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알아보는지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꽃보다 할배 리턴즈>가 3년 만에 또 돌아올 줄 몰랐다. 그리고 또 이서진이 출연할 줄도 몰랐고. 어떤 생각으로 출연 제의에 응했나?
오리지널 멤버인 선생님 네 분이 참여하신다면 당연히 나도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의 여지는 별로 없었다. 전부터 나영석 PD와 “한 번은 더 가서 마무리를 지어야 되지 않겠냐”라고 얘기했으니까. 근데 나 PD 걔는 사실 나한테 미리 얘기도 안 해준다.(웃음) 당연히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형, 이런 거 있는데 같이 하실래요?”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나는 맨 마지막에 안다. ‘아, 내가 얘랑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구나’ 하고.
막역한 사이가 됐다고 해서 그렇게 덥썩 출연할 것 같지는 않다. 함께 일하면서 신뢰가 엄청 쌓여야 가능할 텐데?
우리가 여행 프로그램으로 처음 시작했기 때문에, 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한국에서 백 번 만난 것보다 빨리 친밀해지더라고. <삼시세끼>도 한 번 촬영 시작하면 2박 3일은 같이 있어야 하고, <윤식당>도 열흘씩 촬영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나 싶다.
확실히 이런 방송에 나오면 사람들이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는 것 같지 않나? 드라마에만 출연했다면 길에서 마주쳐도 어려워했을 거 같은데.
좀 더 친근해 보이는 게 맞는 거 같다. 근데 사실 그런 거 별로 신경을 안 써서. 관심도 없고.(웃음) 누가 나를 알아보는지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집 주위 동네 걸어다니면 다들 그냥 동네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말던데?
방송이 끝나고 나면 ‘이서진 선글라스’ ‘이서진 시계’ ‘이서진 가방’ 등등 인터넷 검색어가 올라온다. 지금 은근히 유행을 만드는 트렌드세터가 된 거 알고 있나?
하하. 나는 여행에 맞는 걸 걸치고 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닷가에서는 너무 좋은 시계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가볍고 스포티한 걸 착용했다. 선글라스나 가방도 마찬가지고. 그 프로그램의 취지와 분위기에 맞는 아이템을 고르려고 고심했다. 시청자들이 관심 있게 봐주고 해당 제품들의 매상 올라갔다는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웃음)
나영석 PD와 여러 시리즈를 하다 보니까 어느새 ‘세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게 비치는 것에 대해선 개의치 않는 편인가? 나 PD를 떠올리면 이서진이 자동 연상되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나 PD가 뭘 준비하는지 모른다. 물어보지도 않고, 물어본다고 말해줄 사람도 아니고.(웃음) 갑자기 나 PD가 우리 회사에 전화해서 이때쯤 내 스케줄이 괜찮은지 물어본다. 괜찮다고 하면 그쯤 일정을 꼭 빼달라고 부탁하고. 그런 식으로 출연이 성사되어서 나도 기사를 보고 나서야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걸 알게 된다. 하하. 나중에 전화해서 물어보면 “형은 아무 생각하지 마. 그냥 우리 첫 미팅할 때 다 얘기해줄 테니까” 그런다. 그럼 미팅 때 가서 듣는 거다. 나도 굳이 미리 알고 싶지도 않다. 알면 피곤하거든. 준비 안 하고 가는 게 더 좋다.
“당연한 말이지만 작업을 할 때 잘 맞으면 오래도록 같이 가게 된다. 반면에 잘 안 맞으면 다시는 안 보는 경우도 있다. 하하.”
올해는 TV 예능에서만 보나 했더니, 하반기에 개봉하는 영화가 한 편 있더라고. <완벽한 타인>은 어떤 영화인가?
동창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 모여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동명의 이탈리아 영화가 원작이다. 한 달 동안 함께 출연하는 조진웅, 유해진 등과 매일 만났다. 세트장이 광주에 있어서 촬영하고 저녁 먹고 술 먹고 다음 날 또 촬영하면서 동고동락해 완성한 영화다.
어떤 인물을 연기하나?
연출을 맡은 이재규 감독이 이번에 영화를 같이 하자길래 오랜만에 만났다. 막상 만나서는 근황 등 사적인 얘기만 계속 하다가 대본을 받고 헤어졌다. 집에 가서 대본을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중에 내가 어떤 역할인지 모르는 상태였다.(웃음) 남자가 네 명 등장하는데 의사와 변호사, 체육 선생, 그리고 아내가 차려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남자. 이 정도였다. 그래서 속으로 ‘아, 또 나한테 의사나 변호사 역할 시키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지. 다음 날 이재규 감독이 연락 와서는 “미안해요. 무슨 역할인지 제가 얘기를 안 했죠? 레스토랑 운영하는 남자 역할이에요”라고 하더라고. 아주 여성 편력이 심한, 어린 아내와 결혼해 그 아내의 돈으로 레스토랑을 차린 남자였다. 그 역할을 (조)진웅이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라고 하니까 정말 잘됐다 싶었다. 마음에 들었거든. 네 남자 중에 가장 문란한 역할이다. 하하.
