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 복제를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하는 사람이다.
‘너 사용법’이 엄청 사랑받았으니까, 그런 곡을 다시 한번 써볼까? 생각해도 그런 곡을 절대 못 만든다. 안 나온다.”
에디 킴의 시작을 되짚어봤다. <슈퍼스타K 4>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고, 자신이 만든 음악보다 먼저 여러 커버 곡을 부르며 존재감을 어필했다. 그 덕에 방송을 통해 얻은 이런저런 이미지가 늘 따랐고.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입장에서 이런 것들이 어떻게 느껴졌나?
언급되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내 음악을 잘 알아주면 좋겠지만, 일단 나를 알려야 내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도 생길 테니까.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라디오스타>에 정준영과 지코가 출연하며 나에게 ‘베짱이’라는 이미지를 씌웠을 때도, 정작 나는 방송 보며 엄청 웃었다. 워낙 친한 사람들인 데다 으레 우리끼리 하던 농담 같아서. 방송 이후에 댓글이 달린 걸 보고 나서야 ‘아, 마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었나?’ 싶었지.
갑자기 이미지의 무게가 확 느껴지던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웃긴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이미지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이런 이미지가 모여서 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구나. 그래도 나는 이런 일에 부정적이지 않다. 방송을 통해 내 음악보다 다른 모습이 먼저 노출되며 이미지가 형성되지만, 그냥 그 자체로 좋다.
잘못된 이미지라 해명하고 싶지는 않나?
해명을 하면 안 되더라. 내 경험상으론 그렇다. 조용히 넘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사실 당시 언급된 ‘베짱이’는 작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웃자고 빗대어 한 말이었다. 한 곡을 작업할 때 많은 시간을 들이는 편인가?
작업을 정말 많이 하는데, 중간중간 딴짓을 하는 편이다. 하고 싶은 장르가 워낙 많아서. 앨범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앨범에 쓰일 곡만 딱 작업하겠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기 싫다. 그럼 앨범에 싣는 곡들이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되어버리니까. 음악인으로서 내가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음악들을 그때그때 작업하다 보니 막상 앨범에 쓸 곡이 없었다. 펑크도 하고 일렉트로닉도 하다가 어느 순간 내 마음에도 들고 앨범에 쓸 만하다 싶은 게 있으면 빼놓는데 지난 몇 년간 그런 곡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3집 앨범을 내기까지 3년 9개월이나 걸린 거다.
앨범을 내보자고 마음먹은 순간은 언제였나?
시간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감이 생기더라. 사실은 새 앨범을 내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흐른 시간을 재고 있지도 않았다. 회사에 물어보니 3년 9개월이라 해서 나도 깜짝 놀랐다.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본인에게 싱글은 ‘사’이고, 앨범은 ‘공’이라고.
맞다. 그러면 안 되는데. 다 ‘공’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데.
그래서 싱글을 낼 땐 흥미로운 것, 해보고 싶은 음악을 하게 된다고 했다. 앨범 작업을 할 땐 의미 있는 것에 도전하게 된다고 했고. 이번 앨범으로는 뭘 해내고 싶었나?
너무 명확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음악, 남들은 못하는 음악. 그런 걸 하고 싶었다. 곡을 쓰다 보면,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부를 것 같은 곡이 있거든. 그런 곡은 내 앨범을 위해 쟁여뒀다. 그런 곡들이 한 앨범을 낼 정도로 쌓인 거다. 이번 3집 앨범에 6곡이 수록됐다. 갖고 있던 곡 중 최고 좋은 1번부터 6번까지를 다 넣어버렸다. 앨범용 곡은 이제 다시 또 모아야 한다. 0부터 다시 시작이다. 모두 타이틀로 쓸 만한 곡들이라 아깝기도 하지만 성격상 아껴두질 못한다.
에디 킴이 가장 잘하고 남들이 못하는 음악이란 뭘까?
나는 특이한 소재로 가사를 쓰고 그루브 있는 음악을 잘하며, 좋아한다. 그게 나만의 감성을 이루는 기본적인 바탕이다. 대부분 나를 발라드 가수로 알고 있는데, 사실 내가 하는 음악은 발라드가 아니다.
처음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 좋아한 음악은 어떤 거였나?
흑인 음악이다. 중학교 때, 흑인 음악이 좋아서 음악을 시작했거든. 지금도 R&B적 요소가 있는 음악이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다.
펑크 앨범을 낸 적도 있던데.
가끔 한 장르에 순간 꽂힐 때가 있다. 그 앨범은 서너 달 동안 펑크 음악만 듣던 시기에 만들었다. 작업실에 앉아 있어도 다른 곡이 안 나오더라. 그 당시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이 펑크였던 거다. 그런 식으로 무언가에 완전히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럴 땐 다른 생각 않고 그런 곡을 지어야 한다. 나오는 대로. ‘그때 이런 거 한 번 해봤어야 했는데’라는 마음으로는 음악 못 만든다. 나는 그렇다.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간 발표한 곡들을 보면 하고 싶은 음악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디 킴은 자신다운 음악에 관해 엄격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맞다. 정말 그렇다. 단점은 대중에게 ‘에디 킴다운 노래’를 명확히 인식시키기 어렵다는 거다. 그래도 나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껏 해온 모든 음악이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음악들이라는 점이다. 내가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할 수 있는 음악을 일단 펼쳐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보다도?
보통 자기 복제라고 하지 않나. 스타일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 자기 복제를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자기 복제를 하고 싶어도 절대 못하는 사람이다. ‘너 사용법’이 엄청 사랑받았으니까, 그런 곡을 다시 한번 써볼까? 생각해도 그런 곡을 절대 못 만든다. 안 나온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하지 못한다. 이렇게 포괄적인 음악 작업이 나만의 장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에디 킴다운’ 노랫말은 확실히 존재한다. 이번 앨범에는 어떤 이야기들을 썼나?
