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양안다
양안다는 28세다. 대학원을 수료했고, 지난해 가을 시집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를 발표했다. 양안다는 서울에 있는 자취방에서 시를 쓴다. 보통은 이른 아침. 하지만 그의 방에는 해가 뜨지 않는다. 양안다는 암막 커튼으로 창을 가리고 RGB 컬러가 변하는 LED 조명에 의지한 채 박하사탕을 먹으며 시를 쓴다.
시를 쓰게 된 이유는 뭔가요?
대학에서 처음에는 소설을 썼어요. 문학 공부하는 선배들이 자꾸 시가 문학의 기초라는 말을 했어요. 그 말이 너무 듣기 싫어서 선배들보다 시를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를 썼는데 재미있어서 그냥 시를 쓰게 됐어요.
20대라서 겪는 고민이 있나요?
없는 것 같아요. 먹고사는 고민이야 당연하지만 그건 나이 들어서도 하는 고민이고, 사실 스트레스를 잘 안 받는 성격이에요. 무던하달까? 어떻게 보면 둔감하기도 하고. 좋은 일에도 유난 떨지 않고, 나쁜 일에도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취업 스트레스는 없나요?
아직 스트레스를 안 받는 이유는 제가 현재 (병역) 미필입니다. 게다가 대학원을 수료한 상태라 일하기 어려운 시기예요. 또래의 고민과 조금 동떨어져 있어요.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나요?
원고료가 있고, 가끔 수업 제안이 들어오기도 해요. 낭독회 출연료도 있고요. 큰돈은 아니죠. 문학 행사 스태프로 자주 일했어요. 불러주면 가서 의자 옮기고 무대 동선 안내하는 일이요.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은 용돈으로 썼어요.
퇴근하면 하루가 다 지나서 힘도 부친데, 시인들은 집에 돌아가서 시를 써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날까요?
전업 시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제게 시를 쓴다는 행위는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에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할 수도 있죠. 시 쓰기는 그것들과 동일선상에 있어요.
시 쓰는 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젊은 시인들은 시를 게임에 많이 비유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시가 게임처럼 재미있어서 써요.
요즘 젊은 시인들이 시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요?
젊은 시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예전처럼 시를 신성시하는 느낌이 없어요. 시를 업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유희로 생각하는 시인들이 많아요. 물론 그게 정답은 아니지만.
순수 예술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도 늘어난 것 같아요. 더 이상 순수 예술이라는 말도 잘 사용하지 않고.
그래도 아직 시는 어려워해요. 다른 분야의 친구들은 제 시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해요.저 역시 다른 예술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데 지식이나 감각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요. 물론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창작을 하다 보니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순수 예술은 아직 존재하는 것 같아요. 뭐라고 정의 내릴 수는 없지만 어렵다고 느낄 만한 부분은 확실히 있어요. 또 다양해야 재미있는 것도 같고.
왜 시를 발표해야 하는 곳은 기존의 문단이어야만 할까요?
제가 등단하기 전까지는 비등단 작가들이 활동하는 SNS 플랫폼이 없었어요. 지금은 비등단 시인이나 작가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이 다양해졌죠. 그런 움직임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길이 많아지고, 한쪽 방향으로만 치우쳤던 것이 분산되고, 여러 방향으로 넓게 퍼져나간다는 점에서요. 또래 시인들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생각하리라고 봐요.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등단 제도가 소수 인원에게 심사를 받는 것이 문제인데, 잡지를 통해 발표된다는 것도 소수 인원의 심사를 거치는 것 아니냐는 말이에요. 사실상 비슷한 구조라는 뜻이죠. 하지만 기존 방법이 싫어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러 플랫폼이 생기는 과정은 기존 방식이 싫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움직임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겨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등단은 전문가가 신예를 발굴하는 시스템이에요. 권위 있는 전문가에게 권력이 있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텍스트를 다루고 소통하는 공간은 SNS예요. 권력은 희미하죠. SNS에 익숙한 세대는 권위보다 많은 조회가 더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시 역시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끼기도 해요. 우리끼리 모임을 만들고 서로 시도 보여주고 하면서 장을 만드는 거죠. 그렇게 여러 장들이 생겨나요. 물론 재미있게 운영되는 모임도 있고, 뚜렷한 방향을 내세워 연대하거나 지지하는 모임도 있어요. 기존 플랫폼에서는 여러 이유로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울타리 밖에서는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한다는 점이 중요해요.
시에 쓰고 싶은 동세대의 화두가 있나요?
수동적인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할 말을 제대로 못하고 눈치 보는 사람들이요. 기분이 울적해도 억지로 웃거나, 모임에서 밉보이지 않게 처신하거나,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거나. 그렇게 눈치 봐야 해서 우울해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시에 많이 썼어요. 그런 생각은 민음사 시집을 낼 때부터 했어요.
언제 어디서 시를 써요?
주로 자취방에서 쓰죠. 아침에 쓸 때가 가장 기분이 좋아요. 자취방을 시 쓰기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놨어요. 저는 집중하면 손톱을 물어뜯어요. 그래서 시를 쓸 때 엄지에 반지를 하나 껴요. 그럼 반지를 씹게 되더라고요. 박하사탕을 좋아해서 잔뜩 쌓아놔요. 또 어두운 걸 선호해서 암막 커튼도 쳐놨어요. 그리고 LED 조명을 켜요. 붉은색에서 보라색까지 변화되는 막대 형태의 조명이요. 전에는 미러볼을 썼는데, 조명 바가 더 좋더라고요. 집 아니어도 그저 제가 편안한 장소면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의식적으로 피하는 시어나 주제도 있어요?
쓰고 나서 지우는 단어가 있어요. 기술 발전에 관련된 용어나 과학 관련 용어요. 다른 시인의 시에서 로봇 관련 용어를 본 적 있어요. 그때는 전혀 거부감이 없었는데, 제 시에 그런 단어를 쓰면 멈칫하게 돼요. 다른 시인들 시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이상하지 않았어요. 근데 제가 쓰면 지우게 돼요. 양자물리학, 빅뱅, 블랙홀 이런 것들이요.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를 안 쓰는 거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도 시에서 본 적 있어요. 너무 좋았어요. 제가 쓰려고 상상을 해보니까 떠오르는 게 전혀 없었어요.
왜 20대들이 양안다의 시를 읽는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시집을 내서 읽는 것 같아요. DM으로 잘 읽었다고 연락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주로 제 시의 정서를 우울하게 느끼는 분들이 따로 연락을 주시더라고요. 우울해서 좋아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최근에 SNS에서 제 이름을 검색하다 제 시를 읽으면 자살하고 싶어진다는 글을 봤어요. 무척 좋았어요. 좋아하는 영화나 책을 봤을 때 진짜 죽고 싶다고 느낀 적이 있어요. 우울해서 죽고 싶다는 뜻이 아니에요. 저한테도 좋은 감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가 안다 씨의 우울함에 동조하나 봐요?
모르겠어요. 제 시가 우울한지 아닌지는 제가 느끼는 게 아니라 독자가 느끼는 감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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