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셔츠·베이지 카디건·코스믹 프린트 셔츠·검은색 팬츠 모두 프라다, 흰색 스니커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폴킴의 데뷔기는 영화 같다. 그는 일본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다 뮤지션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뒤 자퇴를 감행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여느 영화에서처럼 부모님의 반대도 당연히 무릅썼다. 자퇴 후 폴킴은 4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주거비를 벌면서 버텼다. ‘결국에는 잘될 것’이라는 자신감 덕분이었지만 그 마음은 곧 바닥났고, 끈질기게 버틸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또래가 모두 졸업과 취직 준비를 하던 때, 폴킴은 아예 학교를 나와버렸다. 돌아갈 구멍조차 만들지 않은 거다. ‘여태 뭐하다 준비도 안 했어/ 다 떠나고 없는 아직 출발선/ 사람들은 저기 뛰어가는데/ 아직 혼자 시작도 못했어.’ 폴킴의 노래 ‘길’에는 그 시절의 그가 고스란히 있다. 그리고 이 노래는 곧 조금 늦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이 됐다. 태어난 이유를 찾고 싶어 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또렷하게 고백하는 이 청년은 자신을 빚어서만 노래를 만든다. 폴킴의 음악이 지금, 수많은 청년에게 위로와 위안의 동의어가 된 이유다.
“나는 누굴 위로하기 위해서 곡을 쓰지는 못한다. 그건 정말 막연한 작업이다. 게다가 내가 뭐라고. 솔직히 누군가를 ‘위로해준다’는 건 조금 건방진 태도라고 생각한다.”
흰색 데님 재킷·셔츠·데님 팬츠 모두 캘빈 클라인 진, 갈색 첼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데뷔 스토리가 극적이다. 그 모든 게 가수 이소라가 인터뷰에서 “나는 노래하기 위해 태어난 씨앗”이라 한 말을 읽은 순간 시작됐다는 게 사실인가?
군대 제대 후 일본의 대학에 복학했더니 친구들은 이미 졸업반이 되어 있었다.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을 때부터 앞으로 뭘 하며 살지 고민이 많았거든. 와인 소믈리에가 될까, 예술 경매사를 할까. 혼자 난리였다. 그러다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인 이소라의 인터뷰에서 그 문장을 읽은 거다. 불현듯 깨달았다. ‘맞아, 나도 노래하는 걸 엄청 좋아하지!’ 그때 내 머릿속 직업 옵션에 가수를 처음으로 넣었다. 곰곰이 생각했는데, 역시 하고 싶더라. 나도 그녀처럼 태어난 이유를 깨닫고 싶어졌다.
이소라의 음악이 지닌, 어떤 심상을 좋아하나?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추운 순간에 그에게 빚을 진 것과 같다는 말이 있더라. 어떤 팬이 내 팬 카페에 올려준 글귀다. 나는 그걸 읽으며 이소라를 생각했다. 나는 그냥, 가수 이소라에게 진 빚이 있다. 가장 힘들 때 나를 이해해준 것이 이소라의 음악이었다. 그 음악들이 없었으면 못 버텼을 것 같다.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으로서, 앨범을 내고 난 직후에는 약간 허탈감을 느꼈다고 말한 적 있다. 지난 9월에 낸 앨범 〈길〉 이후로는 어땠나?
주류 뮤지션들은 앨범 발표하면서 일련의 활동을 하지 않나. 앨범 발매 직후 뭔가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는 느낌이지. 그런데 언더그라운드에서는 그렇지 않으니까.
막연히 그런 ‘로망’이 있었다는 건가?
뭘 잘 몰랐던 거지. 이제는 아니다. 지금이 딱 좋다. 공연하고 페스티벌에도 참여하고 피처링도 하며 지내는 것. 심심하지도, 허망하지도 않다. 시간적인 사치를 부릴 수 있어 좋다. 여유로워야 뭘 생각할 수 있는 편이기도 하고.
초년생의 초조함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힘들다. 하하. 이제 곧 새 정규 앨범을 발표해야 해서… 잠을 잘 못 잔다. 원래는 누우면 10초 만에 잠드는데. 살도 많이 빠졌다. 손톱을 자꾸 물어뜯어서 아주 짧게 잘라버렸다. 좀 불안한 상태인 거다.
이유는 찾았나?
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는 없을 거라는, 그런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는 방향성을 아예 잃은 기분도 든다.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다.
이번 정규 앨범의 화두였겠네. ‘어떻게’라는 것이.
