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성적에 대해 크게 흔들림이 없다. 너무나 많이 망해봤고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영화 흥행 축하해. 이제 시작이야”라고 하지만 나는 똑같다. 물론 엄청 좋고 행복하지. 그렇지만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누르고 있는 중이다.”
“참담하고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빠져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놨다. 내 삶이 흥행 성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계속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 윤계상이고, 친구인 윤계상이고 ‘감사’와 ‘해요’를 키우는 개 아빠 윤계상이기도 하니까.”
잊히지 않는 영화 속 장면이 있다. 이를테면 〈황해〉에서 하정우가 뜨거운 국밥 한 숟가락에 김을 얹어 먹는 장면이라든가,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이 “느그 소장 남촌동 살제?” 하는 장면들. 최근 한국 영화계는 명장면 하나를 추가하게 됐다. 〈범죄도시〉에서 ‘독사파’ 두목이 “니 내 누군지 아니?” 묻자 윤계상이 “돈 받으러 왔는데 내가 그거까지 알아야 되니?” 하는 장면. 아니면 “내가 하얼빈 장첸이야!” 하고 사자후 지르는 장면. 아니, 윤계상이 나오는 거의 모든 신이 ‘명장면’으로 회자되고 패러디됐다. 2017년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이자 흥행작 〈범죄도시〉를 통해 배우 윤계상의 주가도 치솟았다. 그동안 우리는 윤계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1999년부터는 god의 윤계상으로, 2004년 영화 〈발레교습소〉에서부터는 연기자 윤계상으로 꾸준히 만나왔으니까. 하지만 이번처럼 낯설고 신선한 윤계상은 처음이라, 다들 신기하고 놀라운 마음으로 그를 다시 보게 됐다. 지난 13년간 연기를 해오며 많은 부침을 겪은 그는 이제 평정심 찾는 법을 안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거나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하는 법이 없다. 그저 오늘에,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 13년을 그래 왔듯, 윤계상의 시간은 지금처럼 똑같이 흘러갈 거다.
오늘 파티하는 느낌으로 화보를 찍어봤다. 친구들과도 이렇게 노는 편인가?
절대 아니다.
연말 되면 왠지 좋은 데서 좋은 술 먹고, 있어 보이게 놀고 싶지 않나?
나는 그런 거 정해놓지 않는다. 그냥 그때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연말엔 뭐하고 놀아야지, 어떻게 놀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다. 연말이 뭐 별건가. 놀 거리 있으면 놀면 되고, 놀 거리가 없으면 그냥 안 놀면 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부분 남들 의식해서 되도록 잘 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모든 걸 내 기준으로 생각하면 해결된다는 거다. 내가 기분 좋으면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아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줬으면 하는 바람과 기대 때문에 불행하게 느끼는 거다.
스마트폰은 많이 들여다보나?
많이 하지. 기사 검색도 하고, 인스타그램도 하고 친구들과도 연락하고.
요즘엔 암만 친한 친구들 끼리 모여도 결국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요즘 사람에겐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다들 모여서 서로 얼굴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을 봐도 된다고, 그렇게 잠재적으로 결정난 거다. 굳이 ‘세상과 인간과 소통해야지’ 하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 없다. 아까 말했듯이, 모든 건 내 기준이다. 내가 다 결정하는 거라니까.
얼마 전에 영화를 봤는데, 계속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거다. 그래서 다음 날 이것저것 바꿔보려고 노력하는 내용이었는데, 만약 윤계상이라면 아무것도 바꾸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 잘 놀 것 같다.
모든 것은 우연의 연속이다. 이제 조금 세상 살아가는 맛을 알게 된 거 같다. 또 그걸 즐길 줄 아는 여유도 생겼고. 부단히 애를 써도 되지 않는 게 분명 있고, 반대로 우연으로 대박 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건 인정하고 싶지 않다. 열심히 하면 원하는 결과가 나올 거라 믿고 싶으니까.
한 가지, 내가 좋은 기운을 표출하면 그게 돌고 돌아 행운처럼 찾아온다는 믿음은 있다.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 알지? 거기서 나오지 않나. R=VD라고. 현상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이뤄진다는 뜻인데 나는 그거 믿는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된다.
〈범죄도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배우로서 ‘장첸’이라는 잊히지 않을 명 캐릭터를 얻었는데, 어떤가?
