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식아 너는 눈이 비릿해. 그러니까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그런 너 말고, 좀 비릿한 걸 해봐’라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지가 가장 궁금하다.”
지금 이 인터뷰, 곧 개봉할 <마녀> 홍보의 일환이지 않나. 홍보 활동은 즐기는 편인가?
매거진 촬영은 재미있고, 마이크 들고 무대 위에 오르는 건 솔직히 부담스럽다. 무대 공포증이 있거든. 다른 영화를 하나 찍고 있어서, <마녀> 홍보를 필요한 만큼 못하고 있다.
<마녀>에는 비교적 초기에 합류했나?
<마녀>는 주인공에 완전히 포커스를 맞춘 영화다. 마치 다르덴 형제의 영화처럼. 주된 등장인물이 4명인데, 그중에선 내가 가장 늦게 투입됐다. 감독님이 극의 기둥을 잡아줄 선배님들을 가장 먼저 섭외하고, 그다음 오디션을 통해 신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뽑았다. 그리고 내가 투입됐다.
배우에게, 작품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프리 프로덕션 기간 아닌가.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긴 걸 좋아하나?
딱 중간이 좋다. 멘탈이 약하거든.(웃음) 생각도 걱정도 많아서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길면 힘들다. 차라리 짧은 게 낫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옥자>는 정말 짧았고 <거인>은 길었고, <마녀>도 길었다. <마녀>에서 액션 신이 좀 있는데, 액션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2~3개월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 맡은 배역 이름이 ‘귀공자’다. 귀공자라니, 꽤 우화적인 이름이다. 드라마 <호구의 사랑>에서 호구를 연기할 땐 스스로 ‘호구이지만 너무 바보스럽게는 보이지 말자’는 기준을 세우지 않았나. 이번 역할에는 어떤 기준을 만들었나?
초기 대본에서 ‘귀공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인물이었다. 아수라 백작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수트를 입더라도 속에 뻣뻣한 셔츠 말고 부드럽게 펄럭이는 블라우스를 입을 것 같은, 말 그대로 ‘귀공자’. 제작 발표회에서 감독님에게 물었다. “이걸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할까요?” 나는 이름부터 귀공자인 캐릭터를 정말 ‘귀공자’ 같지 않게 하려고 했다. 좀 비틀어보고 싶었다. 말투와 대사도 많이 바꿨다.
악역이기는 한가? 예고 영상만 봐서는 그 점이 모호하더라. 굉장히 미스터리하던데.
어떻게 보면 악역이다. 그런데 또 그냥 악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는 귀공자가 일반적인 ‘악역’으로 보이기보다 좀 더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길 원했다. 척 보기엔 깔끔하지만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랐고, 트라우마도 있고. 그 인물의 삶의 궤적에서 생긴 문제들을 함께 드러내고 싶었다. 스트레스 받으면 손톱을 물어뜯는 설정을 얹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입체감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작품을 하는 동안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이었나?
그동안 밝고 발랄한 역할을 주로 했다. 그런 걸 보여줄 때 좋은 반응을 얻었고. 문제는 같은 이미지를 매번 보여주다 보니, 이제는 나 스스로 헷갈리더라. ‘잘한다’ ‘잘 어울린다’라는 칭찬이 과연 내가 그 연기를 정말 잘해내서 얻은 건지, 아니면 그런 캐릭터에 너무 익숙하고 편해서 기술적으로 숙달되었을 뿐인지 궁금했다. 나는 뭔가 새로운 걸 갈망하고 있었다.
아주 적절한 때에 <마녀>를 만나 해갈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네.
잘해보고 싶었다. 액션 연기가 필요한 역할이라는 점도 내게는 매력적이었다. 항상 도망가는 액션, 도망가다 잡혀 넘어지는 액션 같은 걸 많이 했거든. 하하. 이번엔 다른 종류의 액션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액션 연기, 해보고 싶었다.
배우의 성장 과정은 분명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캐나다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았나. 그곳에서의 삶이 지금의 최우식을 어떻게 정의한 것 같은가?
배우로서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그거 하나다. 배우로서의 내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스물한 살까지 캐나다에서 살았는데, 그 시절 나는 겁도 없었고 자유로웠다. 겁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인생을 멈추고 한국에 와서 무턱대고 덤빌 수 있었다. 근거 없는 자신감. 처음 배우 하겠다고 오디션 보러 다닐 때, 내가 가진 건 그것뿐이었다.
