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INTERVIEW MORE+

할리우드의 역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잊혀가는 배우들에 대한 헌사이자,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한 러브레터다. 주인공 릭 달튼은 유통기한 끝난 배우이자, 변화하는 할리우드의 목격자다. 리어나르도 디캐프리오는 시나리오를 받고 릭 달튼을 단번에 이해했다.

UpdatedOn October 03, 2019

/upload/arena/article/201910/thumb/42946-386758-sample.jpg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맡은 릭 달튼은 어떤 인물인가?
릭 달튼은 1950년대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던 TV 카우보이 드라마의 산물로 이제는 유통기한이 끝났다. 내 액션 대역 배우인 클리프 부스와 나는 어떻게든 이 세계 안에 발을 들여놓고 있으려고 노력한다. 두 인물은 단지 문화의 변화를 목도하는 목격자일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옛 TV 카우보이, 이제는 퇴물이라 여겨지는 존재다. 세상은 변하는데, 둘은 변화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라는 예술 형식을 사랑하는 영화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역사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그는 외부에서 할리우드 안쪽을 들여다보는 두 명의 목격자라는 관점을 취했다. 이 시대를 다루는 방식으로는 굉장히 독특한 접근이 아닐 수 없다.

릭 달튼의 어떤 점에 이끌린 건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배우로서 자신의 유통기한을 실감하고 있는 릭 달튼에 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한성에 힘들어하면서도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브래드 피트와 한 번도 작품에서 만난 적이 없다. 놀라지 않았나?
놀랐다. 우리 둘 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방영된 TV 드라마 <그로잉 페인즈(Growing Pains)>에 출연한 적이 있다. 같이 연기할 기회는 없었지만, 재미있게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브래드 피트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셋 다 같은 시대, 같은 시기에 영화계에 입문했더라. 1990년대 초·중반에. 그래서 우리가 축적한 사전 지식은 비슷했다.

브래드 피트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환상적이었다. 그는 뛰어난 배우이고 매우 프로페셔널하다. 그래서 함께 일하기가 참 좋았다. 두 인물의 스토리가 교차되는 부분도 연기하기 무척 편했는데, 함께 작업한 장면 말고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써준 두 캐릭터의 배경 스토리를 통해 서로를 상당히 많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흥 연기도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캐릭터 사이에 흐르는 우정을 이해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역사를 전부 다 알고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얼마나 오래 함께해왔는지, 힘든 시기를 겪을 때마다 어떻게 클리프 부스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는지.

배우로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실제로 액션 대역 배우와 이러한 우정을 형성한 적이 있나?
릭 달튼에게 클리프 부스는 단순히 전담 액션 대역 배우가 아니다. 릭 달튼에게 그는 다목적 맥가이버 칼 같은 존재다. 울 때 기댈 수 있는 어깨이고, 심리 상담자이며, 경호원이자 조수, 그러니까 전부다. 릭 달튼은 돈을 지불하고 그를 기용해 열두 가지 추가 업무를 시키고 있는 거다. 릭 달튼은 계속해서 클리프 부스에게 일을 시키지만 클리프 부스는 릭 달튼을 위해 존재한다.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난 적 있다. 장장 8개월을 지독한 아프리카에서 보내야 했는데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 그냥 말없이 같이 TV를 봐주는, 늘 옆에 있어주는 사람을 두었다.

스크린에 드러나는 두 배우의 교감이 편안하다. 그런 ‘케미’는 만들려고 노력한 건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형성됐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덕분이다. 감독이 캐릭터의 역사를 거의 한 편의 소설처럼 써주었다. 그래서 브래드 피트와 나는 촬영장에 들어설 때 이미 우리가 맡은 캐릭터의 필모그래피나 두 사람의 관계, 그동안 둘이서 함께 어떤 일들을 겪어왔는지 알고 있었다. 거의 한 권의 전기를 읽은 셈이었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는 연기력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촬영에 임하는 태도 또한 프로페셔널해서 우리가 맡은 캐릭터에 곧장 몰입할 수 있었다. 두 캐릭터가 누구인지, 할리우드에서 그들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우린 거의 본능적으로 알았다.

