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튀지 않고 혼자 겉돌지 않는다. 그렇다고 존재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연우진은 지난 10년간 차분하게 자신만의 리듬으로 연기를 해왔다. 시트콤부터 주말 연속극, 미니 시리즈와 상업 영화, 독립 영화와 단편 영화까지 넘나들며 균형감을 잃지 않았다. 늘 작품 속에 녹아들면서 가볍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너무 진지하면 어쩌지, 너무 재미없으면 어쩌지 했는데 생각보다 엉뚱하고 재미있는 남자였다. 개그가 너무 섬광처럼 지나가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긴 했다. 올 한 해도 소처럼 일해서 영화 <궁합>과 드라마 <이판사판>을 선보인 그는 이제 구마 사제로 분해 악령을 퇴치할 새 드라마 <프리스트> 방영을 앞두고 있다. 작품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 단정했고, 뜻밖에 꽤나 유쾌했다.
새로 방영할 드라마 <프리스트>, 엄청 재밌겠던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엑소시스트>처럼 악령 퇴치하는 내용이겠거니 했는데 새롭더라. 일단 주요 배역에 구마 사제와 함께 의사가 등장하더라고.
맞다. 단순히 공포나 스릴러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의 신념, 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현대적인 직업군인 의사와 신부가 어떻게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지 엿볼 수도 있고. 오컬트 장르가 낯선 분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한다. 나 역시 촬영하면서 말할 수 없는 감정을 가슴 깊이 느끼고 있다.
공개 영상을 보니까 엉뚱하고 패기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배우 연우진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 모습이 새롭게 다가오던데?
드라마가 어두운 톤이라면 내 캐릭터는 경쾌한 색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리듬감 있게 연기하려고 노력했고, 긴장감이 고조될 때 내가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감독님과도 상의를 많이 했다. 처음엔 ‘구마 사제는 어떤 모습일까?’ 1차원적으로 고민했는데, 자칫 기존에 나온 캐릭터들과 차이점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제가 아닌, ‘오수민’이라는 캐릭터 자체에 몰입했다. 평소 내 모습보다 더 장난스럽고 열정적인 모습을 꺼내려고 했다. ‘연우진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작품의 목표 아닌 목표다. 어떤 작품보다 몰입하면서, 몸의 리듬도 드라마에 맞춰져 있고 좋다.
“최대한 일상에선 몸과 마음을 릴랙스하고 작품 할 때 매듭을 꽉 조인다.”
몸의 리듬이 맞춰져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 몸을 잘 쓰게 됐다는 건가?
항상 몸을 잘 쓰고 움직여야 한다. 몸을 움직이면 생각도 움직인다. 연기 외의 일상생활도 동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엔 집에서 사색하는 즐거움을 찾았다면 요즘엔 친구들과의 재미있는 대화 등을 통해서 움직이는 삶을 살고 있다.
변화의 계기가 있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냥 시간의 흐름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 같다.
사실 연우진에게 연기 외의 일상에 대해 물어보기가 어렵다. 왜냐면 늘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 것 같거든.
결혼하지 않은 30대 중반 남자의 일상을 굳이 말하는 게 쑥스럽다. 한마디로 상당히 게으르다. 딱 그 한마디로 대변할 수 있을 거다. 연기 일 외에는 우유부단하게 흘러가는 대로 놔두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큰 스트레스가 없는 삶을 산다. 오늘 뭘 해야겠다, 내일 뭘 해야지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청소도 잘 안 하고, 패션지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뭐 입을지 고민도 안 하고. 하하. 일상에선 너무 평온하다. 몸과 마음이 많이 이완된 상태랄까. 그리고 내 주장을 고집스럽게 내세우는 편도 아니다. 최대한 일상에선 몸과 마음을 릴랙스하고 작품 할 때 매듭을 꽉 조인다. 누구보다 예민해지고 강박관념이라 할 만큼 나 자신을 채찍질한다. 연기하는 내 모습도 중요하지만 연기하기 위해 에너지를 모으는 일상 속 시간도 아주 중요하다.
SNS로 일상이라도 공유해주면 궁금함이 덜할 텐데. 그 흔한 인스타그램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글쎄 나는 그런 걸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 홈피 정도? 그나마 방문자도 얼마 없었다.(웃음) 가끔 사람들이 왜 SNS 안 하냐고 물어보면 나도 왜 안 하는지 생각해본다. 기본적으로 내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쑥스럽다. 내 생각을 얘기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 근데 나중에 갑자기 꽂혀서 SNS를 시작할 수도 있다. 장담할 순 없지만, 일단 지금은 그렇다.
대부분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억하는 편이다. 만약 연우진이란 배우를 <연애 말고 결혼>으로 강렬하게 기억했다면, 연우진은 로맨스나 멜로에 최적화된 연기자라고 생각할 거다. 혹은 <보통의 연애>에서 보여준 일상적이고 잔잔한 연기로만 기억한다든지. 우리가 흘려버린 캐릭터 중 자유분방한 역할도 있었나?
시트콤 <몽땅 내 사랑>을 통해서 데뷔하기도 했고, 주말 연속극 <오작교 형제들>에서도 에너지를 많이 발산하고 자유분방한 연기를 했다. 당시엔 그 작품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소중했고, 역할에 맞게 열심히 준비했다. 그래서 엄청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다시 한다 해도 그렇게 패기 있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하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선호하는 어떤 결이 생기고 굳어지다 보니 새로운 도전을 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건 맞다. 성숙함이 마냥 좋은 것인지 의구심도 생기고. 욕심은 자꾸 커지는데 배우로서 좋은 현상인가 고민스럽다.
이번 작품이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네?
궁극적인 해결책은 못 찾았는데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이제 조금 있으면 10년 차 배우가 된다. 지금까지 대화를 해본 결과, 연우진은 시작도 신중하고 한 번 선택하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을 것 같다. 10년 전에 이 일을 시작했을 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늘 동경하던 꿈이 연기였는데, 기회가 온 순간부터는 거침없었다. 이 기회를 꽉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마냥 좋았다.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았으니까. 그리고 운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더 무작정 덤비고 도전했던 것 같다. 얼마 전에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에서 내가 출연한 독립 영화가 10주년 기념으로 상영된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의 감정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필요했다. 한 2~3년 전부터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던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10년 전의 그 운을 잡은 것도, 또 이렇게 무사히 잘 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지.
너무 일만 하는 것 같은데, 내년에는 좀 놀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2018년의 가장 큰 수확은 나와 동생이 골프에 입문했다는 거다. 그래서 어머니와 온 가족이 다 함께 필드에 나갈 수 있게 됐다. 내년에는 가족과 골프 여행을 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가족끼리 실력 경쟁을 하진 않나?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경쟁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성향이 비슷해서 평화주의자다. 하하. 뭔가 치열한 것은 부담스럽다. 그냥 골프 치면서 자연 경관 즐기며 나름 스트레스 풀고 오는 거지.
지금까지 본 모습 중 가장 신나는 표정을 짓고 있다.
뭔가에 쉽게 빠지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에 많이 미쳐 있다. 하하. 골프를 너무 잘하고 싶다. 지금도 손을 보면 굳은 살이 있다. 현장에서도 쉴 때는 골프채 가지고 다니면서 가까운 연습장에 간다. 모든 조건이 다 맞아떨어져야 공이 맞는다. 또 생각을 비웠을 때만 공이 맞는다. 그래서 골프는 신기한 운동이다. 이제 추워지면 필드를 못 나가는데… 아, 내가 너무 골프 얘기만 했나?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