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내한 | 티머시 섈러메이
티머시 섈러메이는 풍부한 감성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처음 보는 팬을 대한다.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의 밤. 영화 <더 킹: 헨리 5세>(이하 <더 킹>)의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티머시 섈러메이는 그곳에 모인 관객 5천 명의 관심에 열렬히 화답하며 그 순간을 즐겼다. 레드 카펫에 뛰어들듯 등장해 팬들을 향해 곧장 걷고,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대화도 나눴다. 자신의 폰을 꺼내 팬들과 셀피를 찍기도 하고 팬이 건넨 선물을 스크린에 비추기 위해 자신을 촬영 중인 카메라를 열심히 찾기도 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같은 세상엔 이곳의 사람들처럼 다정하고 관대하고 친절한 이들이 더욱 필요합니다.” 스물넷의 이 젊은 배우는 불특정 다수가 자신을 향해 쏟아내는 직접적이고도 뜨거운 관심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아는 것 같다. 아니, 아는 것 이상이다. 그는 마음을 열고 그것을 흡수한다. 흔치 않고 힙한 태도다. 언젠가 <더 킹>을 연출한 데이비드 미쇼는 이렇게 말했다. “티머시는 ‘타임리스’인 동시에 미래에서 온 소년 같다”고.
EDITOR 이경진
62 캐스팅 | 살바토레 페라가모 2020 S/S
폴 앤드루는 피티 워모 2020 S/S로 복귀해 첫 남성 쇼를 선보였다. 이번 컬렉션에서 그가 내비친 건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소통, 그러니까 페라가모에 대한 비전이었다. 전통적인 남성 스타일에서 벗어났고, 소재와 컬러 팔레트에서도 대조와 변주를 보였다. 런웨이에는 다문화 인종 모델을 세웠다. 중반쯤 됐을까? 그래픽 디자이너인 피터 사빌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구부정한 자세로 여유롭게 패션 하우스의 런웨이를 걷는 상업 예술의 대표적 아티스트라니. 파격적이라기보다 확실히 신선하게 흥미로운 올해의 장면이었다.
EDITOR 이상
63 뉴트로 공간 | After Jerk Off
‘을지로풍’의 공간이 서울형(形) 뉴트로의 트렌드를 선도해온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지어진 사무용 빌딩들의 유사한 골조(이를테면 콘크리트 벽과 도끼다시•테라조 바닥)에서 비롯된 몰개성한 성격 탓일까? 언제부턴가 그런 물리적 한계를 뒤트는 기발한 공간의 탄생을 조우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농염하게 등장한 After Jerk Off(애프터저크오프)는 을지로 뉴트로의 클리셰를 산산조각 내며 남다른 존재감을 뽐냈다. 카페 겸 바인 이곳은 공공연한 ‘힙스터의 골목’이 된 을지로에 피어난 ‘저 세상 힙’들 중에서도 가장 전위적이다. 이름에서부터 진하게 풍겨 나오는 섹슈얼한 향기와 불상을 비롯해 소위 ‘현자타임’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의 배치, 그리고 바 테이블 아래 유유하게 헤엄치는 잉어까지. 공간에 짙게 밴 인센스의 향만큼이나 도발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이 인상적이다. 을지로 뉴트로 공간 대다수가 과거 백 년 이내의 문화 코드 복각에 매달린 반면, 애프터저크오프는 가깝게는 수백 년, 멀게는 수천 년 동안 응축되어온 동양의 레트로 코드를 방만하게 흩뿌리며 공간을 완성했다. 그리고 현시대 힙이 그렇듯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WORDS 강필호(<아는동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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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유튜브 크리에이터 | 펭수
최근 뽀로로만큼이나 떠오르는 펭귄이 있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출시한 지 하루도 안 되어 인기 순위 1위를 달리며 구독자 60만 명에 육박하는 대세 크리에이터 펭수. 본래 EBS에서 초등학생 교육을 목적으로 만든 캐릭터인데, EBS 사장의 이름을 서슴없이 부르고 추석 잔소리 근절 캠페인을 벌이는 등 거침없는 ‘되바라짐’으로 어린이보다 도리어 어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열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국밥과 ‘빠다코코넛’을 즐기며 좋아하는 노래로 거북이의 ‘비행기’를 꼽는 모습은 영락없는 동년배. 거기에 남자도 여자도 아닌 시대에 걸맞은 젠더 의식까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할많하않’이란 말을 달고 사는, 우리를 대신해 속 시원하게 내뱉는 펭수를 보며 많은 이들이 대리 만족을 느꼈다.