누구 한 사람이 더 돋보일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나?
그런 건 단 한 번도 문제된 적이 없었다. 캐릭터에 맞는 연기를 하면 된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두 캐릭터 사이에 흐르는 우정을 이해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는 전에도 같이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그로부터 배운 것을 딱 한 가지만 꼽는다면, 무엇인가?
하나? 그건 쉽지 않다. 내가 보기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한결같다. 영화계에서 좋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늘 찾을 수 있었던 특징이다. 특히 이런 감독들은 영화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을 지니고 있는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고전 영화 역사뿐만 아니라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B급 영화와 아류 영화들의 역사까지 알고 있다. 예술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들인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런 영화도 소장했다. 그는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알고 있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드라마를 알고 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배우들의 필모그래피까지 완벽하게 알고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이렇게 잊힌 이들을 기리는 영화이자 당시에 성공해보려 고군분투했던, 영화계에 공헌을 남긴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달라.
아마 이들 캐릭터를 만드는 데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사랑하는 영화 산업에 나름 공헌을 했지만 나 같은 사람, 혹은 내가 속한 세대는 전혀 알 길이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역사 속으로 증발해버린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는 것. 그래서 감독이 우리에게 에드 번즈, 타이 하딘 같은 여러 다양한 배우들을 소개해준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랠프 미커라는 배우인데 한 번 봐요. 로버트 드 니로나 말론 브랜도는 아니지만 이 사람이 참여한 작품과 그가 영화계에 끼친 공헌을 봐요. 그가 활동했던 시대를 한 번 보세요. 아마 당신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을 이상한 드라마들에 출연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는 영화 산업과 감독이 사랑하는 예술 형식에 공헌해온 이들, 아마 대중의 인정은 받지 못했을 이들, 그리하여 그들이 정신적으로 겪은 것들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작품인 것 같다. 궁극적으로 스타덤에 올려줄 결정적 작품을 찍기까지 겪은 여정과 넘어야 할 산들 말이다. 이것이 그들에 대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접근 방식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다. 이 영화는 영화 산업을 향해 쓰는 그의 러브레터다.

 

“힘든 작품을 일부러 선택하는 편이다.
나는 영화가 현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정도로 정밀한 작업은 드문 일인가?
함께 작업한 감독 중 이런 감독은 거의 없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은 그에 비견할 만하다. 이런 감독들은 유년 시절에 영화라는 예술 형식에 푹 빠져서 지냈기 때문에 문화적인 것이든지, 정치적인 것이든지, 어떠한 종류의 주제일지라도 영화라는 맥락 안에서 서술하는 특징이 있다. 영화라는 예술 형식에 완전히 푹 빠져서 살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들의 DNA나 다름없다. 설명하기가 참 어렵다. 혹시 나한테 “일단 제가 뭘 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묻는 감독이 있다면 나는 “2년 동안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뭘 만들어왔는지 보는 데 쓰세요. 그다음에 당신만의 것을 만들어보세요”라고 대답할 거다.

이 영화는 좌절된 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본인도 이런 문제와 씨름하나?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로서 캐릭터가 꼭 내 인생과 같거나, 내 경험과 같을 필요는 없다. 예술가로서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니까. 하지만 난 이 캐릭터와 완벽하게 동화된 느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열세 살 때부터 배우인 친구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과 함께 성장했다. 나는 그 어려움을 안다.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마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 불안함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릭 달튼이라는 인간이 개인적으로 겪는 것을 곧바로 이해했다.

때때로 배우로서 내 생명이 곧 끝날 것 같다는 걱정도 하나?
늘 롤러코스터일 거다. 누군가의 커리어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을 거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하지만 나는 연기 인생을 장거리 경주라 생각했고, 브래드 피트와 나는 비슷한 시대에 연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거의 동시에 휴지기를 겪었다. 우린 둘 다 이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번에 우리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라는 기회 하나를 받게 되었고 최고의 연기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고,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 최고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했다.