아니다. 사실 배우 한 명이 특출 나서 잘된 영화가 아니다. 연기 앙상블이 유난히 좋았고, 그래서 나에겐 색다르게 좋은 영화로 남을 거다. 아들 한 명이 고시에 합격해서 집안이 잘된 느낌과는 다르다. 집안 전체의 경사라고 해야 할까? 하하. 작품마다 배우들과 열심히 했는데, 흥행이 되고 안 되고는 정말 운이다. 이번 영화는 타이밍도 잘 맞았고, 배우들의 호흡도 좋았고, 모든 여건이 잘 맞아떨어져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처음에 ‘장첸’을 보고 ‘뭐 저렇게까지 악랄할까?’ 싶었다. 참 밑도 끝도 없는 악당인데, 그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구하지 않고 쭉 밀고 나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말 하면 잘난 척 같아서 조심스러운데 연기를 처음 할 때는 ‘전사(前事)’가 중요하다. 성장 배경이나 환경 등의 이야기가 캐릭터를 좌지우지하니까. 그런데 연기를 계속 하다 보면 개성 강한, 힘을 줘야 하는 어떤 연기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서 김치를 처음 담글 땐 마늘 몇 스푼, 고춧가루 몇 스푼 같은 공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2~3년 정도 담가보면 이제는 ‘그래서, 이 김치의 포인트가 뭐야?’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장첸도 마찬가지였다. ‘장첸이 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인가’가 중요했고 그걸 돋보이게 하려고 많이 애썼다.
정말 악랄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얼빈 장첸’을 참 좋아한다. 우리가 알던 윤계상과 너무 달라서 신선하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우리는 여태까지 윤계상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나는 성장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한다.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변해가는 과정이 꼭 나 같아서, 지금 이 나이에 겪는 일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이번 영화는 그런 걸 다 무시하고 정말 영화배우로서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었다. 상업 영화에서 윤계상이라는 배우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배우에게 흥행작을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시험을 봤는데 100점이 나온 거다. 이게 맞나, 틀리나 고심하며 답을 적었는데 만점이 나온 기분. 그런데 채점은 시험관의 주관에 달린 느낌이다. 이번엔 성적이 잘 나왔지만, 이 답이 맞는다고 다음 시험지도 100점을 받는 건 불가능하다. 점수 매기는 사람이 달라지니까. 그래서 이제는 성적에 대해 크게 흔들림이 없다. 너무나 많이 망해봤고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영화 흥행 축하해. 이제 시작이야”라고 하지만 나는 똑같다. 물론 엄청 좋고 행복하지. 그렇지만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누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청룡영화제에서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과 동료 배우 진선규가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더라. 두 사람 모두 고생 끝에 그 자리에 올랐음을 알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나는 주인공을 했다. 그럼 안 되는데 god의 후광 덕에 주인공을 맡아왔다. 작은 배역을 연기하지만 실력이 출중한 배우들을 매번 경험하면서 정말 부끄럽더라고. 나도 그들처럼 연기를 잘하고 싶은데 짧은 시간 안에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을 깎고 수련한 분들이 그 노고 끝에 찬사를 받는다는 건 ‘도리’가 인정받는 거 같아 참 반갑다. 노력하는 자에게 그 결과가 달다는 것을, 아직 사회가 정의롭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분이랄까? 나도 그래서 열심히 하게 된다.
요즘엔 노력하면 뭔가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만큼이나, ‘권선징악’의 의미도 좀 흐릿해졌다. 그런데 〈범죄도시〉를 보면서 나쁜 놈이 응징당한다는 것이 너무 뚜렷해서 통쾌하더라.
요즘 운동을 매일매일 한다. 보통 영화 한 편 틀어놓고 러닝 머신을 뛰는데 〈명량〉이 나오더라. 그런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순신을 따르는 백성이 그저 ‘장군님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을 모아 보여주는데 아주 뭉클했다. 동석이 형이 연기한 ‘마석도’ 형사에게도 우리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형사가 저렇게 나쁜 놈들을 소탕하고 사회를 바로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재미와 감동을 만들어내는 거겠지.
마석도라면 무조건 다 때려잡을 거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더 안심하고 볼 수 있었다.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 장면이 마지막 화장실 액션 신이었다. 장첸은 도끼로 사람을 해치는 위협적인 인물인데, 감독님은 마석도가 장첸을 그냥 막 때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 하하. 나도 그게 흐름상 맞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는 모든 이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장면이 됐으니까,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
이렇게 인상적으로 활약한 덕에, 악역 시나리오도 꽤 들어올 거 같은데 어떤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아직까지 보고 있는 작품 중에는 악역이 없었다. 예전에는 선택의 범위가 좁아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굉장히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가 들어온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도전이라고 말하는데 절대 아니다. 정말 수도 없이 연습하고 리허설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연기했다.”
