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kimstudio
금속을 가공하고 토회를 바른다. 옻으로 생칠을 하고 종이를 구겨 무늬를 내고 다시 정제칠을 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스무 번쯤. 정제칠과 건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울퉁불퉁한 표면을 사포로 깎으며 다시 칠을 벗긴다. 김옥은 이를 두고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 한다. 육체와 정신의 힘을 쏟은 끝에 결국 보게 되는 것은 중첩되어 서로 어우러지며 빛을 내는 반짝임. 오로지 그 순간을 위해 계속해 나간다.
금속 위에 옻칠을 해 거대한 아트 퍼니처를 만든다. 겹겹이 칠하며, 매끈하게 마감하는 것을 옻칠의 정석처럼 여기는데 김옥의 옻칠 작품은 다르다. 벗겨낸 흔적들이 거칠게 드러난다.
옻칠계에서도 새롭게 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큰 작업을 했네’라고 말하기도 하고. 옻칠하는 사람들은 이 작업이 얼마나 고된지 아니까. ‘이건 실패작이야’라는 말도 들어봤다. 전통 옻칠과 달리 나는 까내는 작업을 하거든. 색을 칠하고, 다시 사포로 표면을 벗긴다. 겹겹이 올린 색을 까냈을 때 토회가 보여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매끈하게 아름다워야만 예술은 아니니까. 그래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옻칠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보면, 이건 정통 방법이 아닌 거다. 전통 옻칠은 칠이 벗겨진 채 마감하면 안 되거든. 일정하게 바르는 기술을 연마하는 거니까.
옻칠의 어떤 기법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인가?
두부를 이용하는 교칠 기법이다. 금속에 토회를 올리면서 시작된다. 고운 흙에 생칠을 섞어서 바르는 게 토회다. 토회를 두껍게 바른 다음 종이를 구겨 질감을 낸다. 울퉁불퉁하게. 그런 다음 말리고 그 위에 색을 칠하면 그 색 역시 울퉁불퉁하게 마른다. 그 위에 또 다른 색을 겹겹이 칠한다. 그런 다음 사포질을 하는 거다. 표면이 울퉁불퉁하니 사포로 아무리 평평하게 깎아내도 나타나는 색이 다르다. 원래 옻칠에서 쓰던 기법이다.
지난 12월에는 그렇게 만든 아트 퍼니처들을 모아 개인전을 열었다. ‘머지 시리즈(Merge Series)’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무엇과 무엇을 ‘어우러지게’ 하고 싶었나?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에 여행을 갔는데, 산 중턱에 자연과 조화롭게 자리 잡은 사찰의 소박하고 고즈넉한 풍경에 매혹됐다. 자연에 동화된 사찰 분위기를 사계절의 색을 통해 가구에 투영하고 싶었다. 직접적인 영감은 절이지만 이를 종교적인 관점보다는,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 한국인의 삶에 녹아 있던 상징적인 존재로, 문화적인 관점에서 풀었다. 형태적으로는 사찰 오르는 길에 발견한 막돌탑에서, 그것에 스민 ‘쌓는다’는 행위를 모티브로 삼았다. 서로 같거나 다른 형태가 쌓이고 그것이 하나로 융합되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고, 색 역시 서로 어우러지도록 겹겹이 발랐다. 형태와 색 모두 ‘어우러진다’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옻칠은 대개 예술적인 표현 기법이라기보다 목재의 보존성을 높이고 광택을 내는, 실용성을 위한 작업으로 인식된다. 그렇기에 옻칠 공예 역시 생활에 필요한 작은 기물들이 주 대상이었다.
맞다. 보통 칠기라고 하면 크기가 작았고, 옻칠은 실용성을 중심으로 인식된다. 나는 그것보다 조금 더 예술적인 기법으로 접근한다. 내가 원하는 표현을 하기 위한 기법.
틀을 깨는 문제에 대해 굉장히 자유로운 것 같다.