1, 2집을 쓸 때와는 연애를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1, 2집 때는 사랑의 시작 단계를 많이 노래했다. 설레고, ‘밀당’하고. 실제로 그 당시 나에겐 그런 감정이 연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밀당’ 같은 게 조금은 귀찮아졌다. 이제 연애, 사랑이라 하면 머릿속에 다른 것들이 떠오른다. 편해지는 연애의 가치나 이별 후의 감정. 3집에는 이런 이야기들을 썼다. 조금 더 진한 얘기. 사실 1, 2집은 내가 스물하나, 스물둘일 때 작업했으니까. 3집은 스물일곱부터 스물아홉에 쓴 곡들이고.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감정들을 느끼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줄곧 사랑과 연애에 관한 노래들을 해왔다. 본인이 가장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인가?
보통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걸 상상하며 곡을 쓰지 않나. 함께 공감하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 그럴 수 있는 주제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가장 보편적인 감정인 사랑을 주제로 삼고, 나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조금 더하면 명료하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랑은 노래하기에 가장 쉬운 주제다. 다른 걸 노래하는 일이 더 어렵다.
1, 2집에서는 사랑과 연애가 사고처럼 우연히 일어나곤 했다. 혹은 운명처럼.
그런 걸 꿈꿨던 나이였다. 그런 사랑과 연애가 더 로맨틱하다고 여겼다. 지금도 그런 곡을 쓸 수는 있지만, 이젠 확실히 조금 더 현실적인 감정에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서 노래하는 사랑과 연애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타이틀 곡인 ‘떠나간 사람은 오히려 편해’도 마찬가지다. 이별에 관해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감정을 툭 턴다.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랫말이 많지만,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 편안한 감정, 작은 추억 같은 것들을 그리워한다.
에디 킴의 음악에 공감하는 층이 예전과는 조금 바뀌겠는데.
얘기하다 보니 그럴 것 같다. 큰일 났다. 나이 어린 팬들이 공감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제 날 ‘아재’라고 하는 거 아닐까? 그 생각을 못했다. 하하. 그래도 4년 전에 1, 2집 좋아해주던 팬들도 나이를 먹었을 테니까… 그들도 이제 좀 알 거다. 그때 꿈꾸던 마법 같은 사랑은 없다는 것을.(웃음) 세월이 정말 무섭다. 가사가 바뀌네.
앨범 내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들 예전처럼 쓸 수 있었을까?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공감을 얻진 못하겠지. 따라 한 느낌일 테니까.
언젠가 다른 인터뷰에서, 꿈꾸던 것의 80%는 이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 말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 80%라니. 보통은 그보다 한참 성취도가 낮지 않나?
중학교 때 음악을 시작했는데 그때 세운 목표가 있다. 아직도 접지 않은 꿈인데 그 꿈을 100이라 하면 사실은 10이나 20정도밖에 이루지 못했지. 하지만 <슈퍼스타K 4>에 출연하고 가수의 길에 뛰어들어 보니 현실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내 음악을 알리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 에디 킴의 노래를 사람들이 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80은 이뤘다고 말하고 싶다. 운으로 이룬 거니까. 내가 조금만 운이 나빴다면, 시기를 조금만 잘못 탔다면, 지금의 위치까지도 못 왔을 거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 세운 목표가 빌보드 차트 1위였지 아마?
엄청난 야망이지. 그땐 어린 마음에 한국의 마이클 잭슨 같은 걸 꿈꿨다.
엄청난 목표가 있는 반면, 그다지 서두르지는 않는 것 같다.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끌려 세상에 나왔다’고. 어린 시절 나는 20대에 내 음악을 보여주고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좋아하던 뮤지션이 브라이언 맥나이트, 에릭 베넷, 존 레전드 같은 이들이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원숙한 음악을 하던 사람들. 그런 뮤지션을 보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꿈을 키웠다. 나는 뮤지션으로서 사는 인생 중 정말 잘 만든 앨범을 언제 낼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뭘 빨리 해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 하루빨리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슈퍼스타 K 4>에 출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이끌려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길을 걷고 있을 것 같나?
일단 제대 후에 다시 버클리로 돌아가 학업을 마쳤을 거다. 졸업 전까지 버클리의 훌륭한 음악 친구들과 합심해 톡톡 튀는 데모 테이프 만들어서 미국 음반 회사에 돌리고. 그렇게 하다 어떤 회사와 정식으로 레코딩을 하게 되면, 멋진 프로듀서들과 알짜배기 음원을 만들고… 이런 계획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슈퍼스타K 4>에 나와서 ‘버스 안에서’를 부르게 된 거지. 하하.
버클리에서 공부하던 당시와는 너무 다른 길을 걷는 것 아닌가?
그냥 이게 나의 길이구나 싶다. 길이 조금 틀어졌지만 꿈을 접은 건 아니고, 그저 주어진 기회를 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음악에 몰두하며 지금까지 지내온 것 같다. 원래 모험을 좋아한다. 되든 안 되든 해보자,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늘 한다.
하긴 중학교 3학년 때 음악 하겠다며 혼자서 기타 하나 들고 미국으로 건너갈 만큼 용감한 사람이니까.
그때도 솔직히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보다 얼른 세상으로 나가서 부딪치고 싶었다. 무모했지. 무모하길 다행이다. 무모한 덕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에디 킴의 노래를 사람들이 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80은 이뤘다고 말하고 싶다. 운으로 이룬 거니까.
내가 조금만 운이 나빴다면, 시기를 조금만 잘못 탔다면, 지금의 위치까지도 못 왔을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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