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민 스튜디오 fnt 대표
칵테일 ‘핫 버터드 럼’ + 폴 데스먼드의 〈Bossa Antigua〉
추운 밤에 마시는 따뜻한 술은 항상 좋다. 하지만 뱅쇼는 만드는 시간과 정성이 너무 많이 필요하다. 사케를 적절한 온도에 맞춰 데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트캡을 만들며 일일이 그런 것들을 따지다가는 오던 잠도 달아나버릴 것이다. 반면 칵테일 ‘핫 버터드 럼’은 간단해서 좋다. 그 이름처럼 설탕과 버터를 한 숟갈 푹 퍼 담고 시나몬 스틱을 꽂은 후 럼과 뜨거운 물만 부으면 완성이다. 럼은 무엇이든 좋지만, 과테말라에서 숙성했다는 론 자카파 센테나리오 시스테마 솔레라 23이 제일이다. 과테말라와 안티구아라는 두 단어의 지역적 연관성 때문일까? 술을 조금씩 홀짝이다 보면 폴 데스먼드가 녹음한 보사노바 앨범 〈Bossa Antigua〉가 떠오른다. 그가 연주한 색소폰의 음색은 난로처럼 따뜻하기도, 잘 손질된 이부자리처럼 포근하기도 하다. 추운 곳에서 더운 지방의 술을 마시며 보사노바를 듣는다. 생각만으로 몸이 녹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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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홍주 엔젤스쉐어 매니저
카바이 라반 2012 + 샤토 라귀올의 소믈리에 나이프
하루를 정리하는 나이트캡으로 사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깔끔한 와인과 나무 향이 짙은 소믈리에 나이프, 탄산수 그리고 좋은 음악 한 곡 정도면 그만이다. 대부분의 스틸 와인은 오픈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좋은 맛과 향을 기대하기 어려워 나이트캡으로 적절하지 못하다. 그리하여 선택한 나이트캡은 슬로베니아의 젤레니 소비뇽 청포도로 만든 내추럴 와인 카바이 라반. 빈티지는 2012년으로. 뫼르소 블라니에서 날 법한 고소한 향이 지배적이지만 머금는 순간 느껴지는 깔끔함 덕분에 잠들기 바로 직전에 제격이다. 그뿐인가. 내추럴 와인은 오픈 후 시간이 지날수록 변화가 다양해 며칠 밤 동안 매번 새로움을 느끼기에도 좋다.
한편 와인을 오픈할 땐 샤토 라귀올의 소믈리에 나이프를 사용한다. 오픈 직후 훅 끼치는 강렬한 와인 향, 손에 묻은 오크 향, 나이프의 나무 향이 섞여 잠들기 직전의 평온한 아로마를 만들어 낸다. 마지막으로 이스파르 사랍스키의 노래 ‘Now I’m Here’까지 더한다면 오롯이 밤의 풍경이 완성될 것이다. -
한창헌 tvN 디지털 프로젝트 담당
아이언 볼 진 + 비디오테이프뮤직의 〈A Night In Bangkok〉
날이 춥다. 그럴 때마다 남국을 꿈꾼다. 가본 곳은 또 많지 않아 가장 먼저 머릿속에 등장하는 건 언제나 방콕. 비가 오는 어느 밤이었다. 살갗에 달라붙는 축축한 공기, 무지막지하게 들이닥친 스콜을 뚫고 잡아탄 택시가 당도한 곳은 통로 끝자락의 어느 바였다. 몇 해 전 방콕에서 친해진 일본인 디제이의 부름을 받아 간 그곳은, 인테리어가 근사한 소규모 진 양조장 겸 바였다. 마침 섹시한 솔 음악 바이닐이 돌면서 먼지와 부딪혀 기분 좋은 치찰음을 냈다. 좋다. 마실 수밖에.