‘이렇게 해야 해’라는 이야기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다. 만약 내가 어떤 선생님의 이수자였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거다. 원칙에 얽매이지 않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었으니까.
옻칠로 아트 퍼니처를 완성하겠다는 접근은 어떻게 시작됐나?
원래 가구 전공이었다. 목공예과를 졸업했다. 칠은 배우지 않았다. 학과 이름이 목칠공예과였는데 우리 때부터는 칠 과정이 사라졌거든. 옻칠은 한참 후에 배웠다.
옻칠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나?
목공예 전공 중에 영국에 2년쯤 머물렀다. 어학 연수를 했다. 그러다 졸업이 늦어졌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되어 무역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내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는 열망이 엄청나게 솟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는데, 우연히 책에서 옻칠을 접했고 ‘이거다’라는 감이 왔다. 명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가 찾던 바로 그것이라는 느낌이 왔다. 누군가의 이수자가 되는 일은 인원이 한정적이고 정해져 있어 포기했고, 나전칠기 명장 1호이자 서울시 무형문화재인 손대현 선생님이 가르치는 기관에서 옻칠을 배웠다.
모든 공예가 마찬가지이나 옻칠은 특히 노동집약적이다. 백골을 가공하고 토회를 바르고 생칠을 하고 무늬를 내고 또 색칠(정제칠)을 하고 사포질을 하고 투명칠에 광내기까지. 기본적으로 거쳐야 하는 이 과정을 ‘머지 시리즈’와 같이 큰 오브제에 색을 얹기 위해 15~20회 반복하려면 작업 하나를 완성하는 데 몇 달도 걸릴 것이다. 그 고된 작업의 과정 중 어떤 순간에 가치를 느끼나?
머지 시리즈는 굉장히 많은 색을 썼다. 많이 칠해야 밀도가 높아지니까, 대충 생략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지루하리만큼 길고 반복적인 작업의 끝에 얻게 되는 색에, 그 색이 내는 빛에 눈이 번쩍 뜨인다. 나의 작업은 필연적으로, 수없이 많은 기다림을 요하고 ‘옻독’이라 하는 피부염도 동반한다. 신체적으로 고되다. 대학 졸업 후 내 작업을 다시 시작하기까지 많이 갈등했고, 결심을 이어나가기 위한 시간들 역시 고통스러웠다. 옻칠은 재료도 꽤 비싸거든. 색 재료의 경우 500g에 14만~16만 원씩 한다. 나의 옻칠 작업에는 내 삶이 투영된다. 거친 표면 위에 칠하고 덧바르고 또 깎고 다듬어내는 과정이니까. 고되지만 옻칠을 통해 끊임없이 나를 찾아나간다.
그렇게 지속한 덕에 지난해 좋은 반응들이 있었다. 2018 밀라노 가구 박람회에도 참여했고 영국의 공예 갤러리인 민트에서 전시를 열고 작품도 판매했다.
밀라노 가구 박람회의 살로네 사텔리테 섹션에 참여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실험을 모아 전시하는 코너다. 심사에 붙어서 참석했고, 그때 영국의 민트 갤러리가 내 작품을 보고 가져가서 지난 6월에 민트와 전시 겸 판매를 했다. 지난해부터 피드백이 좀 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홍콩에도 다녀왔다. 더 아틀링이라는 싱가포르 아트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주최했거든. 올해 2월에는 콜렉트 페어가 계획되어 있고, 민트 갤러리의 작가들이 함께하는 단체전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그리고 4월에 한 번 더 살로네 사텔리테에 나간다. 3번까지 참여할 수 있어서, 어떻게든 되는 데까지 해보려고.
3D 프린트가 아트 퍼니처와 같은 대형 오브제를 더욱 복잡한 형태로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시대에 김옥에게 공예란 어떤 의미로 남나?
공이 들어가야 하는 것. 공이 안 들어가면 한눈에 티가 나는 것이 공예다. 공이 들어간 물건이 전하는 힘이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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