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을 묻는 질문에 한채아는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며 덤덤하게 말했다. 다가올 역할에 대한 준비다. 가늠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해 걷는 건, 어쩌면 기대만큼 추상적인 것이어서 그녀의 묵묵한 노력이 그래서 더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한채아에게 찾아온 변화는 선물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는 배우로서 더 깊어진 감정이, 생각이, 마음가짐이 있다. 모두 꺼내 보이거나 이야기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들이어서, 인터뷰를 마친 후 나도 모르게 한채아의 다음을 머릿속에 그렸다. 모든 기대에는 믿음이 있다. 한채아는 이날 기대와 믿음, 두 가지를 모두 전하고 스튜디오를 나섰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선물 같은 변화가 두 번이나 찾아왔잖아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어요. 1년 조금 넘는 시간에 비해 많은 일이 일어났어요. 혼자 살다가 결혼을 하고, 지금은 딸아이를 둔 엄마가 됐어요. 엄청난 변화죠. 그래서 ‘정신없이 지냈다’고 말하는 게 가장 솔직한 대답 같아요.
배우 한채아로서 맞닥뜨린 변화도 있을 테죠.
그렇죠. 주변에서 많이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에요. 역할의 폭이 더 넓어질 거라는 이야기들. 반대로 젊었을 때 하던 역할은 이제 한계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하고요.
어때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사실 불안하진 않아요. 오히려 기대가 더 커요. 단편적으로 결혼한 여성, 엄마 역할에 대한 부담은 이제 없으니까. 당연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변화가 기대돼서 더 좋고요.
요즘 어떤 얘기를 가장 많이 들어요?
확실히 저보다는 딸한테 관심이 쏠리더라고요. 하하. 대부분의 안부가 딸 이야기로 시작해요. 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 보면 좋아요. 행복하고. 순간순간 신기하기도 해요.
그럼 한채아 씨 안부는 그다음인 거죠?
맞아요. 하하. 아, 그다음으로는 요즘 복귀에 대한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아요. 언제부터 활동해? 언제 촬영해? 같은. 그런데 사실 그런 질문을 계속 받으면 울컥할 때도 있어요.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작품이 들어오고, 이름이 불려야 할 수 있는데. 그럴 때면,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기다리고 있다고요.
솔직해서 좋아요.
나름대로 다음을 잘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포장해서 이야기할 이유도 없고.
근황이 궁금해서 SNS에 슬쩍 들어가봤어요. 피드가 자주 올라오던데요?
예전에는 SNS 잘 안 했어요. 재미도 없고. 그런데 최근에 그 재미를 알게 됐어요. 꼭 팬이 아니더라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게 꽤 의미 있는 일임을 알게 됐어요. 댓글이나 메시지 보면서 저도 모르게 위로를 받고요. 많은 분이 제 일상을 응원하고, 공감하고 있구나 하면, 얼마나 감사하게 다가오는지 몰라요.
배우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도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렇죠. 그래서 업로드 전에 조금 신경을 써요. 이 사진 올려도 괜찮은 건가, 이런 글을 써도 되나, 하는 건 좀 있죠. 그 정도는 뭐, 다들 그렇지 않아요? 하하. 아무튼 소통하는 거 재밌어요.
“근래 찾아온 변화를 통해 제가 감정적으로 많이 성장하기도 했어요.
넓어졌고, 깊어졌어요.
감정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바뀐 걸 저 스스로 느낄 정도로.”
한채아 씨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또 언제인가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 외에 배우 한채아로서.
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가지면서, ‘이제 언제 다시 활동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요. 알게 모르게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에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 내레이션을 맡게 됐어요. 일주일에 한 번 녹화하러 가는데, 뭔가 기분이 되게 좋더라고요. 특히 가족한테 ‘저 일하러 다녀올게요’ ‘엄마 일하고 올게’ 같은 말을 할 때. 그때가 배우 한채아로서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요즘은.