문란한 것도 대사로만 잠깐 설명하는 거 아닌가?
아니다. 그런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다들 결혼을 한 역할이라서 하여튼 대사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아주 문란하다.(웃음) 연기하기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재규 감독과는 드라마 <다모>로 인연을 맺었다. 한 번 작업했던 사람과는 꽤 오래 연을 이어나가는 것 같은데? 나영석 PD도 그렇고.
당연한 말이지만 작업을 할 때 잘 맞으면 오래도록 같이 가게 된다. 반면에 잘 안 맞으면 다시는 안 보는 경우도 있다. 하하. 이재규 감독과는 서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동갑이기도 하고, 그 사람도 첫 작품이고 나도 그 작품으로 잘되고 해서. 그 이후 서로 연락하고 만나면서 잘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 영화도 같이 하게 되고.
“오히려 어색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그런 장면이 낯설 수도 있구나 새삼 느꼈다. 30대, 40대를 지나면서 그 나이대에 했던 역할과 다른 지점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구나 싶다.”
지금까지 얘기 들어보면 뭐든지 선택할 때 그냥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맡기는 것 같다.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작품은 엄청 까다롭게 고른다. 그래서 작품 수가 얼마 없잖아. 하하. 정말 하고 싶은 거 아니면 안 한다. 그래야 나중에 잘되지 않더라도 후회를 안 하니까. 또 결과가 어찌됐든 간에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예능에서 이서진의 매력이나 진짜 성격을 보여주면서, 이전과는 제안받는 캐릭터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전에 드라마에선 주로 다 갖춘 남자 역할을 하지 않았나?
그렇지도 않다. 다들 내가 다 갖춘, 정형화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런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제대로 된 가정에서 자란 인물을 연기한 적이 없다. 하하. 나는 상처가 있는 사람,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 마음 한편에 어두운 면이 있는 인물이 좋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들을 선택해왔고.
그런 인물들이 결국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가 멜로 드라마 아닌가.
예전엔 ‘드라마’라고 하면 멜로가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사실 요즘은 정말 멜로 안 하고 싶다. 멜로를 할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서.(웃음) 나이를 먹으면서 방향도 바뀐다. 이제 멜로는 더 이상 힘들지 않을까?
에이. 멜로를 못 할 나이도 아니다. 얼마 전에 톰 크루즈가 내한하지 않았나. 아직도 액션 연기를 하면서 날아다닌다. 한국의 톰 크루즈가 되어볼 생각은 없나?
아우, 액션은 무리다. 요즘에 이재규 감독과 영화사 대표를 자주 만나다 보니까 다양한 이야기가 오간다. 그중 몇 개는 해볼 생각도 있다. 여태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 외에 다른 것들을 해보고 싶은데, 이런 게 좀 있더라고. 최근에 <완벽한 타인> 시사회를 했는데, 관객이 내가 욕하는 장면을 보고 ‘너무 안 어울린다’는 반응을 보이더라는 거다. 이재규 감독은 내가 얼마나 욕을 자연스럽게 하는지 아는 사람이라(웃음), 의외였다고 하더라. 오히려 나는 욕을 안 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어색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관객에게 그런 장면이 낯설 수도 있구나 새삼 느꼈다. 30대, 40대를 지나면서 그 나이대에 했던 역할과 다른 지점을 찾아가야 하는 시기구나 싶다.
록 음악은 여전히 좋아하나?
내가 듣는 음악은 옛날에 멈춰 있다. 하하. 1970년대와 80년대 밴드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 공연도 보러 다닌다. 좋아하는 밴드는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꼭 직접 만나고 싶었던 밴드의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웬만한 밴드 공연은 다 한 번씩 본 것 같다. 요즘도 해외에 나가면 그 도시에서 어떤 공연을 하는지 제일 먼저 찾아본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악이라 해도 뭔가 있으면 찾아가는 편이다.
요즘 공연장 풍경이 달라졌다. 다들 스마트폰 들고 찍기 바쁜데.
나는 내 사진도 잘 안 찍는다. SNS나 카카오톡 이런 것도 다 안 한다.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는 사람이다.(웃음)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밴드의 공연을 직접 보는구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작 찍어둬도 나중에 별로 찾아보지도 않잖아?
떼창 하느라 목이 쉰 이서진을 상상하니까 재밌다. 팔짱 끼고 지켜볼 것 같은데.
밴드 공연장은 자리가 정해져 있어도 무조건 스탠딩이다. 목이 쉰 적이 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맨 앞에서 보다가 며칠 동안 이명 현상에 시달려서 고생한 적은 있다. 공연은 무조건 앞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앰프 앞에서 봐서 그런가 울림이 심해서. 이제는 조금 뒤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주의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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