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가 돌아왔다
지난해 한국 영화는 영 힘을 못 썼다. 기대작들은 하나같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안겨줬고, 그 틈에서 선전한 것은 두 편 정도. 총 2천6백68만 명을 동원한 프랜차이즈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중저예산 영화 <완벽한 타인>이 5백25만 명을 모은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전자는 웹툰 원작이고 후자는 리메이크 영화라는 것에서 반추할 수 있듯이, 지난해는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들이 신통치 않았다. 창의력과 소재 고갈, 아이템의 한계가 드러나 ‘한국 영화 이대로 좋은가’를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2019년 한국 영화는 스타 감독과 배우의 귀환에 기대는 양상을 보인다. 넷플릭스에서 <옥자>를 선보인 이후 한동안 뜸했던 한국 영화의 자랑, ‘봉테일’ 봉준호 감독이 돌아온다는 것이 가장 크다. 그것도 영혼의 단짝 송강호와 함께. 이들이 합심해서 만드는 신작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가족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박사장(이선균)네 과외 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따라가는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만 알려졌다. 하지만 대부분 ‘봉준호와 송강호가 만났는데 안 볼 이유 있냐’는 반응이다. 개봉 날짜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실정.
제목만 듣고 ‘<괴물>의 뒤를 잇는 기생충으로 인한 재난 영화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봉준호 감독에 따르면 “기생충을 소재로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SF도 호러물도 아닌, 좀 이상하고 기괴한 가족 드라마”라고 한다. 기괴한 대사가 난무하고, 가족의 상하층이 뒤엉킨 현장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이 담아낸다고. 그의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가 ‘흑화’한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기다리는 시간이 더 즐거우려나. 그 밖에도 지난해까지 차기작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았던 스타 배우들의 신작이 2019년 라인업을 꽉 채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2019년 한국 영화계를 정리할 수 있는 한 줄이 아닐까.
EDITOR 서동현
그리운 스타 배우들의 귀환
올해는 한동안 스크린에서 활약이 뜸했던 스타 배우들이 대거 컴백하는 해다. 전도연이 대표적이다. 2016년 개봉한 <남과 여> 이후 우리는 벌써 꼬박 2년 동안 이 기념비적 배우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다. 다행히 설경구와 호흡을 맞춘 <생일>이 상반기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모티브 삼은 영화로, 전도연은 아이를 가슴에 묻은 채로 마트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가는 아내 순남을 연기한다. 또 다른 출연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동명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파격적이고 강렬한 캐릭터’라는 설명 외에는 베일에 가려졌다. 하지만 믿고 기다려보시라. 아시다시피 전도연은 인간의 심연을 그려내는 데 실패하지 않는 최고의 기술자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으로 배우 인생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설경구 역시 컴백한다. <생일> 외에도 <한공주>(2013)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과 손잡은 <우상>, 집단 따돌림 가해 학생의 부모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대형 로펌 변호사로 분하는 <퍼펙트 맨>까지 개봉 예정작이 빼곡하다. 모처럼 그가 다시 마음껏 활개치며 종횡무진 연기하는 모습을 보게 될 한 해다.
최민식에게는 절치부심의 해다. 그는 허진호 감독, 한석규와 함께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제)로 돌아온다. 학자 장영실을 연기하는 최민식과 세종대왕 한석규라. 벌써 불꽃 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세종대왕이 등장하는 또 다른 작품인 <나랏말싸미>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벌일 운명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진진하다. 송강호와 박해일 주연으로, 훈민정음 창제가 중심에 놓인 영화다. 관록의 배우들은 저마다 어떤 전술을 보여줄 것인가.
공유는 두 편의 작품으로 돌아온다. 정유미와 호흡을 맞추는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지영의 남편 대현을,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의 신작 <서복>에서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을 연기하며 인류 최초의 복제 인간을 중심에 둔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용의자>(2013) 이후 오랜만에 ‘액션 공유’의 컴백이 반갑다. 안 그래도 도깨비는 이제 그만 보내줄 때도 됐다.
WORDS 이은선(영화 저널리스트)
명감독과 명배우의 조합이 강력한 무기
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감독과 명배우의 조우가 강력한 무기다. 2018년이 롯데엔터테인먼트가 <신과 함께> 꿈을 이룬 해였다면 2019년은 쇼박스가 우민호 감독과 함께 약진하는 해일지 모른다. <관상>의 송강호와 조정석 콤비로 1970년대 전설의 밀수꾼을 다룬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은 <남산의 부장들>로 다시 돌아온다. 70년대 중앙정보부 부장들의 행적과 음모를 담은 영화에서 우 감독은 <내부자들>의 일등공신 이병헌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택시운전사>의 콤비 유해진과 류준열은 <전투>에서 1920년 대한 독립군 부대가 일본군에게 첫 승리한 만주 봉오동 전투의 핏빛 현장으로 안내한다. <용의자> <살인자의 기억법>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이 1백억원대 전쟁 영화에서 감동의 눈물에 도전한다. 1920, 70년대로 회귀하는 쇼박스의 카드는 한마디로 혼란스러운 격변의 시대를 경유해 관객과 소통을 모색한다.
반면 CJ엔터테인먼트의 블루칩은 단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봉 감독의 페르소나 송강호가 역시 독특한 가족 이야기에서 큰 기둥을 담당한다. 가족 드라마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담아내고 평범하면서도 소외된 캐릭터들에 주목하면서 희망의 빛을 찾아냈던 ‘미다스의 손’이 다시 한국 영화를 뒤흔들어놓을 것으로 기대한다.
검증된 신인 감독들도 나름 소소한 재미를 추구한다. <스물> <바람 바람 바람>의 이병헌 감독은 <극한직업>에서 고 반장(류승룡)과 마약반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위해 위장으로 창업한 치킨집이 맛집으로 등극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았다. 5백44만 명을 모은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은 목사가 신흥 종교와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면서 초현실적인 사건에 휘말리는 미스터리 스릴러 <사바하>에서 이정재, 박정민을 투톱으로 내세웠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국내에서 7백50만 명이 넘는 관객의 떼창을 일으킨 것은 오직 퀸의 신화나 음악의 힘에만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관객은 언제나 시대적 이슈와 개인의 욕망을 절묘하게 접합하는 영화에 중독될 준비가 되어 있다. 개개인의 욕망을 스크린에 담아내고, 그 욕망을 세대를 초월해 전이시킬 수 있는 한국 영화가 챔피언이 될 것이다.
WORDS 전종혁(영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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