GUEST EDITOR 김성지 -
65 컴백 | <컴백전쟁: 퀸덤>의 AOA
처음에는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회를 거듭하며 그동안 걸 그룹이 보여주지 못한 콘셉트를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시청자는 그동안 잘 몰랐던 걸 그룹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약한 팬덤과 한정된 수익 모델 때문에 걸 그룹은 섹시함과 청순함의 양자택일밖에 없다는 관습이 대표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AOA가 마마무의 ‘너나 해’를 커버한 무대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징후적이다. 걸 그룹이 작동하는 시장의 관습이 깨질 수 있는 가능성까지 보여줬기 때문이다. <퀸덤>의 최종 승자는 마마무였지만, 이 프로그램으로 가장 힙하게 컴백한 그룹은 AOA였다.
WORDS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66 주얼리 | 앰부쉬
지금 가장 ‘힙’한 주얼리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단연 앰부쉬의 윤안이다. 킴 존스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디올 맨 피날레를 뛴 이후, 윤안은 패션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신데렐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건 단순한 행운이나 요행이 아니었다. 이미 그전에도 카니예 웨스트나 에이셉 라키, 지드래곤 같은 지구에서 가장 힙한 아티스트들이 앰부쉬 주얼리를 즐겨 착용했기 때문에. 앰부쉬는 올해도 알약, 볼펜 뚜껑, 케이블 타이, USB, 라이터와 담배 케이스 같은 일상적인 소품을 활용해 동시대적인 디자인의 주얼리를 선보였다. 게다가 보라색, 초록색, 파란색 같은 개성적인 컬러 도금 모델도 출시했다. 잘나간다는 편집매장엔 항상 앰부쉬의 주얼리가 있었다. 그러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WORDS 노지영(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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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변장 | 페이스 앱
50년 후 내 모습을 보고 싶다면? 나이 든 얼굴을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 페이스앱(FaceApp)을 사용하면 된다. 러시아의 한 업체에서 만든 이 앱은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을 나이 든 모습으로 바꿔준다. 이뿐만 아니라 멍하거나 화난 얼굴 등을 웃는 얼굴로 바꿔주기도 하고 머리와 눈 색깔, 성별도 다르게 만들 수 있다. 1억5천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수치는 인기와 유행의 방증. 버질 아블로, 카니예 웨스트, 스테판 커리 등의 스타들은 물론 마블 히어로들도 한동안 ‘할아버지 변장’ 열풍에 푹 빠졌다. 러시아에서 이용자의 사진을 무단으로 수집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인기가 떨어졌지만 유행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파급력은 가히 엄청났다.
GUEST EDITOR 김성지 -
68 사진 앱 | 스냅챗
스냅챗은 채팅 프로그램인데 얼굴을 아기처럼 만들어주는 사진으로 소셜 미디어를 한바탕 흔들어놨다. 스마트폰을 구입할 때는 선명하고 사실적인 사진을 담는 화질 좋은 카메라를 찾지만, 인기 있는 사진은 그와 정반대인 것 같다. 그런데 머릿속이 왜 복잡할까? 은하수를 담아내는 구글 픽셀4의 기본 카메라 앱, 아무렇게나 찍어도 만족스러운 아이폰11의 기본 카메라 앱이 사진을 바꾸어놓았다고 쓰고 싶어서다. 하지만 아직도 백종원 대표의 얼굴을 빼닮은 아기 사진에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WORDS 최호섭(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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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악역 | <그것>의 페니와이즈
누구나 올해 최고의 악역 하면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노스나 <조커>의 조커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타노스가 늙은 리어 왕처럼 심사숙고하고 조커가 자아도취적인 햄릿처럼 중얼거리는 걸 보면, 뼛속까지 본능적인 악당이자 욕망의 광대인 <그것: 두 번째 이야기>의 페니와이즈를 소환할 수밖에 없다. <그것>(2017)에 비해 강렬함이 다소 부족하지만, 어른 세계까지 ‘광대 공포증’을 이식시키는 이 기괴한 존재를 거부할 방법은 없다. 죄 없는 아이들을 마구 포식하는 페니와이즈는 인간의 영혼까지 발라 먹는 듯한 잔인함을 전달한다. 인간의 공포를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이 캐릭터는, 어느 날 현실에서 불현듯 만날 것 같은 불길함을 불러일으킨다.
WORDS 전종혁(영화 평론가) -
70 팬덤 | 송가인의 팬클럽 ‘어게인’
<내일은 미스트롯> 우승자인 송가인의 팬클럽은 ‘어게인’이다. 이들은 4만 명이 넘는 규모에 조직적으로 활동한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 중 투표를 통해 지역장을 선출하고 지역별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이 모든 결과를 송가인의 소속사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런 조직력을 기반으로 ‘공식 팬클럽’을 꾸리겠다는 소속사의 계획을 전면 수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특징은 이 인기가 세대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50~60대 중년층은 물론이고, 30~40대 엄마와 10대 초·중반 딸이 함께 콘서트를 보고 굿즈를 산다. 덕분에 SNS 사용법이나 ‘스밍’ ‘총공’ 같은 ‘아이돌 팬덤 전략’을 서로 공유한다. 트로트계의 ‘아미’라고 할 만하다.
WORDS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HIP OF THE YEAR 77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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