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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
김슬기는 성수동에서 신발을 수선한다. 커스텀 작업도 하고, 페르커라는 이름으로 샌들도 만든다. 그래서 김슬기는 크리에이터에 가깝다. 시대에 맞춰 변하니까. 기술이 시대와 떨어져 있지 않고 시대 안에 쏙 들어와 있으니까.
김슬기가 운영하는 페르커 팩토리는 성수동에 있다. 김슬기의 작업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차가 감싸듯 다닌다. 꼭 섬처럼 놓인 그곳에서 김슬기는 잠잠하게 신발을 수선하고 만든다. 아버지를 따라 신발 작업을 배운 지는 올해로 15년이 넘었다. 축구화, 등산화, 구두. 다양한 신발을 수선하면서 체득한 지식은 김슬기에게 더 큰 가능성을 선물했다. 김슬기는 이제 디자인을 새로 더해 커스텀 작업을 하기도 하고, 페르커라는 이름으로 샌들을 만들기도 한다. 두두두두 기계 소리가 요란한 김슬기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그는 커다란 수선 머신과 때 묻은 도구 앞에 앉아서 거북목을 하고 신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발에 눈을 붙인 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만 반가운 인사를 건넸을 때, 김슬기를 잘 찾아왔다 싶었다.
젊은 수선공 김슬기
김슬기는 군대를 전역하고 바로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다. 그게 2004년. 당시에는 축구화나 등산화, 구두 같은 전문화를 주로 다뤘다. 그즈음 김슬기는 욕심이 생겼다. 작업을 할수록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아져 부산에 있는 대학의 신발패션산업과에 진학했다. 김슬기는 당시 결정에 대해 굉장히 좋은 기회였고,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산학 협력 과정을 통해 해외 공장 견학을 다니며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이 지금의 초석이 됐다.
변화와 도전 사이에서 내린 결정
신발을 수선하던 김슬기의 손이 이제는 스니커즈를 커스텀한다. 한 가지 분야만 계속 파다 보면 어느 순간 함몰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김슬기는 필요하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분야가 그렇듯 신발도 변했다. 발전했다. 쓰임부터 디자인, 기능, 소재 모두가 달라졌다. 그래서 옛 방식만 고집할 수 없다. 김슬기의 전문 분야는 부츠 수선과 관리지만, 그 분야도 변화가 필요했다. 김슬기가 스니커즈를 커스텀하고, ‘페르커’라는 샌들 브랜드를 만든 건 그런 필요에 의한 도전이었다.
김슬기는 샌들을 꿰매서 만든다. 오랫동안 수선하면서 눈에 익혀온 ‘굿이어 웰트 기법’을 샌들에 적용했다. 15년 동안 구두나 부츠를 해체하고 결합하는 일을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서 착안해 만든 것이 ‘페르커 샌들’이다. 부츠를 샌들로 다시 만든 형태라면 이해가 쉬울까. 꿰매서 작업해 훨씬 튼튼하고, 견고하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과는 다르다.
김슬기에게 어떤 작업이 가장 익숙하냐고 물으면 그는 꿰매는 걸 잘한다고 답했다. 두껍고 단단한 것들, 그러니까 꿰매기 어려운 것들도 전부 꿰맬 수 있다고 말했다. 든든한 머신들 덕분이다. 김슬기가 가진 손재주도 큰 자랑이지만, 머신들 역시 그에겐 드러내 보이고 싶은 자랑이다. 김슬기가 사용하는 머신은 전부 미국에서 제작된 것들이다. 그래서 부품이 소모되면 미국에서 조달해 사용한다. 수고스럽진 않다. 그래야 제대로 단단하게 박을 수 있으니까. 레드윙, 대너 부츠와 같은 두꺼운 솔을 바늘로 꿰매는 건 김슬기만 할 수 있다.
