치관이 많이 바뀐 시기다.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럴 수도 있다. 올해는 변화를 통해 성장한 해인 것 같다. 모르겠다. 계단을 오르고 있는 건지 정체된 건지 모르겠으나 많은 것들을 배운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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