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서로를 모르는 도시, 서울
<추격자>
골목은 너무 자주 오해받았다. 저녁 시간이 되면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나고 등하교 시간에는 애들 목소리가 담벼락을 넘나드는 식의 낭만. 낡고 허름한 집 여러 채가 좁게 모여 있는 골목을 ‘정겹다’ 말하는 시선이야말로 편하고 진부했다. 그렇게 무책임한 판타지가 영화 <추격자>에서 끔찍하게 뒤집혔다. 높은 담 안쪽에선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밖에서 누군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그렇게까지 공포스러울 수 있다는 사실의 노골적인 전시. 그 무자비한 폭력의 딱딱함, 흰색 면 팬티를 입고 핏물을 빼는 장면의 차가움이 그대로 이층집 화장실 타일에 묻어 있었다. 걷다 보면 마주칠 수 있는 골목이었다. 그 골목 왼쪽에 있었던 것 같은 주택이었다. 몇 년 전에 살았거나, 가족 누군가가 지금도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했다. “다른 공포 영화는 다 볼 수 있는데 <추격자>만은 못 보겠다” 말하는 공포의 근원이 거기 있었다. 왠지 외면받았던 서울.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된 주거와 일상의 형태가 그 골목 사이사이에 재현돼 있기 때문이었다. 남산과 한강, 주상복합 아파트, 그 흔한 ‘힙스터 동네’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공간. 어쩌면 거기가 서울이었다. 누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1천만 인구의 메가시티가 감추고 있던 맨살이었다.
Words 정우성(뉴미디어 스타트업 <더파크> 대표)
인천행 경인선에서 번지점프를 하다
<번지 점프를 하다>
서울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를 생각해봤다. 높은 건물들과 화려한 네온사인이 먼저 연상됐다. 규모가 크거나 사이키델릭한 영화들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번지 점프를 하다>가 떠올랐다. 첫 번째 이유는 이 영화가 시공을 초월하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1983년의 여름과 2000년 봄을 오가며 두 시점을 하나의 이야기로 전개하는 영화는 자연스럽게 여러 ‘시간’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서울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두 번째는 유니크함이다. 이 영화는 남녀의 성별과 그로 인한 겉모습 혹은 어떤 사회적 통념을 초월한 절대적이고 특별한 사랑을 다룬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인천이라는 서울 ‘옆동네’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유니크함, 그리고 어딘가 더 개방적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서울의 일면과 닮았다. 더욱 놀라운 건 영화가 2001년에 개봉했다는 것. 세 번째 이유는 외부인(인천) 태희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공허함이다. 서울에 있을 땐 잠시 환상에 취하지만,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경인선을 기다릴 때 그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을 태희(이은주)를 막연히 기다리던 용산역에서의 인우(이병헌)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마치 환상과 이상과 욕망의 경계에서 현실과 마주하는 느낌이다.
Words 백승기(영화감독, 인천 사나이)
서울이라는 토목 지옥
<귀여워>
서울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영화는 무엇일까?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는 폐허의 풍경을 통해 이 질문에 답한다. 영화의 중심 공간은 황학동 재개발 지역. 아직 허물어지지 않은 아파트와 이미 철거가 끝난 공터가 공존하는, 카오스 같은 곳이다. 이곳엔 한 가족이 산다. 박수무당이었던 장수로(장선우)는 언제 어디서 뿌렸는지 모르는 씨 때문에 생긴 삼형제의 아버지다. 첫째인 963(김석훈)은 퀵서비스 라이더, 둘째인 개코(박선우)는 레커차 기사, 셋째인 뭐시기(정재영)는 건달. 여기에 길에서 뻥튀기 팔던 순이(예지원)가 가세한다.
<귀여워>가 날것 그대로 담아낸 공간들은 여전히 울림을 준다. 1969년 시내 한복판에 지어진 황학동 삼일아파트. 부실 공사로 급격한 노후화되면서 1980년대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나돌다 ‘MB’가 서울시장을 하던 시절 철거에 들어간 곳. 이 건물이 겪는 생로병사의 운명은 서울에 대한 메타포다. 개발하고 짓고 낡고 허물고 다시 짓고…. 여기서 <귀여워>는 가장 흉물스러운 이미지로 서울을 이야기한다. 이게 발전이라고? 웃기지 마라. 맹목적으로 세우고 부수기만 한다면 사실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으며, 그게 바로 서울이라는 ‘토목의 지옥’이다.
