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도 연극단을 나와서 쉼이 없었다. 대학로에서 기성 무대에 데뷔한 건 2007년이었다. 그때 그 작품을 김성균 형이랑 조우진 형하고 같이 했다. 학교 다니면서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설 때였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그 이후로 쭉 무대에 서고 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찍었으니까.”
웬만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자분자분 대답하던 이규형이 유일하게 딱 한 번, 머뭇거린 물음이 있었다. 재미도 감동도 없어서 안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남길래 그냥 한 번 해본 질문. “언제부터 연기하셨어요?” 세상 쉬운 질문 같은데, 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기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때도 내내 연극반에서 연기를 했어요. 대학 때는 연기 전공이었으니까 당연히 연기를 했고, 군대도 연극단을 들어가는 바람에… 또 제대 후에는 연극이랑 뮤지컬을 계속 해왔거든요. 그래서 언제부터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뭐 대충 자아가 형성되고 난 이후부터 줄곧 쉬지 않고, 심지어 군대에서조차 연기를 해왔다는 얘기다. 굉장히 좋아하지 않고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내를 죽인 비정한 남자, 〈비밀의 숲〉에서 가장 많은 비밀을 품고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윤과장’, 그리고 장안의 화제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마약중독자 ‘헤롱이’를 보여주기 훨씬 오래전부터 이규형은 숨 쉬듯 자연스레 연기를 해왔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감빵’ 동료들과 포상 휴가를 다녀올 만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덕분에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지만 배우 이규형의 생활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 집 근처에서 운동하고, 단골 술집에서 혼술도 하고, 가끔 한강에 산책 가서 라면 하나 먹고 오는 평온한 삶. 이규형의 생활은 지금껏 그래 온 것처럼 앞으로도 쭉 이럴 것만 같다.
요즘 ‘한국 드라마 소재가 다양해졌구나’를 이규형을 통해 느낀다.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마다 꽤 셌다. 배우로서도 그런 역할이 재미있지?
아직 내가 역할을 고르는 입장이 아니다 보니 그저 주어진 역할의 오디션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 확실히, 그런 ‘센’ 역할은 매력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개성 있고 센 것만 해야지’, 그랬던 건 아니다. 근데 내가 좀 세게 생겼나? 그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 하하.
보통 ‘이런 배역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디션을 보러 가는 건가?
영화 〈나의 독재자〉의 경우엔 감독님이 직접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연락하셨다. 드라마 〈비밀의 숲〉은 오디션에 지정 대사가 있었다. 젊은 남자 배우들은 주로 극 중 조승우 선배가 연기한 ‘황시목’ 역할의 대사를 해야 했다. 오디션이 끝나고 나니 ‘윤과장’ 역할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신원호 감독님이 연극 〈날 보러와요〉와 뮤지컬 〈팬레터〉를 직접 보러 오셨다. ‘헤롱이’ 그러니까 ‘유한양’ 역할에 콕 집어 캐스팅됐다.
이규형의 어떤 모습에서 ‘헤롱이’를 느낀 걸까?
〈날 보러와요〉에서 1인 4역을 했다. 시종일관 만취 상태로 극을 휘젓고 난리치는 역할이었다. 〈팬레터〉에선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사랑에 빠진 천재 소설가 역할을 맡았다. 점점 피폐해지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데, 두 작품을 보고 어떤 공통점을 찾으신 것 같다.
‘헤롱이’의 귀엽고 재미있는 모습을 보다가 엔딩 때문에 놀랐다. 다시 마약에 손을 대고 ‘감빵’으로 들어가는 ‘헤롱이’를 보는 순간 현실로 확 끌려나오는 느낌이랄까.
그게 신원호 감독님의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헤롱이’가 함정 수사에 걸려들었지만, 가족이 제대로 재활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혼자서는 끊기 힘든 게 마약이라고 하니까 ‘헤롱이’가 이번 기회에 큰 맘 먹고 모두의 도움으로 이겨내길 바란다. 하지만 엔딩이 시청자 입장에선 키우던 고양이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을 것 같다. 하하.
나는 공연 관람을 좋아해서 이규형이라는 배우를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도깨비〉에 등장했을 때 엄청 반갑더라고. 그렇게 작은 역할부터 시작해 ‘헤롱이’까지 오게 됐다. 대부분 배우에게는 이런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지?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영화배우를 꿈꿨다. 내가 학교 다닐 때부터 보고 자란 선배님들은 대부분 연극 무대에 꾸준히 서다 영화로 넘어가 활동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이렇게 흘러온 것 같다.
그나저나 강제 해외 진출을 하고 있다. 〈비밀의 숲〉과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넷플릭스에서 서비스된다. 추천작으로 첫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터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보게 생겼다.
정말? 넷플릭스는 첫 달은 무료니까 두 작품 다 정주행하고 해지해도 되겠네? 하하. 어쩐지 요즘 내 인스타그램을 다양한 국적의 분들이 팔로잉해주신다.
인스타그램 보면 촬영장 가고, 동료와 술 마시고, 운동하러 가고. 그게 다인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아볼 텐데, 생활 반경이 달라지진 않았나?
