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의뢰받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공통적으로는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래픽 아티스트와 일러스트레이터, 시각 디자이너와 토이 작가 등 많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부끄럽지만 다 했다. 3D 그래픽 디자이너로 시작해, 피겨를 만들기도 하고, 아트 디렉터로 활동도 했다. 요즘엔 그냥 아티스트라고 불러주는 것이 가장 편하다.
그라플렉스는 무슨 뜻인가?
고등학생 때 그라피티를 했었다. 당시 그라피티와 그래픽을 오가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래서 ‘유연하다’라는 뜻의 플렉서블(Flexible)을 결합해 그라플렉스라 이름 지었다. 말하자면, ‘그라피티와 그래픽을 유연하게 오간다’는 뜻이다. 고등학생 때 지은 이름이라 지금은 좀 창피하다.(웃음)
그라플렉스의 첫 시작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어렸을 때부터 만화 보는 걸 좋아했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화가가 되기보단 만화가를 꿈꿨고, 그래픽이 ‘끝내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게임을 전공했다. 졸업하자마자 게임 회사에 들어갔는데, 회사원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더라. 그러다 피겨 아티스트인 쿨레인을 만났다. 그와 함께 NBA 피겨 시리즈를 제작하고 다이나믹 듀오가 이끄는 아메바 컬처(Amoeba Culture)의 아트 디렉터로 합류해 앨범 재킷, 공연 포스터 등 비주얼 작업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틈틈이 내 개인 작업을 병행해왔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당신의 작품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면,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자 하는가?
내 작업은 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회사를 처음 그만뒀을 때, 사실 많이 두려웠다. 나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인 ‘볼드’는 그렇게 탄생했다. 볼드는 굵은 선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담대함이라는 뜻도 담고 있지 않나. 그때부터 굵은 선을 이용해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내 작품을 보면 동그라미와 세모 같은 도형도 많이 등장한다. 세상에는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그것들은 결국 도형에서 기반한 것이다. 나는 도형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가령 세모로 저항을 나타낸다든지, 네모에 사선을 그어 중력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입니다’라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제가 이런 상황에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정도만 이야기하면, 자유롭게 작품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작품을 보면 유독 손이 많이 등장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만화가를 꿈꿨었다. 손은 클래식 카툰에서 감정을 나타내는 데 많이 쓰인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손동작을 많이 그렸는데, 그것이 이젠 나만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주로 영감받는 곳이 있다면?
정말 많은 것을 본다. TV, 만화, 유튜브, 그림, 넷플릭스…. 이 세상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닥치는 대로 보다 보면, 퍼뜩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작업을 소개한다면?
YG(엔터테인먼트) 베어로 알려진 크렁크(Krunk) 캐릭터를 개발했고, 던킨도너츠의 강남과 홍대 매장을 디자인했다. 가장 많이 협업한 곳은 나이키인데, 코엑스에서 진행한 덩크 갤러리와 에어맥스 데이, 월드컵 기념 티셔츠 등을 제작한 바 있다. 뉴에라, 버드와이저와의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기억에 남는다.
협업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을 것이다.
내가 잘 알고, 또 좋아하는 브랜드여야 한다. 그래야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
이번 몽블랑과의 컬래버레이션은 어땠나?
대한민국 남자치고 몽블랑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당연히 아주 잘 아는 브랜드였고, 또 평소 좋아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흔쾌히 컬래버레이션 제안에 응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진취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몽블랑 향수와 진행했다. 평소 몽블랑 향수에 대한 이미지는?
매일 뿌리기엔 캐주얼한 느낌의 ‘몽블랑 레전드 스피릿’이, 특별한 모임이 있는 날엔 ‘몽블랑 레전드’가 잘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몽블랑 레전드 스피릿’이 더 좋다. 특별한 모임이 별로 없어서.(웃음)
‘몽블랑 레전드’와 ‘몽블랑 레전드 스피릿’에 각각 다른 그림을 그렸다.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의뢰받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아는 몽블랑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할지, 아니면 브랜드의 기원이자 로고인 몽블랑산에 대한 그림을 그릴지 고민이 깊었다. 결국 둘 다 하기로 했다. 우선 ‘몽블랑 레전드’에는 몽블랑의 브랜드 스토리를 담았다. 전체적으로는 몽블랑의 도전 의식을 그렸는데, 가령 뾰족한 삼각형으로 몽블랑의 시작이 된 만년필 펜촉을 형상화한 식이다. 내가 아는 몽블랑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도전해온 브랜드거든. 또 흑백을 사용한 건, 만년필 잉크가 보통 검은색이어서다. 반면 ‘몽블랑 레전드 스피릿’에는 몽블랑산을 형상화했는데, 흰색과 블루 계열로 우뚝 솟은 설산과 하늘을 표현했다. 그림 속에 등장한 손은 산을 정복하려는 사람의 의지 혹은 도전을 나타낸다. 공통적으로 ‘도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이 이 제품을 선택했으면 하는가?
음…. 사실 향수는 지극히 개인의 취향으로 선택하는 제품이다. ‘이 향은 남성적이다’ ‘이 향수에선 아빠 스킨 냄새가 난다’ 등은 선입견이라고 생각한다. 향수는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 내가 경험한 몽블랑 향수는 누구에게나 아주 잘 어울린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우선 당장 대구에서 아트 페어가 있다. 그리고 12월 대만에서 열리는 어반 아트 페어에도 참가한다. 내년엔 한국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열고, 대만과 필리핀에서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여기까진 결정된 것이고, 여태까지 그래 왔듯,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
욕심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최종 꿈이 있다면?
그냥 죽을 때까지 원하는 걸 하고 싶다. 조금 쓸데없는 짓이라도.(웃음)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