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에서 마음껏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급정거를 하고, 모드를 바꿔가며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는 코너링을 해봐도 도무지 이 차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다. 마치 30cm 자로 마리아나해구의 깊이를 재는 기분이다. 지난 20년간 자동차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수많은 슈퍼카를 타봤고, F1 머신까지 운전해봤는데 영문을 모르겠는 자동차를 경험한 것은 처음이었다. 반응이 무뚝뚝하거나,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올라타자마자 말도 안 되는 빠르기를 말도 안 되는 안정감으로 보여주니 영문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분명 지금껏 경험해온 그 어떤 스포츠카보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전혀 무섭지 않은 데다 여차하면 더 속도를 올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드니 어이가 없다. 뉘르부르크링에서 양산차 최고 기록을 세웠던 우라칸 퍼포만테는 빗속에서도 타이어가 노면에 닿아 있는 감촉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스포츠카였다.
우라칸 퍼포만테의 운전석에 앉으면 각성제 성분을 투여한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고 온 감각이 살아났다. 자동차의 타이어와 브레이크와 엔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명확해서 자신감을 갖고 도로 위에 출력을 뿜어댈 수 있었다. 마치 오랜 여자친구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감도 좋은 섹스를 나누는 감각이었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숨결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는 섹스. 일본 스즈카 서킷에 비가 퍼붓는 와중에도 내가 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면서 달릴 수 있었던 경험은 잊히지 않는다. 완성도가 이 정도 되면 뉘르부르크링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지 못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런데 우라칸 에보의 운전석에서 경험한 것은 완전히 달랐다. 내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앞서의 경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한 절정을 맛보고는 이미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허무하다거나,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절정에 도달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이전보다 더 강력한 절정이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가 없다.
슈퍼카 베테랑을 위한 해답
운전석에서 나오자마자 다른 나라의 저널리스트들을 찾았다. 슈퍼카 시승은 원래 경험이 많은 저널리스트들을 초청하게 마련이다. 바레인 인터내셔널 서킷에도 전 세계에서 운전 좀 한다는 저널리스트들이 모였다. 고성능 슈퍼카 시승에서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의견을 물어봤는데,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빨라서 뭐가 뭔지 모르겠어.” 다들 나처럼 머릿속에 물음표가 백 개쯤 떠오른 표정이었다. 슈퍼카의 존재 가치가 스피드와 즐거움이라면 이 차는 단 한 번의 시승으로 모두 만점을 받을 만한 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수만 매기고 끝나는 채점이라면 좋겠지만, 우리는 이 차를 타보고 시승기를 풀어내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구매를 고려하는 이들에게 소감을 들려줘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좋긴 좋았어요’라고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슈퍼 스포츠카는 운전이 결코 쉽지 않다. 아니 슈퍼 스포츠카가 운전이 쉽지 않은 게 아니라, 빠르게 운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신 승용차라면 여러 전자 장비 덕분에 누구나 빠르게 운전할 수 있지만, 슈퍼 스포츠카를 그렇게 만드는 건 운동선수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물론 자세제어장치며, ABS며, 여러 안전 장비가 슈퍼 스포츠카에도 투입되기는 하지만, 출력이 높고 핸들링 입력이 직접적인 스포츠카의 특성상 승용차에 투입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봐야 한다. 운전을 즐기기 위한 차인데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면 의미가 없다.