캐주얼하면서도 우아한 멋이 깃든 시계 파일럿 타입20 엑스트라 스페셜 제니스 제품. 흰색 턱시도 셔츠·검은색 바지·와인색 벨벳 숄칼라 재킷 모두 몬테비아, 검은색 슈즈 금강제화 리갈 제품.
영화 한 편 개봉하고 나니 벌써 한 해가 다 지나간다. 연말이니까, 이제 좀 놀아야지?
아니다. 바로 다음 작품 준비해야지. 나는 생각보다 연기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고 쉬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여행을 떠난다면 따뜻한 나라로 갈까 싶다.
스쿠버 다이빙을 좋아하니까, 바다로 가겠네?
처음에 체험 다이빙했다가 고막 밀려들어가서 한 달 동안 치료하면서 고생을 했다. 그래서 물에 대한 공포를 꾹 참고 한번 해봤는데 굉장히 안전하더라. 물속이라고 해도 심해까지 내려가진 않고 당장 뛰어나와도 살 수 있는 정도까지만 간다. 장비도 참 좋아 죽고 싶어도 못 죽는 정도다. 하하. 심지어 쉽게 벗겨지지도 않는다. 팀워크가 중요한 액티비티다.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초보자에 맞춰 움직이는 단체 레저다.
바닷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나?
이제 내가 경력이 있는 어드밴스 단계다. ‘사이드 마운트’라고 해서 산소통 두 개 끼고 물속에 들어가는데 어드밴스는 바다를 보지 못하고 같이 들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봐야 한다. 그럼 복잡한 기분을 느낀다. 초보자는 바다를 보고 상급이 될수록 사람들을 본다. 엄마의 마음으로 누군가 잘못되면 구해줄 수 있어야 하고, 안심되게 손도 잡아야 하고. 그게 재미있어서 계속 하게 된다.
오, 역시 팀워크를 가장 중시하네.
세상에서 가장 큰 희열은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기운 같다.
쉬는 걸 힘들어한다면, 연기가 녹슬지 않게 계속 소처럼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
그럼. 무슨 일이든지 긴장하면 자기가 가진 실력의 반에 반도 발휘를 못하는 것 같다. 긴장감을 계속 떨어뜨리려고 하다 보면 연기가 일상이 되고, 밥 먹듯이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연기를 하면 원하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지, 그 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매일 꾸준히 그린 작품 수천 중의 하나가 ‘명작’이 되듯, 연기도 똑같다. 매번, 매 순간을 잘할 수 없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나와 맞는 결이 딱 나오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집에서 TV 채널 돌리다가 내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각 잡고 앉아서 보는 편인가?
그냥 관객 입장에서 이야기에만 집중해 보는 편이다. 이것도 건방지게 들릴 수 있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잘해낼 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나이대, 그 경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물론 부족한 건 너무 많이 보이지. 그렇지만 그 부족함을 분석하면서 만회할 수 있을 거 같진 않다.
나는 〈비스티 보이즈〉를 참 좋아해서 여러 번 봤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윤계상은 ‘청춘의 얼굴’처럼 느껴진다. 올해 마흔이 된 윤계상은 앞으로도 ‘청춘의 얼굴’을 연기할 수 있을까?
사실 나이가 마흔이 돼도 방황하는 건 똑같다. 다만 나는 20대 중·후반에 이미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내 지표를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선배들의 경험담에 대해서도, ‘이 이야기가 그들의 경험이지 내 경험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으로 흘려들은 기억도 있다.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됐다. 20대의 방황하는 청춘은 그 진폭이 커서 무척 위험하다. 지금은 그렇진 않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분명히 질 줄 알고. 다만, 마흔 살이 됐다고 해서 청춘을 떠나보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나이는 숫자라니까.
모든 배우와 감독이 노력을 하고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든다. 그것이 관객과 시청자의 응답을 받지 못할 때도 많고.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결과를 정해놓는 순간, 어떤 것도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내 노력의 대가는 분명 이것이어야 해’라고 짐작하고 기대하는 순간, 상처를 받게 된다. 지금은 그 결과에 대해 내 선택이 아니란 것을 확실히 알았고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가만 보면 시행착오를 겪는 훌륭한 배우들도 많다. ‘내가 노력해서 이겨낸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냥 구부러진다. 오히려 절대 이길 수 없다. 수고나 노력이라기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수 있었다. 사실 참담하고 힘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빠져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놨다. 내 삶이 흥행 성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걸 계속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 윤계상이고, 친구인 윤계상이고 ‘감사’와 ‘해요’를 키우는 개 아빠 윤계상이기도 하니까.
