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세처 오케스트라의 노래 ‘아메리카노’는 “그는 군인도 아닌데 지프를 몰지(He’s drivin’ a jeep But he ain’t in the Army)”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듣도 보도 못한 형태의 윌리스 지프를 타고 등장한 미군이 유럽을 해방시킨 이래 ‘지프’는 미국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됐다. 전쟁 이후 민수용으로 개조된 지프는 오프로드와 험로를 넘나드는 유일무이한 자동차였고, ‘사막의 롤스로이스’라고 칭송받는 영국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에게 공여받은 지프를 참고해 만들었다. 명실공히 비포장도로용 자동차의 시조인 셈이다.
윌리스 지프는 조금씩 모양을 바꿔가면서 1944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43년간 생산(쌍용 코란도도 그 7세대에 해당한다)됐고, 1987년에 ‘랭글러’라는 이름의 새로운 설계로 태어났다. 이후 4세대를 거치면서 랭글러는 테스토스테론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태생에 걸맞게 험로를 달리는 차가 있었는가 하면, 도어에 한쪽 팔을 걸치고 도심을 달리는 스포츠카 대용으로도 사랑받았다. 캠핑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도 각광받았지만, 굳이 캠핑을 떠나지는 않지만 터프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이었다. 이 차에 올라타는 것만으로 팔뚝이 더 굵어 보이고 턱수염도 빨리 자라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미국 차 특유의 푹신한 승차감과 거대한 차체가 촌스럽게 여겨지는 시대가 왔지만, 지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디자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최신 편의 장비가 없어도 랭글러는 언제나 당대 힙스터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FCA 산하의 모든 브랜드가 어렵다고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도 지프만은 승승장구했고, 지난해 랭글러의 새 모델이 기존 단점을 개선하면서 등장해 앞으로도 그 인기는 지속될 게 확실해졌다(디자인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성공 요인 중 하나다). 그리고 여기 ‘글래디에이터’라는 새로운 카드가 등장하면서, 지프의 패는 더욱 확고해졌다.
픽업트럭은 전통적으로 미국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차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픽업 사랑은 상당하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1톤 트럭과 달리 지나치게 영업용 차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업무용으로 사용하다 개인적인 용도로도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일반 승용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사용하기 편리한 적재 공간이 매력적이다. 도심용 SUV에 짐을 우겨 넣는 것과 픽업트럭의 적재 공간에 짐을 툭 던져 넣는 건, 아바나 시가에 성냥으로 불을 붙이느냐 아이코스 버튼을 누르고 뻐끔대느냐 정도의 차이가 있다.
신형 랭글러의 차체를 그대로 이용하고, 개방된 뒤 짐칸을 덧붙인 형태의 글래디에이터는 길이가 무려 5m 하고도 53cm나 된다. 4m80cm가 조금 안 되는 랭글러보다는 훨씬 길고, 웬만한 대형 세단, 아니 국산 미니버스보다도 길다. 첫눈에 그 거대함에 기가 죽을 정도니, 주차가 어려운 사람은 애초에 감당할 수 있는 차가 아니다. 그래도 미국산 풀사이즈 픽업트럭보다는 조금 작아서 폭도 2m를 넘지 않고, 길이도 포드 F-150 기본형과 비슷한 수준.
물론 그 거대한 크기를 감당할 수 있다면, 이 차가 주는 가능성은 무한대에 가깝다. 아무것도 안 싣고 멋으로 타고 다녀도 좋고, 집에 들여놓기 애매한 아웃도어 용품들을 실어놓을 수도 있다. 박스를 짜서 캠핑용품을 수납해두면 이동식 캠핑장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아예 차 위에 텐트를 올려 ‘차박’의 꿈을 이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모터사이클을 탄다면 차에 싣고 도심에서 벗어나 고속도로를 이용한 후 한적한 교외에서 내려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다. 서핑을 즐긴다면 보드와 수트, 그리고 파도를 찾아다닐 때 쓸 자전거나 언더본 바이크를 실을 수도 있다. 서스펜션을 높이고 거대한 바퀴를 끼운 후 스노클까지 달고 본격 록 크롤러로 꾸며도 괜찮다. 지프는 차를 타고 노는 데 도가 튼 브랜드여서 이미 차를 발매하기 전부터 이런 가능성을 모두 고려했다. 앞으로 차례차례 나올 스페셜 에디션과 개조용 부품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신형 랭글러를 타봤다면 연상할 수 있겠지만, 운전은 상당히 편하다. 과거의 랭글러를 타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도 많지만, 이 차는 도심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상황에서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오프로드용 타이어를 장착하고도 고속도로 순항이 괴롭지 않다. 스티어링 휠은 적당히 가볍고, 편의 장비도 충분하며 실내 질감은 이제 웬만한 승용차보다 낫다. 지프의 가치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런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길이가 길기는 해도 등판각이나 이탈각은 충분해서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차체 앞에 달린 카메라 덕분에 고개를 내밀거나 도와주는 사람이 없더라도 노면 상황을 파악하며 달릴 수 있다.
이 차를 만난 이후로 아직 구입하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꾸밀지 연구하는 취미가 생겼는데, 도무지 답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글래디에이터와 함께 취미 생활을 해도 좋겠지만, 글래디에이터 자체가 취미여도 한참 동안 즐거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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