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조진혁
아쉬움과 걱정 사이의 묘한 기대
애플이 디자인으로 주목받는 거의 모든 과정에 조너선 아이브가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한눈에 봤을 때 실루엣과 느낌만으로 특정 제품을 구분할 수 있다는 의미의 ‘트레이드 드레스’라는 어려운 말도 그가 만든 디자인을 통해 알려졌다.
그런 그가 애플을 떠난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조너선 아이브는 오랜 친구인 마크 뉴슨과 디자인 에이전시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는 프로젝트를 통해 애플과의 업무 관계를 꾸준히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보면 소속과 일하는 형태만 달라지는 것이지만, 또 다르게 보면 애플과 관계가 괜찮은 것인가 하는 걱정도 든다.
물론 정확한 속내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적어도 불화 때문에 떠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조너선 아이브의 결별이 팀 쿡 CEO와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애플과 팀 쿡 CEO는 직접 나서서 강하게 부정했다. 적어도 둘 사이의, 혹은 회사와의 관계 문제나 불화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애플과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그리고 그가 만든 애플 기기들이 갖고 있는 고유의 색깔과 느낌이 앞으로 선보이는 기기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다. 애플의 디자인은 정제된 선과 특유의 둥근 귀퉁이, 그리고 소재 등을 통해 뚜렷한 색깔을 만들어왔다. 슬쩍 봐도 ‘애플 제품’임을 알 수 있다. IT 제품이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또 그 디자이너가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흔치 않다. 그 디자인을 바탕으로 조너선 아이브는 CDO라는 직책도 만들어냈다. 디자인의 가치를 직접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제품 디자인에 그가 꾸준히 언급되던 것에 비해 다른 디자이너가 입에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다. 그의 뒤를 이을 디자이너가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팬들의 불안함도 아마 여기에서 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걱정스럽게 바라볼 일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일이 연예인 걱정과 애플 걱정이라고 하지 않나. 오래전 지도 문제로 맥OS와 iOS를 만든 핵심 엔지니어 스콧 포스톨이 애플을 떠났을 때도 여러 우려가 있었지만 애플은 그 이후로도 자기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꾸준히 발전해왔다.
퇴사 이후에도 조너선 아이브가 계속해서 애플의 모든 디자인을 끌고 가는 것도 좋기만 한 일은 아니다. 애플 디자인은 고유의 색깔을 중심으로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그 변화가 혼자, 혹은 몇 명의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최근에는 CDO로 자리를 옮긴 조너선 아이브가 제품 개발에 참여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이 역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애플은 유능한 디자이너들과 일하고, 그 색깔과 개성을 유지하면서 아이폰X, 아이패드 프로, 맥프로의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일단 애플과 조너선 아이브는 계속해서 함께 일하게 된다. 보통 미국 기업들이 유명한 임원과 헤어질 때는 으레 ‘가까이에서 고문 등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뻔한 말로 포장한다. 사실상 현업에 관여할 일은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조너선 아이브는 곧바로 회사를 세우고 애플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는 꽤 구체적인 설명을 더했다.
현재로서는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을 떠나 더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하고 싶어 한다고 바라보는 것이 가장 옳을 것 같다. 그가 함께하기로 한 마크 뉴슨은 이미 여러 산업에서 이름난 디자이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직간접적으로 일을 했고, 특히 디자인 철학에 대해 많은 공감을 나누는 관계다. 에이즈 퇴치를 위해 프로덕트 레드의 특별 버전을 함께 만들기도 했고, 당시에 ‘괴이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아이폰6의 굵직한 안테나 선 역시 마크 뉴슨의 색깔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둘은 서로 영감을 나누면서 발전하는 관계다.
그 욕심을 더 넓게 펼치려면 회사를 떠나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높은 임원이라고 해도 다양한 활동에 관심을 돌리는 순간 회사와는 멀어진다. 차라리 이쯤에서 선을 긋는 것이 옳다. 그리고 더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아이디어가 묻어나는 새로운 디자인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애플이 아니라 ‘조너선 아이브’의 이름이 붙은 디자인 말이다.
그래서 조너선 아이브와 마크 뉴슨의 디자인 에이전시 설립은 결국 그 디자인의 목표를 적극적으로 이룰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애플 역시 그 결정을 존중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두 사람과 당분간 디자인 업무를 계속 이어갈 계획을 밝힌 것일 게다.
경쟁사 제품에서도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을 볼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게다.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애플을 떠날 이유도 없다. 또한 앞으로 선보이는 디자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들게 마련이다. IT 제품에 참여할 가능성은 있겠지만 적어도 스마트폰, 노트북, 태블릿 등 애플의 대표 제품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확률은 적다는 이야기다. 분명 애플 팬으로서 그가 떠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애플과 조너선 아이브의 관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애플도 지금까지 이어온 디자인 색깔을 바탕으로 꾸준히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낼 것이다. 아쉬움과 걱정 사이로 묘한 기대가 생기는 것 역시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이 갖는 힘이 아닐까.
WORDS 최호섭(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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