압도적인 파워에 농락당하는 마조히즘적인 즐거움이 슈퍼 스포츠카 장르에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겠으나, 주도권을 자동차나 전자 장비가 쥐어서는 곤란하다. 어디까지나 운전자가 주인공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라칸 에보는 분명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내가 입력하는 것 이상의 행위를 자동차가 알아서 한다거나, 입력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을 티나게 메워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운전자가 입력한 조작에 반응한다는 것은 분명 알 수 있고, 그 쾌감도 명확하다. 그런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타왔던 그 어떤 차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이렇게까지 빨라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빠르다. 그 이유를 분석해보자면 이렇다. 가령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타이어의 상태가 어떤지, 노면은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똑같은 서킷을 몇 바퀴 반복해서 돈다고 해도 상황이 그새 어떻게 바뀌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라칸 에보는 왜인지 알 수 없지만, 그걸 굳이 시간과 감각을 투입해서 알아내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초능력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가속할 때도 마찬가지. 스로틀을 어느 정도 밟아야 타이어를 효율적으로 노면에 눌러댈 수 있는지를 어떤 과정 없이 그냥 알 수 있다. 지나치게 밟아서 타이어가 헛돌며 출력과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없고, 파워가 모자라 맥 빠진 소리를 내며 코너에서 부풀어버리는 일도 없다. 그 어떤 시간 낭비도 없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기 때문에 결과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그 결과란 두말할 것도 없이 ‘스피드’다.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의 람보르기니
만감이 교차한다. 지금까지 고수했던 람보르기니에 대한 이미지와 편견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다. 쿤타치 이후의 람보르기니를 모두 타봤는데도 이럴 정도니, 단 한 번도 타본 경험 없이 람보르기니에 대해 논했던 사람들이 이 차를 타보면 어떤 감각을 느낄지 궁금해졌다. 람보르기니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람보르기니 팬이었다고 해도 우라칸 에보의 변화를 직접 체감하면, 람보르기니를 과소평가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는 2014년 등장한 우라칸의 2세대 모델이다. ‘페이스리프트’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은 겉모습만 바뀐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겉모습도 상당히 바뀌어서 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주행 감각의 차이를 생각하면 겉모습은 차라리 바뀌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다.
흔히 ‘슈퍼카’라고 부르는 슈퍼 스포츠카는 오로지 주행 성능만을 위해 만들어진 자동차다. 적재 성능이나 승차감 등은 모두 무시한 채 달리고, 돌고, 멈추는 기본적인 것을 극한까지 추구한 차. 그중에서도 람보르기니는 오랫동안 톱클래스에 군림해왔기 때문에 주행 성능 면에서는 흠결을 찾기 어렵다. 특히 우라칸은 지난 2017년에 소개된 퍼포만테 버전을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스포츠카 중에서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음을 증명한 차여서 더 이상 갈고닦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람보르기니 우라칸도 훌륭한 스포츠카였지만, 우라칸 에보는 해상도가 극한까지 높아져서 더 이상 선명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람보르기니 디나미카 베이콜로 인테그라타(LDVI)라고 명명된 새로운 제어 시스템이 놀라온 스피드와 정밀도를 가능케 한 주인공이다. 이 시스템은 출력 제어 시스템과 조향, 토크 벡터링 등의 동력 성능은 물론 섀시와 안전 장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종합적으로 차체의 거동을 제어한다.
그러나 결코 운전자를 재촉하거나, 멋대로 알아서 앞서가지 않는다. 슈퍼 스포츠카다운 예리함으로 운전자의 판단과 조작을 존중하며 움직인다. 이 시스템은 운전자가 결정한 것에 거의 시차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하며, 정밀도가 무지막지하게 높다. 전 세계에서 모인 베테랑 저널리스트들이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이런 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대미문의 해상도로 운전자의 드라이빙을 재현하는 스포츠카가 탄생한 것이다. 람보르기니는 우리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직접 비교해볼 수 있도록 구형 우라칸도 준비해두었는데(구형과 함께 시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차례로 타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최고의 스포츠카였던 우라칸(구형)도 상당히 정교하게 운전자의 지시를 따랐지만, 우라칸 에보는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생각한 라인을 그대로 그리며 달린다. 마치 솜씨 좋은 외과의사가 레이저로 라인을 그리듯이 서킷을 도려낸다.
포르쉐 파나메라, 박스터, 마칸, 카이엔 등을 디자인하고, 조만간 양산 발표될 전기차 미션 E까지 디자인했던 미티야 보르케트는 2016년 람보르기니로 옮겨 우루스와 콘셉트카 테르조 밀레니오까지 담당한, 지금 가장 핫한 자동차 디자이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우라칸 에보는 앞부분의 라인이 좀 더 길어지고 낮아졌는데, 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력 특성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한다. 모든 디자인이 공기 저항을 줄이고 다운포스를 높이기 위해서인데, 그 결과 다운포스는 무려 8배 증가했다고 한다. 그저 예뻐 보이려고 만들어진 차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람보르기니 우라칸을 아직 타보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좋다는 건지 답답할 수도 있고, 우라칸을 타본 사람들은 호들갑 떠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안 타보고도 타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멋들어진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 머릿속에는 아직도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가 던져준 물음표가 수백 개 남아 있고, 언젠가 다시 스티어링 휠을 잡고 하나씩 지워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한 번 타보고 그 느낌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스포츠카만큼 지루한 게 없다. 람보르기니 우라칸 에보를 구입한다는 건, 평생 동안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손에 넣는 거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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