솔직히 당신은 지금까지 성공 가도를 달렸다. 비법이 뭔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노력했다. 브래드 피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힘든 작품을 일부러 선택하는 편이다. 나는 영화가 현대의 가장 위대한 예술 형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영광스럽고 흔치 않은 특별한 일이라는 것도 안다. 아까 말한 것처럼 브래드 피트와 나는 데뷔 시기가 비슷하고 결정적인 작품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우리 둘 다 그 기회를 잘 이용해보려고 최선을 다해왔고, 도전이 될 만한 작품, 또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에 출연해왔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영화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으로서 과거로 돌아가 젊은 리어나르도 디캐프리오에게 무언가 말해줄 수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겠나?
제작 과정을 좀 더 즐기라는 말. 그게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너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노력해라. 모든 일에 진지하게 임하되 그 과정을 즐겨라.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끼길 바라나?
계속해서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할리우드 역사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뮤지컬에서 예술 감독의 시대로,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의 시대로, 그리고 오늘날 겪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변화에 대해서도. 내 생각에 우리가 만든 영화는 어쩌면 잊힌 영화 제작 스타일로 돌아간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사라져버린 스타일.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출현하고, 영화계에 새로운 선수들이 등판한다. 내 생각에 옛 스튜디오 시스템은 많은 부분 화석이 되어가고, 새로운 방식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나 여타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다른 포맷으로 만들어지는 것, 그러니까 긴 시리즈물로 만들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동시에 멋진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이 예술이 어떤 식으로 변해갈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다만, 정말 독특한 작품이 나왔을 때 그 독특함을 못 느낄 정도로 너무 많은 콘텐츠에 압도되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독특한 작품에도 기회의 문이 열려 있다. 5년 전만 해도 제작할 수 없다고 했을 작품인데 지금은 완성되는 영화들이 정말 많다. 정말이다. “제발, 이 영화가 섹스와 마약, 그리고 폭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나도 알지만, 당신 스튜디오 측에서 생각하는 포맷에 맞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만, 정말로 이 작품은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있으니 제작비 좀 투자해주세요!”라고 기꺼이 애원할 만한 작품들도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영화관의 성격을 가진 세 개 혹은 네 개 정도의 플랫폼은 뛰어난 감독들에게 작품을 상영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본다. 재미있어질 것 같다.

/upload/arena/article/201910/thumb/42946-386759-sample.jpg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COOPERATION 소니픽쳐스

2019년 10월호

MOST POPULAR

  • 1
    서울의 밤 그리고 바
  • 2
    The Scent Mate
  • 3
    Smoky Finish
  • 4
    OFF-DUTY TIE
  • 5
    핵주먹 버번

RELATED STORIES

  • INTERVIEW

    <아레나> 12월호 커버를 장식한 세븐틴 조슈아

    캐시미어 브랜드 배리와 함께한 조슈아의 <아레나> 12월호 커버 공개!

  • INTERVIEW

    장 줄리앙과 장 줄리앙들

    프랑스 낭트 해변가에서 물감을 가지고 놀던 소년은 오늘날 세계에서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 됐다. 100만 명 넘는 팔로워가 주목하는 작가, 장 줄리앙이다. 선선한 공기가 내려앉은 초가을. 장 줄리앙이 퍼블릭 가산에서 열리는 새로운 전시 <장 줄리앙의 종이 세상>을 위해 서울을 다시 찾았다. 전시 개막 첫날 저녁, 우리는 장 줄리앙을 스튜디오로 초대했다. 새하얀 벽 앞에 선 그는 어김없이 붓을 들었고 자신이 그린 또 다른 장 줄리앙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이어지는 대화는 장 줄리앙이 보여주고 들려준 그림 이야기다.

  • INTERVIEW

    무한한 이태구

    배우 이태구가 <끝내주는 해결사>에서 미워할 수 없는 미소를 지었을 때,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에서 비밀을 숨긴 채 정의로운 척 굴던 때도, 이태구의 모든 얼굴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얼굴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한다.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그의 모습이 무궁무진하다.

  • INTERVIEW

    오늘을 사는 김정현

    촬영이 있어도 아침 운동은 꼭 하려고 한다. 여전히 촬영장엔 대본을 가져가지 않는다 . 상대 배역을 잘 뒷받침하는 연기를 지향한다. 숲보다 나무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대본을 더욱 날카롭게 해석하고 싶다 . 그리고 이 순간을 감사하게 여긴다. 배우 김정현의 지금이다.

  • INTERVIEW

    김원중의 쓰임새

    모델왕이라 불리는 남자. 15년 차 베테랑 모델 김원중이 신인 배우로 카메라 앞에 섰다. 모니터 속 김원중은 프로 중의 프로였지만, 그는 여전히 현장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 공개를 앞두고 배우 김원중이 들려준 이야기.

MORE FROM ARENA

  • FASHION

    가을을 맞이하는 향수

    여름이 머물다 간 자리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가을의 향.

  • LIFE

    장 미셸 바스키아

    가장 비싼 미국 화가, 바스키아와의 값싼 잡담.

  • FASHION

    WATCHS & WONDERS 2022 #2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계 브랜드의 노력. 올해 '워치스앤원더스 2022'는 달라도 다릅니다.

  • LIFE

    유튜브 성적표

    요즘 이게 대세라며? 문득 국가대표 선수들의 유튜브가 궁금해졌다.

  • LIFE

    스위스에서 온 편지

    스위스의 디자인과 함께한 일주일.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