내레이션은 어때요? 지금껏 한채아 씨가 해오던 영역과는 다르잖아요.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요. 많이. 그런데 제가 아이를 낳고 보니까 ‘아이’의 존재가 더 특별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전에는 마냥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면, 지금은 한 명, 한 명 특별하게 느껴져요. 무엇보다 내레이션을 통해 아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게 가장 좋아요. 내레이션이 다른 영역이지만 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행복을 얻어가는 느낌이에요. 감사하죠.
오랜만의 근황만큼이나, 한채아 씨의 여전한 자기 관리도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아휴. 저도 심리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예전에는 안 먹고, 몸이 부서져라 운동했는데, 출산 후에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몸이 안 따라주는 거죠. 이제는 전과 다르게 제 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 있죠. 나이가 있다 보니까 뼈마디가 걱정돼서…. 하하. 한약부터 각종 영양제 챙겨 먹기 바빠요.
그럼에도 완벽히 돌아왔잖아요.
아니에요. 아직 이전 모습으로 완벽하게 돌아오진 못했어요. 유산소 운동도 많이 하고, 퍼스널 트레이닝도 받았는데, 효과를 많이 못 봤어요. 몸이 안 따라줘서. 그런데 최근 필라테스를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꾸준하다, 성실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출산 이후에 그렇게 운동을 하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 직업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직업이죠. 좋은 작품이나 배역이 들어왔을 때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못하는 거죠. 딸아이도, 제 일도 저에게는 모두 소중해요.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어요. 거기에는 절심함도 있고요.
한채아 씨가 가진 건강하고 스포티한 이미지가 부담이 될 때도 있었을까요?
음, 아니요. 오히려 좋았어요. 캐릭터가 분명하잖아요. 사실 제가 여성스럽고, 가냘픈 이미지도 아니고, 성격도 털털하고. 하하. 어쨌든 운동도 정말 좋아하니까. 편했어요. 제 모습을 그대로 봐주셔서.
실제 성향을 연기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나요?
그럼요. 제가 딱 그래요. 그래서 액션, 코믹, 두 가지 장르를 가장 좋아해요. 제가 평소에 어색하거나, 오글거리는 상황을 못 견디거든요. 그래서 분위기가 별로다 싶으면 농담도 먼저 하고 그래요. 하하.
어때요? 연기를 하는 데 실제 성향을 반영한다는 건.
사실 저는 좋은 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직업은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장 중요한데, 저처럼 캐릭터를 자기화해서 연기하면 그만큼 한계가 있죠. 평소의 저와 반대되는 캐릭터거나, 캐릭터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으로 넘어가질 못하니까.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에서 나정안 역할은 어땠어요? 저는 굉장히 잘 어울렸다고 생각했는데.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한 후부터는 배역에 저절로 빠져들었어요. 지금까지 다양한 캐릭터를 만났지만, 생각해보면 저랑 비슷한 면이 가장 많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나정안’이 하는 욕은 빼고. 하하. 액션 장르도 그렇고, 사이사이에 배치된 코믹적인 요소도 그렇고. 그래서 더 재밌게 촬영했던 캐릭터예요.
액션, 코믹 외에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나요?
음, 정말 독특하고, 비현실적인 캐릭터요. 물론 힘들겠지만 재밌을 것 같아요. 그만큼 다양하고 새롭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장르는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액션이나 코믹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치열하게.
얘기를 계속 듣고 있으니까 한채아의 다음이 기대돼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오랜만에 인사드렸지만, 사실 제 다음은 연기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강해요. 근래 찾아온 변화를 통해 제가 감정적으로 많이 성장하기도 했고요. 넓어졌고, 깊어졌어요. 감정이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바뀐 걸 저 스스로 느낄 정도로.
배우에게 그만한 선물이 또 있을까요?
맞아요. 저 스스로도 기대될 만큼 감정적으로 많이 성숙해진 느낌이에요. 무엇보다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전보다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하게 됐다고 할까요.
자주 만나겠죠? 어디서든.
그랬으면 좋겠어요. 많이 보고, 많이 읽어야죠. 준비할 게 많아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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