예전의 나는 ‘이거 해요’ ‘이 음악이 좋아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앨범 준비할 대체로 즐겁고 신났다. 예전에는 내가 불러놓고도 좋다 싶을 때가 있었다. 요즘은 늘 ‘이 정도로 되나?’ ‘좋은 건가?’ ‘뭐지?’ 이런 식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도 조금 더 먹었건만, 판단력은 되려 없어진 걸까?
진짜 좋은 게 무엇인지 더 깊이,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 아닐까?
데뷔할 때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만 보여왔다고 한다면, 이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발전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전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괴롭다.
음원 순위 같은 것도 신경 쓰이나?
잘되는 친구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나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그래서 얼마 전에는 음악 듣는 앱을 지워버렸다. 자꾸 순위를 보게 되더라. 그때 사실 인스타그램도 지웠는데… 다음 날 바로 다시 깔았다. 하하.
“나는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뒷북 치는 스타일이지. 그런 나 자신을 잘 알아서, 나는 편하고 익숙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가볍고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람이었나? 자기주장 분명하고 솔직한 친구로 통했을 것 같은데.
나는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늘 나를 이상하다고 말했다. 눈에 띄게 이상한 애가 아니라, 은근히 유별난 애. 중학교 때부터 이 문화권에서 저 문화권으로 옮겨 다니며 살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에 있든, 뭔가 다른 곳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던 거지. 그리고 틀에 박힌 것은 답답해하는 편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한 챕터 읽고 덮어버렸다는 일화가 생각나네.
사실. 던져버렸거든. ‘뭘 얼마나 안다고’ 이러면서. 기분이 나빴다.
다 아는 내가 널 위로해줄게, 그런 식이어서?
예쁜 말로 아름답게 위로하려는 게 싫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남의 일에 관해 말하는 듯한 느낌도. 원래 자서전이나 자기계발서를 별로 안 좋아한다. 와 닿지 않더라고.
무엇에 위로를 얻나?
오히려 소설들. 이야기 속 캐릭터가 나와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나, 너무나 필요했던 어떤 문장을 소설 속에서 발견할 때 위로받는다. 드라마를 보거나 노래를 듣다가도 문득 그런 순간이 있고.
폴킴의 음악으로 위로받는다는 이들도 많다.
내 음악이 누군가에게 위로였다면, 그건 내가 너무 힘들 때 그 힘든 마음을 붙잡고 쓴 곡이 그 사람의 상황에 잘 맞았기 때문일 거다. 나는 누굴 위로하기 위해서 곡을 쓰지는 못하거든. 그건 정말 막연한 작업이다. 게다가 내가 뭐라고. 솔직히, 누군가를 ‘위로해준다’는 건 조금 건방진 태도라고 생각한다.
‘위로하는 곡을 쓰기에는 내가 너무 행복하게 살아왔다’고도 말했는데.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곡을 쓸 만큼 아픔이나 슬픔을 깊게 겪어본 적이 아직 없다. 부모님을 잃은 것도 아니고. 그저 내 기준에서 힘들었던 마음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다. 누군가와 이별한 순간들, 외롭다고 느껴졌던 순간들.
그런 성향이 폴킴의 노래에 녹아 있다. 그 단정한 화법과 감수성을 좋아한다. 그 와중에 헤어짐이나 외로움을 이야기한 곡이 유독 많았지.
지긋지긋한데. 하하.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 같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내 사주에 외로움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충격이었다. 대체 내 사주에 왜 외로움이 있을까?
그래서 실제로는 어떤데? 외로움을 곧잘 느끼나?
그런 편이긴 하다. 어릴 때부터 타지에서 자라서 그런 것 같다.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보내졌’거든. 그때부터 가족 아닌 사람들과 살아야 했다. 나름 온실 속 화초처럼(웃음)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다가 갑자기 뚝 떼어진 거니까.
하고 싶은 음악에 관해 꽤 담백한 말을 했다. ‘좋은 기운을 전해주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여전한가?
나는 앞서가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뒷북 치는 스타일이지. 그런 나 자신을 잘 알아서, 나는 편하고 익숙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 가볍고 편안한 음악을 하고 싶다.
지금의 경향에 딱 맞춘, 잘 팔리는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
요즘 들어서는 내가 얼마만큼 자유로워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가 있다. 편하지 않고 익숙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도 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쩌면 노력해서 ‘트렌디’한 음악에 도전해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음악은 아무리 하고 싶어도 안 될 것 같다. 나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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