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른 사람보다 기본이 약하다. 그래서 개근이 목표다. 아직까진 잘 다니고 있다. 내 능력이 모자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진 않더라. 외모 느낌이 그렇지 않나 보다.(웃음)”
요즘 새로운 상황으로 정신없겠다
맞다. 학교 다니랴, 해설하랴. 처음 학교 다닐 땐 투잡은 힘들겠다 싶었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힘들더라. 학교 가면 9시간 동안 수업 듣는다. 육체적으로는 괜찮은데 그동안 공부하지 않아서 정신적으로 힘들더라. 그래서 그냥 공부에만 몰입하려고 했는데 스포티비에서 같이 하자고 했다. 후배인 SBS 해설위원 최원호도 학교를 다녔다. 그와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고 나서 두 가지를 같이 해보자고 결정했다.
무리하더라도 새로운 걸 해보자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5년 전에 학교를 다니려고 했다.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50세가 넘으면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작년에 성적에 상관없이 코치를 그만두고 학교를 다니려고 했다. 사실 내게는 해설보다 공부가 우선이다. 그렇게 계획을 세웠으나 해설도 병행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어디에서 왔나?
기본적인 건 무식해서고.(웃음) 좀 더 명확하게 알고 싶었다. 그동안 쌓은 경험, 생각, 이론이 너무 광범위해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뭘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뭘 하고 싶고, 되고 싶은지 목표를 세우고 학교에 들어갔다. 항상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춰 가는 게 중요하다.
그러고 보니 선수와 코치로 살면서 항상 목표를 정했다.
선수나 코치라고 해도 매번 목표를 설정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학교에서 교수님과 얘기해보는 것도 도움이 됐다. 명확하게 목표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동안 만나온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니 새로웠다. 프로에 들어선 후로 계속 현장에만 있었다. 그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경주마처럼 달려왔다. 학교에 다닌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그사이에 경험한 게 너무 많더라. 그동안 내가 막힌 삶을 살았다고 느꼈다.
정말 새로운 세상으로 몸을 던졌다.
현장에선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지금은 정신적으로 힘들다. 뇌를 써서 그런지 운동할 때보다 더 배고프다. 프로에서는 육체적으로 피곤해도 이렇게 많이 자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바쁘게 지내다 보니 정신적으로 피곤했나 보다. 보통 하루 6~7시간 자는데 요새는 한 12시간 자기도 했다.
그런 새로움이 좋은가? 아니면 아직 낯설고 힘들기만 한가?
뭘 해도 피곤한 건 당연하다. 지금 상황이 즐겁다기보다는 뿌듯하다. 해설이야 원래 해온 분야니 몸으로 하느냐, 말로 하느냐 차이인데 공부는 좀 다르다.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 태만하다는 생각이 들면 나 나름대로 훈련한다. 예전에 일본어 학원을 아침 7시에 다닌 적이 있다. 밤 경기를 끝내면 보통 1~2시에 잔다. 6시에 일어나서 학원에 가야 하니 4~5시간 자는 거다. 새벽마다 자신과 싸운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기에 나와 싸우는 거다. 그러다가 결국 간다. 여름에 시원한 새벽바람 맞으며 학원 갈 때 희열을 느꼈다. 자신과 싸워 이긴 희열은 느껴본 사람만이 안다. 지금 그런 기분이다.
이번에 학교에 다니면서 자신과 싸울 부분이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다른 사람보다 기본이 약하다. 그래서 개근이 목표다. 아직까진 잘 다니고 있다. 내 능력이 모자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항상 생각한다. 난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진 않더라.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이 그렇지 않나 보다.(웃음) 교수님들이 성실한 점을 좋게 보는 듯하다.
나이 좀 있는 학생이지 않나?
보통 10년 정도 어린 사람들과 공부한다. 잘 지낸다. 모임도 한 번 참석했다. 수업 끝나고 소주도 한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 중 지도자나 운동한 친구, 일반인도 있다. 교수님들도 마찬가지다. 다 영역이 다르기에 야구에 관해 궁금한 점을 내게 물어본다. 선수 생활이나 지도자 생활 노하우 등을 얘기해주고, 다른 분야는 또 내가 그들에게 물어본다. 다른 스포츠 종목이라든가 심리학 같은 분야는 응용할 게 많더라. 예를 들면, 야구도 정확성이 필요하니까 더 정확해야 하는 사격은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심리 상태를 다스리는지 듣는다. 도움이 많이 된다.