커스터마이저로서의 김슬기
처음부터 김슬기가 커스텀 작업을 한 건 아니었다. 그 시작은 주변 사람들한테 선물을 하면서부터다. 기념일같이 특별한 날 신발을 커스텀해서 선물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러면서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업 과정이 즐거웠다. 작업은 나이키, 반스, 컨버스 같은 대중적인 신발에 솔을 덧대는 형태. 김슬기는 커스텀 작업에 대해 온전히 내 작품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김슬기는 기술자로서 고객의 의뢰를 받아 만드는 입장이라는 거다. 디자인이나 세밀한 요구 사항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하는 사람. 그래서 고객의 취향을 잘 해석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슬기에게 커스터마이저로서의 시간에 대해 물었다. 그는 베스트와 워스트 사이에서 일하는 느낌이라고 답했다. 시소 위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지금까지 김슬기가 만든 커스텀 스니커즈는 전부 베스트였다. 고객의 요구를 100%는 아니지만 99% 실현해낼 수 있어서다. 김슬기는 이런 작업을 어디에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단단한 기준으로 만든다.
김슬기의 작업 기준이라면 신발 본연의 틀을 깨지 않는 것. 틀이란 신발이 가진 본연의 기능과 형태를 말한다. 그 기본을 깨면, 신발은 무너진다. 수선이든 커스텀이든 마찬가지다. 그걸 지켜내야 발이 편하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김슬기는 전혀 새로운 신발을 만드는 걸 지양한다. 신발 수선도, 제작도, 커스텀도 김슬기에게 제작 기준은 발이다. 안전해야 하고, 편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좋은 소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산 가죽을 사용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분명한 건 맹목적으로 수입산만 사용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품질이 좋은 브랜드를 사용한다. 국내 브랜드도 품질이 좋다면 김슬기는 기꺼이 찾아가 쓴다. 김슬기가 주로 사용하는 비브람 솔도 마찬가지. 비브람 솔은 처음 신발 수선을 배울 때부터 늘 그와 함께했다. 그만큼 비브람 솔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정통하다. 그가 비브람 솔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품질이 으뜸이기 때문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래서 사용할 뿐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컬러 재현력도, 내구성도 타사 제품에 비해 월등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슬기의 원동력
김슬기는 결과물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결과물을 완성하는 과정은 즐겁다. 작업실에서 12시간 넘게 머무를 때가 많다. 일이 많아서보다 재밌어서 그렇다. 김슬기는 따로 홍보나 마케팅을 하지 않는다. 온전히 고객들의 입소문으로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원동력이다. 김슬기도 모르는 사이에 SNS 채널에는 그가 작업한 신발들이 꽤 많이 보인다. 위너의 송민호, 뮤지션 이하이, 엑소 수호, AOA 설현, 지민도 그의 고객이다. 트렌드의 한가운데 있는 이들의 방문은 언제나 반갑고 설레는 일이라고 김슬기는 말한다.
장인보다는 크리에이터
김슬기는 장인일까. ‘장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질문에 김슬기는 재능과 열정,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일을 잘한다기보다, 꾸준히 오래 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같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세까지 필요하다고 했다. 시대를 읽고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소통이나 공감을 이루지 않고 만든 결과물은 주관을 넘어 고집에 가깝다. 개인 작업이 아니라면, 고집이 되어선 안 된다. 김슬기에게 그런 시도는 경험이 됐다. 경험은 뭐든 남기게 마련인데, 그에게는 새로운 과제와 목표를 남겼다. 김슬기는 말했다. 앞으로 또 다른 변화가 찾아온다면, 기꺼이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뭐든 남을 테니까.
김슬기의 일
김슬기의 일은 시도의 연속이다. 도전이고 평가다. 단순히 바라보면 한 땀 한 땀 꿰매고 이어 붙이는 작업인데, 완성해놓고 보면 똑같은 작업이 없다. 그래서 결과물도 전부 다르다. 15년째 같은 일을 해오고 있지만, 김슬기는 그 안에서 거듭 시도하며 배우고, 성장한다. 김슬기는 두 명의 젊은 친구들과 일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이 꿈을 꾸며 한 땀 한 땀 노력을 새기고 있다. 그들을 가리켜 김슬기는 ‘멋진 친구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김슬기는 ‘젊음’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는 세대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결과물이 늦어지는 건 그만큼 공을 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초조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과정이 단단하면 훌륭한 결과물을 믿어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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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기의 타투
김슬기는 본인의 직업을 타투로 새겨뒀다. 아버지의 망치, 오래 사용한 집게, 일하는 수선공의 모습 등 그의 몸 곳곳에는 ‘수선공’ 김슬기가 있다. 타투 대부분은 잘 보이는 곳에 새겼다. 작업하는 김슬기의 눈높이에서 아버지의 망치가 바로 보인다. 그래서 김슬기는 소홀히 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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