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주목은 점차 Z세대를 향해 흘러들고 있다. 디지털 문명이라는 대지 위에 탄생한 Z세대는 일명 ‘젠지(Generation Z)’라고 불린다. 요즘 젠지 사이에선 새로운 ‘셀럽’이 탄생 중이다. 젠지의 ‘셀럽’은 기성세대가 ‘아이돌’이라 부르며 주목했던 유명인과 결이 다르다. 일례로, 젠지에게는 주관이 뚜렷한 자유분방함이야말로 ‘힙’이다. 지금 젠지가 주목하고 인정하는 셀럽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황소윤의 힙부터 염따의 플렉스까지. 지금 젠지에게 인정받는 셀럽의 조건을 분석해봤다.
EDITOR 이경진
새로운 인류의 탄생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는 밀레니얼 세대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이 좀 달라졌다. ‘디지털 퍼스트(Digital First)’라는 밀레니얼도 그다음 Z세대에게 관심을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즉, 날 때부터 디지털 문명을 쥐고 있던 Z세대는 기성세대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이해할 수 있는 전혀 다른 부류다. ‘Z세대’라는 말도 너무 길어서 줄임말 ‘젠지’로 불리는 이들은 2019년 현재 기준으로 1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의 친구들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것을 넘어서 디지털로 소통한다. 밀레니얼 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디지털 미디어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흐름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젠지에 속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요즘 애들은 뭘 좋아해?” 비록 요즘 애들은 아니지만 굳이 답을 하자면, 주관이 뚜렷한 자유분방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무조건 튀고 싶어 하는 사람은 ‘관종’ 취급을 받기 쉽지만, 그 돌발 행동에 이유가 있다면 존중받을 수 있다. 호불호가 확실한 젠지에게 인정받는 셀럽이 되고 싶다면 다음 인물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인간 힙’이라 불리는 황소윤. SNS에 ‘황소윤’을 검색해보면 인기 게시물에 링크된 영상들이 몇 있다. 기타 피크를 입에 물고 온 얼굴로 음표를 느끼며 연주하는 황소윤의 모습. 아무렇게나 한 것 같지만 실은 굉장히 섬세하게 탈색한 머리카락과 무심하게 걸친 안경, 온몸으로 록 스피릿을 뿜고 있는 무대 위의 황소윤은 지금 젠지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갖춘 셀럽이다. ‘힙이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황소윤일 것’이라는 호들갑이 무리 없이 통하는 이유다. 황소윤은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던 록 스타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이다. 그는 이 시대, 청춘의 감성을 자유롭게 노래하는데, 패션까지 멋지다. 또한 성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내려지는 이 시점에 너무도 적절하게 젠더 감수성을 끌어올려준다. 젠지가 황소윤이라는, 당당함과 스타의 기질을 타고난 ‘여성’ 록 스타의 등장을 새삼 반기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소윤을 언급하면서 성별을 운운하는 것은 전혀 힙하지 않다. 색안경에 피크를 물고 기타를 뜯는 모습 하나로 설명은 충분하니까.
다음은 SNS 마케터인 염따. 그는 말한다. “나 좋아하지 마라.” 젠지는 대답한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염따의 성공 열쇠는 바로 이 짤막한 문답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염따가 허세를 떨면 젊은 친구들은 맞장구를 쳐준다. 힙합 음악을 만들고 랩을 하는 염따의 소속사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페이스북 같은 SNS다. 그는 2019년 SNS가 만들어낸 가장 뜨거운 현상이자 지금 시대에 스타가 탄생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입지적인 인물이다. 최근 염따는 더콰이엇의 차 벤틀리를 박는 사고를 냈다. 그리고 곧장 ‘수리비를 벌기 위해 굿즈를 판매할 건데 너무 많이 사지 마라’는 글을 남겼다. 그의 굿즈 판매는 개시 하루 만에 4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택배 포장부터 발송까지 혼자 다 해야 하는 염따는 죽는 시늉을 SNS에 올렸다. 염따는 결국 12억 매출을 앞두고 티셔츠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공지를 게시했다. 염따의 티셔츠를 구매한 이들이 지불한 비용은 옷값이 아니다. 염따의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에 참여하는 참가비다. 염따는 라면에 금가루를 뿌리고 현금 다발을 들고 명품 가방을 산다. 하루 벌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 돈을 다 쓴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은 대리 만족을 느낀다. 플렉스(Flex)라는 힙합 문화의 가장 큰 수혜자, 젠지들이 문화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요즘 <퀸덤>을 보고 있다면 (여자)아이들의 소연을 모를 수 없을 거다. 일명 ‘GD의 후예’라 불리는 소연은 ‘천재’라는 극찬을 받으며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소연은 매회 경연을 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통해 “경쟁에서는 잘하는 사람이 이긴다”라는 말을 남기며 당당함을 표출한 바 있다. 그가 속한 그룹의 이름은 (여자)아이들인데, 여자라는 단어는 반드시 괄호 안에 넣어서 표기해야 한다. 표기와 달리 팀 이름을 발음할 때는 괄호 안 여자는 묵음으로 처리해 그냥 ‘아이들’로 읽는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힙하다. 2017년에 데뷔한 (여자)아이들은 포미닛과 비스트 등을 배출해낸 큐브 엔터테인먼트 소속. 소연은 래퍼이지만 보컬 실력과 춤 실력도 출중하고 무엇보다 작곡 감각이 뛰어나다. 최근에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하고 프로듀싱한 싱글 ‘Uh Oh’는 심지어 붐뱁 트랩 장르다. 소연은 기존의 걸 그룹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이제는 걸 그룹도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늘 똑같은 미소, 똑같은 목소리로 춤추고 노래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온몸에 스웨그를 장착한 채,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여자)아이들의 소연은 그걸 보여준다.
젠지의 셀럽이 되려면 내가 하는 행동에 내러티브와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이유 없는 분방함은 오히려 쿨하지 못하다. 젠지는 ‘힙’을 겉으로만 따라 하거나 흉내를 내려는 자들을 기막히게 골라낸다. 황소윤의 힙 속엔 음악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고뇌가 깔려 있다. 염따의 플렉스에는 ‘돈과 힙합을 좋아하는 30대 아저씨’의 진정성이 담겨 있다. 소연의 예측 불가함에선 아이돌 걸 그룹의 전형성을 깨려는 당당한 시도가 느껴진다. 행위와 의도가 적절히 맞아떨어질 때, 젠지는 이것을 ‘힙’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또 그들의 생각을 정리하려는 시도 또한 꼰대 같긴 하지만 말이다.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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