진 토닉 한 잔을 주문했다. 파인애플과 고수 향이 듬뿍 담긴 그야말로 남국의 진이었다. 거나하게 몇 잔을 들이켜고는 보틀 한 병을 기념품으로 가져갈 겸 챙겼다. 외롭고 추운 서울의 밤. 얼음 위에 진 1.5온스, 토닉워터를 붓는다. 뜨겁고 습한 방콕을 동경하기엔 더할 나위 없다. 아, 여기에 기분을 몽롱하게 만드는 이 음반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타이틀마저 〈A Night In Bangkok〉. 예약해야겠다. 밤에 떨어지는 비행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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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연 쇼콜라디제이 대표
아녹 12 + 쇼콜라디제이의 위스키 봉봉과 리큐르 파베
검은 언덕을 의미하는 아녹은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녹듀 증류소에서 생산한 싱글 몰트위스키다. 잔에 따라 한 잔 들이켜면 등 뒤에서 부드럽게 안아주는 연인같이 느껴진달까. 버번 캐스크 숙성, 꿀과 레몬의 시트러스, 과일과 꽃, 흙먼지의 드라이한 여운이 매력적이다.
위스키를 잔에 쪼르르 따른 뒤엔 그 옆으로 쇼콜라디제이(@chocolatdj)의 위스키 봉봉과 리큐르 파베를 가지런히 놓는다. 버번, 럼, 라임이 듬뿍 들어간 초콜릿을 위스키를 마시는 사이사이 쉼표로 한 조각씩 음미한다. 위스키 봉봉은 입안에서 탁 터지며 속에 품고 있던 위스키를 입안으로 퍼뜨리고, 리큐르 파베는 혀 위에서 스르르 녹는다. 어느새 무지근한 잠도 스르르 찾아온다. -
이영지 어반 텍스트 대표
르 탕 데 세리즈 포 뒤 루아 2014 + 조성진의 〈드뷔시〉
매일 밤 한 잔씩 마시면 좋다고 알려진 프렌치 패러독스의 상징, 레드 와인은 저혈압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혈액순환을 돕는 일종의 영양제다. 잠들기 전에는 이산화황이 첨가되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산미를 자랑하는 내추럴 와인을 고집하는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숙취가 없다. 너무 진하고 강렬한 와인보다는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중간선상에 있는, 체리 주스 같은 르 탕 데 세리즈 포 뒤 루아 2014를 나이트캡으로 애용한다.
낮에는 주로 재즈를 듣지만 잠들기 직전엔 몸을 들뜨게 하는 멜로디보다 몸과 마음을 툭 떨어뜨려줄 수 있는 앨범으로 전환한다. 한 달 전부터 11월 17일 발매된 조성진의 두 번째 정규 앨범 〈드뷔시〉에 심취해 있다. 드뷔시가 딸 슈슈를 위해 작곡한 〈어린이 차지〉 모음곡 중 성숙하고 달빛이 미끄러지는 듯한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를 무한 반복해서 들을 때도 있다.
비늄 글라스 가격미정 리델 코리아 제품.
박세훈 코러스펀턴스 대표
도멘 레옹 바랄 포제르 2009 + 케니 버렐의 〈Midnight Blue〉
도멘 레옹 바랄 포제르 2009. 포제르의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이다. 첫 모금을 입안으로 들인 뒤의 첫인상은 ‘엄격한 자연주의와는 다른 노선의 와인’이라는 점. 텍스처가 매끄럽다. 입안에서 부드럽고 둥글게 엉기다 서서히 은근한 흙 냄새, 스파이시한 풍미와 같은 고유의 향들이 풀린다. 과즙을 약한 불로 끊인 듯한 기운도 스며 있고. 도멘 레옹 바랄 포제르 2009는 채도가 낮은 음악과 함께 즐겼을 때 잠재력이 더 피어오른다. 1960년대 케니 버렐의 대표작 〈Midnight Blue〉가 적당할 테다. 겨울밤, 방 안으로 레이 바레토의 콩가 연주가 아득하게 울리기 시작하면 얼어붙었던 몸과 마음이 서서히 녹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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