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가 영화를 만든다면, 내용은 분명히 기괴할 거다. 구찌 안에서 보여주는 그의 끝없는 판타지가 담긴 영화라니. 적어도 패션계에선 두고두고 회자되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2018 F/W 구찌 아시아 프레스 프레젠테이션에 참여한 후의 개인적인 바람일 뿐이다. 구찌도 알레산드로 미켈레도 그런 계획을 말한 적은 없다.
올해 초반 2018 F/W 구찌 컬렉션을 선보였을 당시엔 수술실을 모티브로 한 패션쇼장, 모델의 얼굴을 똑같이 본뜬 두상 모형을 그 모델이 직접 들고 나오는 콘셉트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났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 6개월 전부터 얼굴을 본뜨고, 제작하기 시작했었다고. 치밀하게 준비해온 이 컬렉션은 처음부터 의미심장했다. 주제는 ‘사이보그(Cyborg)’. 그 시작은 미국의 사상가 도나 해러웨이(D. J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A Cyborg Manifesto)’에서부터. 그녀는 인간과 기계, 남성과 여성 등 이분법적인 논리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는 상징으로 사이보그를 미래의 인간형으로 제시했다. 구찌에게 사이보그는 포스트 휴먼(Post-human)을 뜻한다. 자연과 문화, 남성과 여성, 평범함과 이질성, 정신과 물질 등등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것들을 한데 뒤섞어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역설적이고도 이상적인 생명체라고 판단했다.
구찌의 사이보그는 태생적으로 정해진 것, 폭력이나 정해진 틀에 맞춰 생성된 것,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지 않다. 스스로 변신을 거듭하며 무엇이 될지를 결정하는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형을 표방한다. 생물학적으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고, 규정할 필요 없는 생명체를 만들어냈다. 두상 모형을 스스로 들고 나온 모델은 머리가 두 개인 용의 후손, 손에 눈에 있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 뿔이 달려 있기도 하다. 성역 없이 혼재된 옷, 기이하게 뒤섞인 레이어링, 기준 없이 전혀 다른 제각각의 캐릭터들이 난무했다. 이쯤 되니 구찌의 ‘사이보그’란 영화를 다시금 상상하게 된다. 윤리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의미를 지닌 내용.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괴하고, 유쾌한 장면들. 딱 이대로의 콘셉트와 스토리로 누군가 꼭 제작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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