“경기 전에는 될 수 있으면 일찍 가서 선수 나오는 모습을 보려고 한다. 운동장에 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홈 팀 분위기가 좋으면 공기가 달라진다.”
해설을 계속 들어왔다. 이젠 직접 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이 부분은 조금 더 얘기해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들었다. 막상 그 자리에 앉으니 잘 안 되더라. 첫 경기 해설할 때 시스템도 모른 채로 들어가 힘들었다. 어느 정도 훈련하고 실전에 임해야 했는데 이틀 전에 계약하고 바로 들어가서 처음엔 당황했다. 얘기해야 할 타이밍을 잡기 힘들었고, 지금까지 써온 은어를 거를까 말까 고민하다 보니 말이 잘 안 나왔다. 5회 지나고 나서야 야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3연전 해설하니 조금 적응했다. 아직까지도 그 부분들이 어렵다.
처음 해설하고 나서 제일 먼저 뭘 준비했나?
뭘 준비하기보다 다른 해설위원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내가 들어가고 빠져야 하는 타이밍 등 시스템을 파악하면 말은 내가 그냥 하면 되니까. 선수 정보도 자료로 준비돼 있고 내 머리에도 축적돼 있다. 제일 어려운 건 단어가 입에 잘 안 붙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하긴 했지만, 아직 멈칫하는 순간이 생긴다. 선수 이름이 생각나지 않을 때라든가.(웃음)
해설로 나서면서 관심을 많이 받았다. 신선했겠다.
코치 생활하며 팬들과 만날 일이 별로 없잖나. 언론도 마찬가지고. 야구장에 와서 수트 입고 왔다 갔다 할 때 팬들이 사진 찍거나 사인을 해달라고 하니 생동감이 있긴 하다.
해설할 때 LG가 계속 이겨 ‘승리의 토템’으로 불리기도 했다.
나중에 알았다. 해설할 때는 그런 걸 느낄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편파적으로 해설하면 안 되니까. 해설하기 전에 편파 해설을 조심하라고 가장 많이 들었다. 그 팀에 소속된 사람이었는데 그 팀이 잘한다? 그럴 땐 상대 팀 눈치가 약간 보인다.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올 시즌 해설하면서 방향성을 잡는다면? 유행어를 만들거나 한 부분을 집중해서 강조하는 식으로 해설 색깔을 보여줄 수도 있다.
이론적으로 조금 더 명확하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개그콘서트> 작가도 아니니까 유행어는 뭐. 그냥 편하게 하다 보면 재밌는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은연중에 나오는 게 재밌는 거다. 설정하면 별로다.
한 인터뷰에선 솔직하게 해설하고 싶다고 했다.
말을 포장하고 덧붙이지 않으려고 한다는 뜻이다. 해설자가 상황을 다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가령 어떤 선수가 기용되지 않았다고 치면 팀마다 사연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그냥 지금 상황에선 나와야 하는데 왜 안 나올까요? 하며 뱉어버리면 해명할 수 없잖나. 그 사연을 알 수 없으니 내 생각대로 말할 수 없다는 거다. 설명에 집착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투수가 빠른 볼을 던졌을 때, 포심 패스트볼 등 빠른 볼을 뜻하는 단어가 많잖나. 그럴 때 간결하게 직구, 빠른 볼이라고 하려고 한다. 어느 정도 설명이 필요하지만 너무 그것에 집착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면 경기 전에는 될 수 있으면 일찍 가서 선수 나오는 모습을 보려고 한다. 운동장에 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홈 팀 분위기가 좋으면 공기가 달라진다. 시작부터 끝까지 많이 보고 자세히 전달하려고 한다.
학업과 해설 말고 올해 하고 싶은 계획이 또 있나?
지금은 그 두 가지에 전력을 다할 거다. 그것만 해도 용량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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