캐나다에서 이미 대학교에 다니고 있지 않았나?
맞다. 1학년 1학기만 마친 상태에서 모든 걸 일시 정지한 채 한국에 온 거였다.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데. 캐나다의 자유로운 환경에서 해보고 싶은 걸 많이 하며 살았다. 어떤 인생의 경험을 원할 때 해볼 수 있었고, 그 점이 나의 큰 자산이라고 본다. 원한다면 악기도 배우고, 산에서 놀고, 낚시 다니고. 감정을 숨길 줄도 몰랐다. ‘남자는 태어나 3번 우는 거야’ 같은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내가 울보라는 건 아니고.(웃음) 그런 상태에서 한국에 왔기 때문에 오디션 볼 때 늘 이런 질문을 받았다. ‘너 어디에서 살다 왔니?’ 연기를 시작하던 초반에 ‘애드리브 잘하는 배우’로 기사가 좀 났는데, 실제로 그 당시에는 애드리브로 칭찬 좀 들었다. 혼날 것이라고 생각 못했고 겁 없이 막 하다 보니 애드리브가 나온 거다. 그만큼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즘 애드리브가 안 된다. 되려 애드리브 잘한다고 소문 났던데 왜 못하냐는 이야길 듣는다. 겁이 많아진 거다.
배우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은 어쩌다 하게 된 것인가?
친구가 어느 날 한국에서 연기를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이야길 한 것이 계기였다. 그때 친구가 그랬다. “지금 한국에서 이준기 같은 사람들이 인기야. 외쌍꺼풀인 남자들이지. 이제는 외쌍꺼풀이 대세야.” 그렇게 주변에서 몇 번 얘기했고, 글로벌 프로젝트로 진행되던 <드림 하이> 오디션을 보면서 발을 들인 거다. 잘 안 됐지만 말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대학 공부에 흥미를 못 느꼈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들어간 학교였거든. 거기서 뭘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원래는 유명한 필름 스쿨에 다니고 싶었는데 형이 애니메이션 쪽으로 가버린 바람에, 나는 공부 쪽으로 진학해야 했다.
배우 오디션을 보기 전에는 연출자를 꿈꿨다던데?
카메라 연출을 배우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중학교 다닐 때 영화 예고편 만드는 수업을 받은 적 있다. 친구들과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 예고편을 만들었는데, 제작 과정 자체에서 엄청난 흥미를 느꼈다. 먼 훗날 배우 일을 접고 다른 걸 모색한다면 카메라를 만져보고 싶다.
배우로서 커리어를 시작하던 당시에, 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2014년에 영화 <거인>으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다. 그때에야 ‘이게 내 길 맞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전까지는 내 길이 아닌 게 확실했다.
<거인> 때라면 시작 단계에서 한참 지난 후 아닌가.
긴 시간이었지. 5년 정도를 내 길이 아니라고 확신한 채 보낸 거다. <거인> 찍고 나서 ‘부국제’에서 상 받기 전까지, 김태용 감독님과 내가 항상 같이 술 먹으며 한 이야기가 있다. <거인>은 우리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것. 감독님은 감독님대로 나는 나대로, 감독과 배우 일을 해나가기에 안 맞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어떤 면이 맞지 않는다 느꼈나?
배우든 가수든 이 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예술에 심취하고, 나르시시즘에 도취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면이 내게는 없어서다. 이 일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120퍼센트는 되어야 잘할 수 있다. 100퍼센트로도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취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힘든 인간이다.
스스로 좋은 연기를 했다고 느낀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나?
나는 현장이 아무리 조용해도,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런데 얼마 전 특별한 경험을 했다. 올해 개봉 예정인 영화 <사냥의 시간> 촬영 현장에서다. 연기하던 중, 문득 주변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고 주변의 소리도 소거된 듯한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아주 진실성 있는 연기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모니터링해보니 그렇지도 않더라. 하하. 그래도 나로서는 아주 신기하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영화 <거인>으로 얻은 인정과 상패가 당신에게 남긴 것에 관해 생각해봤나?