원래 생활 반경이 넓지 않다. 집, 극장, 연습실, 촬영장 그리고 피트니스 센터 정도. 운동도 집 근처 5분 거리에 있는 곳을 다닌다. 술도 도보 5분 이내의 곳에서만 마신다. 웬만해서는 멀리 안 나가는 편이다. 단골 술집 가면 알아보고 사인해달라는 분이 있는 정도다.
〈비밀의 숲〉 멤버와는 계곡에도 놀러 가고 아직도 자주 만나는 것 같더라. ‘감빵’ 동료들과 여행도 다녀왔던데, 작품 한 번 끝내면 계속 친분을 이어가나?
사람들 성향이 맞아야 가능하겠지. 물론 작품이 한몫하긴 한다. 두 작품 다 좋은 평가를 받았으니까 더 끈끈해지는 면도 있다. 〈비밀의 숲〉은 시청자가 시즌 2를 빨리 만들어달라고 하시던데, 배우들끼리 모이면 “우리 시즌 2 얘기 좀 해볼까?” 하면서 괜히 우리만의 상상을 한다. 실제 제작 가능 여부를 떠나서 그런 얘기 자체만으로도 재미있잖아. 기분도 좋고.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회사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지. 하하. 놀면 뭐하나, 일해야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비밀의 숲〉 윤과장은 모든 범행이 드러나 지금 감옥에 가 있는 상황 아닌가?
‘감빵’에서 탈출해야지. 이미 6개월 동안 ‘감빵’에 있었는데 또 들어가 있으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럼 진짜 교도소 전문 배우가 돼서 안 된다. 하하. 윤과장은 사연이 좀 있으니까 특별 사면을 기대해보겠다.
사실 시즌 2 만들려고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윤과장이 알고 보니 쌍둥이였다는 설정도 괜찮을 것 같다.
맞다. 〈킹스맨〉도 살아 돌아왔는데 ‘이창준 검사’ ‘창크나이트’가 살아서 부활할지 어떻게 아나. 의지만 있으면 안 될 것도 없다. 하하.
그런데 술자리에서는 지금과 좀 다른 모습인가?
지금과 같은 모습인데? 왜?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상상했길래?
가끔 배두나 인스타그램 라이브에 등장하는 술자리의 이규형은 애교 많고 귀여운 거 같았는데, 지금은 꽤 점잖아서.
말이 더 많아질 때도 있고, 오히려 더 말이 없을 때도 있다. 누구랑 술 먹느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 상태에 따라 다르다. 근데 다들 그러지 않나? 가끔 취하면 노래방에 가고 싶을 때도, 춤을 추러 가고 싶을 때도 있다. 어떤 날은 다 귀찮고 소주나 계속 마시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다양할 수밖에 없는 게, 술은 하루이틀 먹고 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웃음)
혼자 사는 일상은 어떤가? 재밌게 사나?
재미없지. 별게 없으니까. 내가 단골 술집에 가서 술 먹는 이유가 있다. 어느 날 자정쯤 오늘을 돌아보니까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했다는 걸 깨달았다. 술은 당기는데 그날따라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처음으로 술집에서 혼술을 해봤다. 단골집 사장님이 “몇 분 오셨어?” 물으시길래 “저 오늘 혼자예요”라고 답했다. 그게 그날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지금 사람들의 상상으로는 이규형 소속사 사무실에 시나리오랑 극본이 엄청 쌓여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매니저에게) 우리 사무실에 시나리오 쌓여 있어? 누가 대답 좀 해봐.
아무도 대답이 없긴 한데, 그래도 기왕이면 차기작에선 나쁜 일을 안 하면 좋지 않을까? 사람 죽이거나, 마약에 손대거나 하지 않고 착하게 사는 캐릭터는 어떨까? 물론 작품 전체를 봐야겠지만.
일단 감옥은 그만 가야 할 것 같다. 하하. 사실 인물이 살인을 하느냐 혹은 더 악한 일을 저지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인물의 서사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또 그걸 내가 극 속에서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종합한 후 도전하고 싶은 인물이어야 배우로서 끌린다. 이것저것 안 따지고 끌리는 작품을 찾고 있다. 올해 안에는 결정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이 연기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보면 언제부터 세는 편인가?
아마추어 무대까지 합치면 중1 때부터다. 고등학교 때는 연극반 생활을 했다. 대학도 연기 전공이었고 군대도 연극단을 나와서 쉼이 없었다. 대학로에서 기성 무대에 데뷔한 건 2007년이었다. 그때 그 작품을 김성균 형이랑 조우진 형하고 같이 했다. 학교 다니면서 대학로 연극 무대에 설 때였는데 진짜 재미있었다. 그 이후로 쭉 무대에 서고 영화도 찍고 드라마도 찍었으니까. ‘언제’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면 답변하기가 훨씬 수월할 거다.
유료 관객으로 따지면?
고등학교 연극제도 사실 유료 관객이다. 관람료가 5천원인가 그랬으니까.
진짜 쉬지 않고 연기를 했네? 연기를 엄청 좋아하나 보다.
노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회사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지. 하하. 놀면 뭐하나, 일해야지. 좋아서 하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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