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세영의 연기에는 틈이 없었다. 격렬한 감정도, 미세한 감정 변화도 모두 완벽하게 해냈다. <내 딸, 금사월>의 지독한 악역 오혜상일 때도, <돈꽃>에서 치열하고 애잔한 나모현을 연기할 때도 박세영이라는 이름이 지워질 만큼 캐릭터에 몰입했다. 그래서일까? 박세영을 떠올릴 때면 공부 잘하고 성격도 좋고 부족할 것 없는 모범생이 생각났다. 그런 그녀에게 지난 1년간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여유를 주면서 편안하게 연기하는 방식도 괜찮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가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왔다. 이제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놀 줄도 알게 된 모범생이 된 그녀의 연기가 새삼 궁금해졌다.
드라마 <돈꽃> 이후 1년 만에 새 작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으로 돌아왔어요.
딱 1년을 쉬고 만난 작품이에요. 그러고 보니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1년 만이네요.(웃음)
1년 동안 어떤 시간을 보냈어요?
<돈꽃> 끝나고 저만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쉬었어요. 그동안 쉼 없이 일만 한 거 같아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몇 달 정도 해외여행을 갈까도 했어요. 그런데 나라는 사람이 쉴 때의 모습과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잊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종종 가족과 국내 여행을 하거나 친구들과 만나기도 했지만요.
집이 서울이죠?
네. 쉬면서 거의 서울을 벗어나지 않았어요.
지난 1년 동안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 도시를 살아보니, 어땠어요? 일을 할 때와 쉴 때 서울에서의 모습이 많이 다르게 느껴졌나요?
사실 데뷔하기 전과 비슷할지도 몰라요. 일을 바쁘게 할 때는 잠잘 시간도 없으니까 다른 걸 생각할 수 없어요. 게다가 저는 한 가지밖에 집중을 못해서 일할 때는 일 외에는 많이 놓치거든요. 그런데 일을 잠깐 멈추고 일상을 살아보니 별것 없는데도 굉장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서울에 살지만 너무 무신경하게 지나갔던 일상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시간이었어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여유롭게 지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고 자연스레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 시간을 거친 지금, 세영 씨가 원하는 것 한 가지라도 찾은 게 있을까요?
예전에는 가만히 있지 못했어요. 뭐라도 일을 찾아서 해야 하고, 본 것도 다시 확인해야 했어요. 할 일이 다 끝나도요. A가 안 되면 B나 C까지 준비해야 마음이 편했어요. 이번에는 쉬면서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보자.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편해지는 거예요.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있구나.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굳이 애써서 하지 않고 나를 내버려둬도 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게 가장 큰 변화였어요.
그런 성향이 연기할 때도 영향을 미쳤나요?
그렇죠. 항상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어요. ‘괜찮아.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는 말은 저에게 없었어요. 처음에는 안전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다 보니까 그 안에 제가 갇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번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은 처음으로 그런 습관을 버리고 연기한 작품이에요. 1년 동안 깨달은 변화를 통해 자유롭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그래도 그동안 해온 게 있어서 그런지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어요. 생각보다 쉽지 않고 힘든데, 한편으로 생각보다 괜찮기도 해요.
일종의 터닝 포인트 같은 한 해를 보내셨네요.
사실 <돈꽃> 끝나고 다음 작품도 하고 싶고, 예능이나 광고도 하고 싶고, 욕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좀 더 중요한 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년 덕분에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벌써 7년 차 배우가 되었어요. 실감이 나요?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이제 실감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를 되돌아보면 어떤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데뷔하고 1년 정도? 인터뷰할 때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는 질문을 많이 받잖아요. 그러면 늘 팔색조의 매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데 카멜레온 얘기도 했어요.(웃음) 그래서 롤 모델 물어보면 없다고 했어요. 특정한 배우를 얘기하지 않았어요.
한 가지 캐릭터에 갇히기 싫었던 걸까요?
네. 제 작품을 봤을 때 사람들이 ‘어 박세영이다’라고 알아보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부각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나 그 캐릭터 좋아했는데 그게 너였어?”라는 반응이 제일 좋았어요.
그래서 연기 속에서 기쁨을 찾으면서 나아가고 싶어요.”
내가 아닌 연기했던 캐릭터의 이미지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더라도요?
제가 생각보다 무던한가 봐요. 제가 바라보는 자신에 대해서 예민하게 구는데, 막상 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잘 몰라요. 예를 들어 저는 할 말이 없어서 말을 안 하고 있으면 되게 차갑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가끔 억울할 때도 있는데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못해요. 그보다는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지금도 팔색조 같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인가요?
달라졌어요. 지금은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그래서 연기 속에서 기쁨을 찾으면서 나아가고 싶어요.
7년 동안 배우의 삶을 이어온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만약 작년에 <돈꽃>을 끝낸 직후였다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해라. 더 잘해보자”라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내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게 느껴지네요.
네. 이제는 저를 다그치는 게 아니라 응원해주고 싶어요. 맨날 잘하라고만 했거든요. 이제는 잘하고 있다고 말해도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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