그때에야 겨우 자신감을 얻었다. 속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거인>으로 상을 거듭 받으면서 조금씩 ‘지금 나 괜찮은 거구나, 맞는 길을 가고 있구나’ 싶더라.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졌다. 청룡영화제에서는 선물로 나를 위한 책과 비디오를 만들어줬는데, 응원해주는 팬들과 영화를 본 관객들이 보내준 영상 편지를 엮은 것이었다. 그때 엄청나게 위로받았다.
“이 일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120퍼센트는 되어야 잘할 수 있다. 100퍼센트로도 안 된다. 자기 자신에게 취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게 힘든 인간이다.”
“30대의 인생을 준비하고 싶다. 가슴 아픈 사랑도 해보고 부모님과 여행도 많이 가고. 지금까지 한 연기는 내가 살았던 삶에서 꺼내 쓸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닐 것 같거든.”
지금껏 배역의 크기를 딱히 따지지 않고 성실하고 촘촘하게 여러 작품을 매년 해온 것 같다. 언젠가 크게 한 방 날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캐릭터, 작품, 비중 같은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 다음엔 뭘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9년 정도 해온 거다. 대중이 많이 볼 법한 작품에 큰 비중으로 출연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발랄한 역할을 주로 했다. “우식아 너 요즘 반응이 좋은지, 대본이 꽤 들어왔어”라는 말을 듣고 대본들을 보면, 장르는 모두 달랐는데 배역의 이미지는 다 비슷했다. <마녀> 같은 대본도 예전에는 안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연기에 흥미를 잃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어느 순간 느꼈다. 뭔가 바꾸어야겠구나. 그래서 사실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 <마녀>나 <기생충> <사냥의 시간> 같은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일 예정이니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이상하고 신기했던 경험이나, 그런 감정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
대중이 내게 어떤 신뢰를 보내줄 때, 나를 믿어줄 때 정말 신기하다.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 출연할 때가 생각나는데, 사실 특별 출연이었거든. 내 분량은 극소량이었고. 그런데 방송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분량이 많아진 거다. 내 캐릭터에 대한 호응이 좋아서. 그때 정말 신기했다. 사람들에게 ‘호감형’이라는 이야길 듣는 것도 신기했고.
최우식의 20대는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 활동으로 꽉 찼다. 20대였던 본인의 내면을 충족시키는 데 연기가 얼마나 큰 역할을 했나?
‘정말 괜찮은 걸까?’라는 의문이 계속 있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배우로 사는 동안 나의 내면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래도 지금이, 배우 최우식으로서는 가장 괜찮은 인생인 것 같다. 지금 영화 <기생충>을 촬영 중인데 이걸 끝내고는 30대의 인생을 준비하고 싶다. 가슴 아픈 사랑도 해보고 부모님과 여행도 가고. 앞으로 나에게 들어올 인물은 대체로 30대 중·후반일 텐데 진짜 그 나이대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 연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지금까지 한 연기는 내가 살았던 삶에서 꺼내 쓸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닐 것 같거든.
현실적으로 배우가 꿈꾸는 대로 작품이나 배역을 고를 수는 없다. 수십 년의 커리어를 쌓은 배우도 자신 앞에 있는 것들을 선택하면서 그 자리까지 간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지금 우선시되는 작품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 한 선배님이 나에게 이런 이야길 해줬다. ‘우식아 나는 너의 행보가 참 좋다. 근데 뭔가 지금은 바늘처럼 콕 찌를 수 있는 걸 보고 싶다.’ 봉준호 감독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식아 너는 눈이 비릿해. 그러니까 대부분이 알고 있는 그런 너 말고, 좀 비릿한 걸 해봐’라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어떤 모습을 보고 싶은지가 가장 궁금하다. 파인 아트를 하는 게 아니니까. 대중에게 보일 연기를 하는 거니까.
배우가 되고 난 뒤부터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왔나?
단순한 사람. 연기 생활과 사생활 모두 단순하게 살아내는 인간이 되고 싶다.
여전히 적응 안 되는 게 있다면?
관심.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의심이 많거든. 솔직히 아직도 길을 가다가 혹은 어떤 공연이 끝나고 누군가 나를 좋다고 하면서 사인해달라고 하면 속으로 생각한다. ‘와.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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