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구? 별로. 이런 이야기에 반응하게 된 것이 사실, 전 농구 국가대표이자 프로농구 선수, 하승진의 작심발언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농구의 암울한 현실은 꼭 그가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어쩌면 그전부터 이미 팬과 대중은 하나둘 KBL을 외면하기 시작했으니까. 한국 농구를 리모델링해야 한다면 과연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까? 지난 10월 5일 2019-2020 KBL의 개막전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DITOR 신기호
‘노잼’이 아닌 ‘유잼’ 농구을 위하여
‘안녕하세요, 농구 기자 이동환입니다.’ 어디선가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면, 그 뒤에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서 야구나 축구가 아닌 스포츠, 그것도 농구만을 다루는 기자라. 마이너 중에서도 마이너. 이제는 적응될 법도 하건만 아직도 낯이 간지러워질 때가 종종 있다. 기분 좋은 민망함을 느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깟’이라고 수식어를 붙이는 한국 농구에 일상을 바쳐가며 사는 것에 스스로 필요 이상의 자격지심을 가질 때가 있어서다. 얼마 전 NBA를 즐겨 보는 지인에게 농구를 좋아하면 KBL도 한 번 보라고 가볍게 권유한 적이 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NBA를 볼 때는 선수들의 플레이나 태도에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기분 좋은 영감을 얻는다. 그런데 한국 농구를 볼 때는 솔직히 그런 걸 느끼지 못한다. 시간을 내서 봐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 지인이 말한 영감은 단순하게는 경기의 재미와 짜릿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더 깊게 들어가면 선수에게서 느껴지는 일종의 스웨그(swag)를 뜻한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명백한 사실이었으니까.
대중은 콘텐츠에 냉정하게 반응한다. 넉넉하지 않은 여가 시간에 돈까지 투자했는데, 그에 걸맞은 즐거움이나 보람을 얻지 못하면 그 투자는 실패한 것이 된다. 지난 수년간 한국 농구와 KBL은 대중에게 ‘우량주’와는 거리가 무척 먼 존재였다. 시간 내고 돈 써서 보면 뭔가 낭비된 기분만 느끼는 재미없고 그저 그런 콘텐츠였다. 어떠한 재미와 스웨그도 없는 콘텐츠. 외면받고 죽어가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대중이 농구를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NBA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여기서 한 가지 명제가 더 확실해진다. ‘사람들은 농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농구와 KBL이 재미없기 때문에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한국 농구의 리모델링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어야 한다. 방법은 단순하다. 경기가 더 재미있어야 한다. 경기를 보기 전에 설렘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국제 무대 성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제 무대 성적은 일시적인 관심을 유도하는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해내지 못하니까. 본질은 경기의 ‘재미’에 있다. 더 재밌어야 더 많이 보고, 그래야 관심이 커지면서 팬도 많아지니까.
그렇다면 더 재밌는 농구 경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사실 해답은 농구 안에 있다. 농구가 야구, 축구와 비교해 가장 큰 특징은 공수 전환이 훨씬 잦고 빠르며, 개인의 역량이 경기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이다. NBA는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붙잡는 데 성공하며, 북미 4대 스포츠 중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리그가 됐다. KBL에도 이런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기가 더 빨라져야 하고, 더 많은 영웅들이 매 경기 등장해야 한다. 그래야 농구가 지닌 본질적인 재미가 더 살아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달라져야 할 것이 유소년 농구 훈련 문화와 유소년 지도자들의 역량이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뤄지는 거칠고 투박한 체력 훈련을 적정 수준으로 줄이고, 기술 훈련 비중을 훨씬 더 늘려야 한다. 그리고 그런 기술을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이 높고 능력이 뛰어난 지도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
애석하게도 한국 농구 유소년 지도자들은 해외 농구 지도자들과 비교해 농구에 대한 국제 교류가 적은 편에 속한다. 때문에 유소년 농구 현장을 지켜보면 과거에 자신들이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해 어린 선수들에게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그저 그렇고 시대에 뒤떨어지는’ 선수들이 나오는 식이다. 이제는 선수가 자신의 신체 조건과 장단점에 맞게 개성 있는 농구를 배워갈 수 있도록 유소년 지도자들이 더 능력 있는 코치를 해줘야 한다. 여기에 강압적이고 틀에 박힌 플레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사라지는 것, 선수들 스스로의 노력이 따라오는 것은 기본이다. 유소년 지도자들이 발전하고 달라지지 않으면 선수의 발전도 없고, 한국 농구의 인기 부활도 없다. 대학, 프로에 온 성인 선수들이 개과천선하듯 플레이를 바꿔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선수들이 더 수준 높은 기술을 구사할 수 있도록 유소년 지도자들부터 ‘판’을 깔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윗물’에서는 변화가 한창이다. 올 시즌 KBL의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선수들의 개인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외국인 스킬 트레이너를 고용했다. 한국 농구의 위기 상황을 감지한 KBL 감독들은 요즘 입 모아 팬들을 위한 ‘빠른 농구’를 외치는 중이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틀에 박히고 정형화된 느린 플레이를 요구하며 선수들의 개성을 ‘말살’하려고 했던 몇 년 전과는 분위기가 꽤 다르다.
이제는 ‘뿌리’와 ‘아랫물’도 함께 달라질 때다. 어린 선수들이 국제 농구 캠프를 통해 더 다양한 기술을 배우는 기회를 누리는 것을 아니꼽게 바라보는 유소년 농구계 일부 관계자들의 시선은 차단돼야 마땅하다. 코트에서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건방지다고 말하는 유소년 지도자들은 점점 도태되고 사라져야 한다. 선수와 플레이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며, 어린 선수들이 각자의 개성을 갖추며 성장하는 것을 장려해야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다양성을 갖춘 어린 선수들이 프로 선수가 되고, 그 선수들이 역량을 코트에서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하면, 한국 농구도 비로소 ‘노잼’에서 벗어나 대중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WORDS 이동환 (<루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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