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패션 신에서 밀리터리는 진부한 단어지만 시계 업계는 다르다. 시계의 트렌드를 단박에 알 수 있는 바젤월드에선 복각이 키워드로 떠오르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 몇몇 밀리터리 워치가 자신 있게 등장했다. 그중 해밀턴의 카키 필드가 유독 돋보였다고 주장해도 이견은 없을 거다. 복각이 주목받는 시점에 해밀턴이 밀리터리라는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건 응당 납득할 만하다. 밀리터리를 제외하고는 오늘날까지 브랜드 역사가 연결되지 않으니까. 해밀턴은 1914년부터 4년간 지속된 제1차 세계대전부터 1945년에 종전한 제2차 세계대전까지 미 국방부 납품 업체로 맹활약했다. 당시 육·해·공군을 가리지 않고 장교와 장병들을 대상으로 총 1백만 개에 달하는 시계를 공급했다. 지금의 카키 필드 컬렉션은 194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미 군복의 색상에서 영감을 받아 카키(Khaki)라는 별명이 붙었다. 군인에게 친숙하고 편한 발음 덕에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이다. 뒤따라오는 필드를 한글로 풀어 쓰자면 야전(野戰)이라는 뜻인데 야외 전투에 적합한 시계를 말한다. 밀리터리 워치 안에 속하는 필드 워치는 오로지 군인을 위해 디자인한다. 전장에서 공해에 가까운 기교는 과감히 버리고 탄탄한 내실만 남긴다.
카키 필드 매커니컬은 이러한 필드 워치의 기량을 안팎으로 제대로 물려받았다. 먼저, 매트한 다이얼과 대비되는 광택의 화이트 래커 처리한 핸즈, 거기에 야광 숫자 인덱스를 더해 시인성을 높였다. 다이얼에는 흔한 날짜창조차 없는데 이는 온전히 시간에만 매진했다는 증거다. 글라스는 가독성을 방해하는 흠집이 없어야 하기에 스크래치에 강한 사파이어 글라스를 선택했다.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필드 워치가 갖춰야 할 요소 중 하나로 해크(Hack)를 꼽는다. 작전 현장에서 초 단위로 수행 시기를 맞춰야 할 때 크라운을 당겨 초침을 멈추고 시계를 동기화하는 중요한 기능이다. 이 역시 카키 필드 매커니컬에 장착했다. 허투루 복각하지 않고 실전 그대로 적용한 진정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스트랩은 뻔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나토 스트랩을 사용했다. 전시 군복을 스트랩으로 만든 것에서 유래한 나토 밴드는 손목 위에 가볍고 부드럽게 감기며 시계의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복각의 향수가 정점을 이룬 부분은 무브먼트다. 42시간 파워 리저브가 가능한 기계식 무브먼트 2801-2를 사용해 손으로 용두를 직접 감아야 한다. 의식에 가까운 행위는 착용자의 손맛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만하다. 빅 사이즈 다이얼이 트렌드임에도 불구하고 38mm 사이즈를 내세우며 오롯이 본 모델에 집중한 카키 필드 매커니컬. 기계식 시계 입문자에게도 브랜드의 진심이 충분히 느껴졌을 이 시계는 가격까지 합리적이다. 그 어느 때보다 머릿속에 인상 깊게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토록 많다.
ANOTHER CHOICE
각기 다른 얼굴의 밀리터리 워치 셋.
1 VICTORINOX
I.N.O.X
65톤 무게의 탱크가 충격을 가하는 등 혹독한 1백30여 가지 테스트를 거쳤다. 200m 방수가 가능한 시계 88만5천원.
2 LUMINOX
Land
브랜드의 독자적인 기술 LLT(Luminox Light Technology)를 적용한 자체 발광 인덱스가 특징이다. 군 정찰병에게 영감받은 시계 56만8천원.
3 TIMEX
Expedition
아날로그 디자인과 편안한 착용감, 합리적인 가격으로 입소문이 난 시계다. 3시 방향에 날짜창을 더했고 쿼츠 무브먼트로 작동하는 시계 10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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