Words 김형석(영화 칼럼니스트)
서울역은 알고 있다
<귀로>
한국 영화에서 가장 익숙한 서울의 모습을 찾으라고 하면 단연 구 서울역사를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문화역서울284라는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이제는 ‘추억의 서울역’이 되었지만, 오랫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이자 증인으로 존재했다. 또한 영화 속에서도 제각기 사연을 지닌 만남과 이별의 장소였고, 특히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이들이 처음 근대화의 혼란을 경험하는 곳이었다. 1967년 작품 <귀로>는 한국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후 하반신 마비로 성불구가 된 남편(김진규)과 살고 있는 아내(문정숙)의 이야기다. 절망 속에 사는 그녀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소설가 남편의 원고를 인천 집에서 서울의 신문사에 전달하기 위해 외출하는 순간뿐이다. 그러던 중 신문사에서 만난 기자에게 마음을 연 아내는 남편과 연인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녀가 서울역에서 집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면서 기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고, 경험하는 감정의 혼란과 욕망이 서울역이라는 공간과 맞물리면서 일종의 현기증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서울역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한국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비련의 여인을 내세운 멜로드라마지만 복잡한 서울역 고가 차도와 함께 서울역사는 영화 안에서 근대성의 비애를 흔적으로 새겨놓고 있다.
Words 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세빛둥둥섬과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철강 도시 빌바오는 중공업 쇠퇴라는 세계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 도시는 돈이 필요했다. 답은 건축이었다. 프랭크 게리가 투입돼 구겐하임 빌바오를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구마 겐고는 이 일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찾아올 만한 랜드마크를 만드는 것’까지 스타 건축가의 역할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서울 역시 이 흐름에 나름의 방식으로 화답했다. 좋은 건축은 치적에 도움이 된다. 서울은 랜드마크 건축을 이렇게 해석했다. 오세훈 시장은 그럴싸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DDP와 세빛둥둥섬이 나왔다. 예쁜 숙제와 잘한 숙제는 다르다. 오세훈의 건축은 그럴듯해 보이려고만 했다. 오세훈의 미감은 의외의 장소에서 꽃을 피웠다. 세빛둥둥섬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강변에 띄워서 어떤 사람의 비웃음을 산 건물이 컴퓨터 그래픽을 씌우자 첨단 기술의 장소가 되었다. 서울시장의 치적이 이렇게 쓰일 줄 누가 알았을까. 온갖 의도와 우연과 운명이 엇갈리고 남은 건 초현실적인 건물과 과하게 그럴듯한 영화 속 장면뿐이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 서울이다. 사실 영화 속 서울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서울 속 위정자의 건축 프로젝트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듯이.
Words 박찬용(칼럼니스트)
이태원이라는 평등함
<꿈의 제인>
서울은 각국의 문화가 이종교배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 잡은 도시고, 그중에서도 이태원은 돋보이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이태원은 어떤 곳일까? 적어도 나름 평등함이 있는 곳이라고 말한다면 꿈보다 해몽일까? 당신이 힙스터든, 트랜스젠더든, 청년이든, 외국인이든 상관없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섞여도 풍경이 자연스러우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일 테다.
<꿈의 제인>은 그런 이태원의 민낯을 정확한 눈높이에서 담은 영화다.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은 ‘가출팸’의 대리 엄마를 자처하며 산다. “태어날 때부터 불행이 시작돼서 쭉 이어지는데, 행복은 드문드문인 이런 개 같은 인생 혼자 살아 뭐하냐”라는 게 거리로 내몰린 청소년들을 거둔 명목이다. 투덜대듯 말했지만, 제인은 ‘소수’에 속하는 사람이고 자신이 누군가의 편견 섞인 시선에 받은 상처를 아이들은 받지 않길 바라는 따듯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들이 사는 곳은 ‘자연스럽게’ 이태원이다. 만약 다른 동네였다면 어땠을까? 트랜스젠더와 가출팸이 모여 사는 지역으로 이태원만큼 관객을 설득할 수 있는 지역이 또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문화와 음식과 언어가 자리 잡은 동네이기에 가능한, 어쩔 수 없는 평등함이 이태원에 있다.
Contributing Editor 양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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