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지진희는 주인공 ‘박무진’을 연기한다. 극 중 박무진은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뇌하는 캐릭터다. 캐릭터 뒤에 선 지진희가 궁금했다. 그렇다면 지진희는 어떤 고민을 할까? 지진희와 마주 앉았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지진희의 고민은 진행형이다.
바쁘겠다. 대본은 몇 회까지 나왔나.
한창이다. 총 16부작 중 9회까지 나왔다. 10, 11회 대본은 감독님이 수정 중이다. CG 작업이 많은 작품이라 공들이는 시간이 좀 더 있는 편이다.
원작에서도 실감나는 CG가 화제였다.
봤나? 초반 폭파 장면이 압권이지 않나. 원작은 그 장면이 밤에 일어난다. 근데 <60일, 지정생존자>에서는 낮이 배경이다. CG 작업으로 따지면 낮이 더 어렵다던데, 여러 상황상, 우린 그래도 낮이어야 했다. 물론 그만큼 더 실감나게 준비했고.
자신 있어 보인다.
세트장을 보면 압도될 정도니까. 커다란 세트장 두 동을 연결해 만들었다. 블루 스크린만 120m가 넘는다. 블루 스크린 앞으로는 실제 국회의사당을 옮겨놓은 듯한 실감나는 세트가 설치돼 있고. 잠깐, 말로는 한계가 있으니 사진을 보여줄게.
블루 스크린을 배경으로 하는 연기는 어떤가? 어색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달랑 블루 스크린만 있는 게 아니니까. 배경 요소라든지, 상대 배우라든지, 연기를 돕는 요소가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집중할 수 있다.
리메이크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어떤 내용인가?
갑작스러운 폭탄 테러로 환경부장관 ‘박무진’이 60일 동안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정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시간 속에 여러 대립 구도와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극에 긴장이 더해지고, 결과적으로는 테러의 배후를 찾아 나라를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원작과 다른 부분이라면 60일이라는 한정적인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고 미국과 한국의 법적인 차이에서 생긴 상황이다.
원작은 언제 처음 봤나?
오래됐다. 한국에서 리메이크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당시 너무 재밌게 봤다.
보면서 배역 욕심도 났겠지?
당연히. 톰 커크먼 역을 잘할 수 있겠다 싶었다. 원작을 보고 욕심났던 경우가 딱 두 작품 있었는데, 하나는 <슈츠>였고, 다른 하나가 <지정생존자>다. <슈츠>는 장동건 씨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보다 훨씬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인정. 하하. <지정생존자>는 다행히 감독님이 나를 염두에 두었다고 하더라.
예전 인터뷰에서 자기 객관화를 위해 노력까지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객관적인 판단으로 박무진 역을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나?
캐릭터에 깊이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만큼 캐릭터가 매력적이다.
특히 어떤 부분이?
박무진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순간 복잡하고 치열한 정치 상황에 놓이는 캐릭터다. 그래서 박무진은 고민이 많고, 끊임없이 고뇌한다. 그런데 포기하거나 도망치지 않거든. 원리와 원칙을 기준으로 묵묵히 싸운다. 물론 이외에도 박무진이 가진 매력은 굉장히 많지만 둘러싼 상황들을 보면, 스스로 고민하고 고뇌하는 시간이 가장 ‘박무진’답다고 생각한다. 조금은 외로운 캐릭터일 수도 있다.
배경 상황이 급변하면서 캐릭터도 변한다.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에서 환경부장관, 그리고 대통령 권한 대행까지. 박무진의 다양한 환경 변화를 연기하는 건 어렵지 않나?
박무진의 타이틀이 바뀔 뿐, 박무진이 지닌 성향은 변하지 않는다.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다. 교수 박무진의 순진하고 욕심 없는 성향은 대통령 권한 대행 박무진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박무진 캐릭터가 매력적인 거다. 그런 상황에서 맞닥뜨리는 고민과 할 수밖에 없는 선택들, 결정들이 극의 긴장을 유지하는 감정선이고.
“나는 연기를 함께하는 배우들이 더 잘할 수 있게,
더 반짝일 수 있게 도와줄 때 즐거움을 느낀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의 라인업이 굉장하다.
오디션에만 2년이 걸렸으니까. 그만큼 캐스팅부터 굉장히 단단히 준비한 작품이다. 허준호 선배, 배종옥 선배, 최재성 선배도 그렇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이 한 분 한 분 직접 오디션을 보고 선택한 배우들이다. 단 한 명도 오디션을 보지 않은 배우가 없다.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떤가?
행복하다. 엄청. 연기를 잘하는 건 물론이고, 다들 자기만의 색깔이 있으니까. 어떤 즐거움이냐면, ‘다양함’이 전해주는 에너지라고 할까. 현장에서 보면 배우들이 반짝인다. 한 명 한 명 또렷하게 자기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어떤 작품은 주목받는 몇 개의 별들만 반짝인다면, 우리 드라마는 수많은 별들이 동시에 빛난다. 풍성하다. 그래서 가끔 소름이 돋을 정도로 현장이 멋있게 보일 때가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멋진 환경이 작품을 이끄는 주연으로서 부담될 것도 같다.
부담보다는 책임감. 그런데 뭐, 주변 도움으로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고민이나 생각은 적은 편이다.
즐겁게 연기한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나는 연기를 함께하는 배우들이 더 잘할 수 있게, 더 반짝일 수 있게 도와줄 때 즐거움을 느낀다.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연기를 그렇게 해왔다. 내가 돋보이려고 하면 더 빛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빛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재미없지 않은가. 즐겁지도 않고. 무엇보다 내가 즐거워야 연기든, 캐릭터든 살아나니까.
멋진데? 배우로서, 동료로서도.
배우로서 즐겁게 연기하는 게 목표였으니까.
배려일까.
아니, 내가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쪽에 가깝지.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연기나 캐릭터에는 감독이 원하는 걸 잘 표현한다는 나름의 전제가 있다. 작품이 매력적이라면 어떤 역할이든. 그러니까 ‘과연 내 생각이 감독이나 작가의 방향과 같은가’ ‘역할이나 연기에 대한 분석이 주관적이지 않은가’와 같은 고민을 늘 하는 식이다. 그런 과정이 상대 배우들의 캐릭터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고. ‘이렇게 연기하면 상대는?’처럼.
신중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연기하면서 제일 두려운 게 익숙한 거다. 연기가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익숙해지면 이런 고민이 없어지겠지.‘이렇게 해도 돼’ ‘내가 다 알아’같이 돼버릴 테니까.
얘기를 듣다 보니까 드라마가 빨리 보고 싶다. 지진희의 노력을, 고민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다 같이 힘을 합해 잘 만들고 있다. 아니, 세트장 사진 보지 않았나. 나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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