사실 그게 쉽지는 않다. 뭐든지 잘되면 내가 잘나서 그런 것 같고, 잘 안 되면 남이 잘못해서 그런 거 같으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균형이 잡힌 채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늘 흔들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휘몰아치는 태풍 속에 있기 때문에 살아가려면 가끔 물에 빠지고 그래야 한다.
실버 다이얼과 오픈 콘셉트 카운터가 말끔하게 어우러진 시계 엘 프리메로 크로노마스터 실버 제니스 제품. 회색 체크 수트 바톤 권오수, 흰색 셔츠 발렌시아가, 흰색 포켓 스퀘어·검은색 타이·타이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결과를 정해놓는 순간, 어떤 것도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내 노력의 대가는 분명 이것이어야 해’라고 짐작하고 기대하는 순간, 상처를 받게 된다.”
그동안 저예산 혹은 독립 영화 구분 없이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왔다. 사실 〈범죄도시〉가 잘됐다고 태도가 바뀌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앞으로도 크고 작음의 구분 없이 작품을 택할 건가?
사실 내가 특별히 어떤 의식이 있어서 그 작품들을 선택한 건 아니다. 그때 그 역할이 나를 움직였으니까 출연한 거지.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라고 해서 무작정 선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명확한 자기만의 지표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저예산 영화여도 돈이 오가는 작품 아닌가. 지금은 그 역할을 맡았을 때 내가 표현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말하는 편이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배우가 아직까지 아닙니다. 다른 배우를 만나보시는 게 어떨까요?” 나는 전문 배우니까, 이날 이때까지 도전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사실 <범죄도시> 장첸이 자신 없었다면 하지 않았겠지. 어떤 사람들은 이걸 도전이라고 말하는데 절대 아니다. 정말 수도 없이 연습하고 리허설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연기했다. 지금은 오히려 기회가 더 많아진 느낌이 든다. 지금 내 계산과 대중의 시선이 달라서 실패할 순 있지만, 결국은 또 그뿐인 것 같다.
‘도전’이란 말이 나온 배경이 강윤성 감독 자체가 장첸 역할에 악역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는 말 때문인 것 같다. 처음부터 잘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나?
나에게 어떤 얼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장첸이 이런 모습으로 나오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지만 내가 연기하면서 쓸 수 있는 몇 가지 정보를 감독님에게 건네드렸다. 그리고 부족한 점들을 채우기 위해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과 고민을 나눴다. 그렇게 그 신을 연습하면서 최선을 만들어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도전’이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블라인드 시사를 해서 편집 방향을 정하기도 하지 않나? 왠지 〈범죄도시〉는 처음 시나리오대로 한 방에 쭉 갔을 것 같다.
편집도 많이 하고 바뀐 부분도 있다. 블라인드 시사회를 4회 정도 했는데 장첸의 극악무도한 행위가 사실 더 있었다. 굉장히 무서운 장면들이었는데, 이제 관객은 볼 수 없겠지.
영화가 흥행한 김에 디렉터스 컷에 넣는다면?
디렉터스 컷은 우리가 거부했다. 그 당시 최선을 다한 결과 그 자체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예능 〈시리얼〉에도 출연하는 거 같던데?
특별 출연이다. 원래 여행을 같이 다니는 친구들하고 ‘미드나잇 드링크’라는 술집을 차렸다. 우리끼리 술 먹으려고 시작한 일인데 사업에 재능 있는 친구가 있어서 발전을 한 거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시리얼은 좋아하고?
싫어하진 않는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눅눅파인가 바삭파인가?
바삭파다. 나는 라면도 꼬들꼬들한 게 좋다. 눅눅한 걸 싫어해서 죽도 안 먹는다.
〈범죄도시〉가 시리즈로 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기대해도 되나?
나는 이미 동석이 형에게 잡혔기 때문에 시리즈와는 무관하다.
충분히 탈옥할 수 있지 않나? 은근슬쩍 출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동석이 형의 캐릭터로 시리즈가 나온다는 건 괜찮은 생각 같다. ‘마석도’라는 한국형 히어로가 등장한다는 건 재밌을 것 같다. 형이 다음에 다른 나쁜 놈을 잡아야지. 나는 이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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