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고료리켄’ ‘이치에’ 오너 셰프
이치에가 여전히 건재한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고료리켄을 열었나?
한국의 일본 요리업계는 지난 4~5년간 크게 발전했다. 일본에 가지 않고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좋아졌는데, 다양성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본 요리, 이자카야, 스시, 라멘 외의 일본 요리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 외의 일식이라면 범위가 넓지 않나? 고료리켄에선 어떤 범주의 일본 요리를 하나?
조금 더 클래식한 일본 요리가 주다. 다양한 일본 술을 중심에 두고 전개한다. 1백여 가지 일본 술을 준비했는데, 일본 지역 양조장에서 한정으로 만드는 사케, 소주 등이다. 공장에서 만들지 않는, 고유의 맛이 살아 있는 술로 구성했다. 손님이 고른 술에 어울리는 작은 단품 요리를 내는 것이 고료리켄의 콘셉트다.
전에 없던 장르의 일본 식당을 열고, 성공하며 업계에 영향을 미쳤다. 당신의 무엇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일찍 시작했지만, 내가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일본 식당 몇 곳에서 일하고 일본을 오가며 일본 요리를 경험했는데, 현지에서 맛본 요리들에 크게 감동했다. 일본 요리의 특성을 잘 살리는 식당이 한국에 존재한다면 일하고 싶었다. 그런데 없더라. 그래서 이노시시와 이타치를 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선보이기 위해 직접 연 것이다.
요리사 김건에게 내재된 어떤 철학이 바탕이 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처음부터 일본 요리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 화려한 기술에는 관심이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이런 요리를 즐겼는지 궁금했다. 그걸 공부한 다음 내 요리로 알리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궁금한 것투성이다. 일본에는 1년에 열댓 번씩 들락거린다. 식재료 보고 식기도 사오고, 현지 식당에서 다양한 요리를 맛본다. 음식은 경험이다. 나는 많이 경험하고, 알고, 아는 것을 바탕으로 요리하는 게 우선이었다.요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일본 요리의 어떤 면이 당신과 잘 맞나?
내가 좋아하는 식재료가 일본 요리의 주재료다. 해산물과 채소. 일본은 이 2가지를 요리에 활용하는 데 특화된 나라다. 내가 이상적인 요리라고 여기는 방식도 일본 요리 방식과 잘 맞는다.
이를테면 어떤 방식?
좋은 생선을 잘 숙성시킨 것이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다. 신선한 생선은 소금만 살짝 뿌려 구워 먹는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런 원초적인 요리가 맛있다. 그래서 좋은 기술보다, 조금 더 원초적인 방식을 고민한다. 계절에 맞는 채소나 해산물을 쓰되, 요리사가 손을 덜 대고, 본연의 맛을 살리면서 맛있게 완성하려고 하는데 참 어렵다. 지금껏 해왔지만 여전히 어렵다.
당신이 연 식당과 요리는 꾸준한 지지를 받아왔다. 새 식당을 시작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나?
‘내가 느낄 즐거움이 있는가.’ 내가 하고 싶은 요리를 하려고 식당을 연다. 손님을 위한 게 아니다.
고료리켄 이후에 또 하나의 식당을 연다면? 김건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까?
료칸. 그러려면 지방으로 가야겠지. 해산물을 써야 하니까 남해나 강원도여야 할 거다. 전통적인 일본 요리와 다양한 일본 술을 즐기며 휴식을 취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김봉수│‘2018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경연대회’ 동북아 결승 진출자(前 ‘한국술집 21세기 서울’ 헤드 셰프)
이 번 ‘2018 산펠레그리노 영 셰프 경연대회’의 출전 요리로 ‘소 염통 쌈’을 준비했다.
세계의 숨은 ‘영 셰프’를 찾아 그의 역량을 지지하겠다는 것이 이 대회의 취지다. 나는 보통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그래서 줄곧 버려지던 식재료로 좋은 요리를 완성하는 것 역시 요리사의 역량을 증명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평소 ‘푸드 사이클’과 ‘잉여 식품’에 관심이 많았다. 식재료 중에는 맛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부위가 있다. 소의 염통도 그중 하나다. 소 염통은 닭 염통과 비슷한 맛이다. 피가 도는 장기인 심장 부위이기에, 육향이 강한 편이다.
그런 부위를 쌈으로 만들었다.
쌈은 우리의 고유한 식문화 아닌가. 경연을 벌이는 대회이지만, 나는 ‘쌈’이라는 문화를 조금이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맛있게 요리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본이고. ‘소 염통 쌈’은 한국의 장이 베이스다. 김치도 쓰고, 장아찌도 들어간다.
정식당, 21세기 서울 등을 거치며 한국 음식에 기반을 둔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자신의 종목으로 한국 요리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정식당에서 요리사로 일하다 다양한 요리 경험을 위해 호주로 떠났다. 그곳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만난 외국인 요리사에게 한국 요리를 해주게 됐는데, 김치를 먹고 싶어 해 김치를 만들었더니, 한국의 장도 맛보고 싶다더라. 나는 그때까지 장을 만들 줄 몰랐다. 무척 자책했고 그것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국 음식을 깊고, 진지하게 해보겠다고. 21세기 서울에서 선보인 한국 술을 곁들인 정찬 메뉴와 시스템은 이미 호주에 있는 동안 구체화하고 준비한 것이었다.당신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한국 요리란 무엇인가?
한국 음식에 기반을 둔 현대적인 요리. 조금 더 깊고 길게 보자면, 음식의 사이클을 염두에 둔 요리를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
어쩌다 ‘음식의 사이클을 생각하는 요리’를 요리사로서의 대주제로 삼게 됐나?
요리사로서 나는 후대를 생각한다. 다음 세대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나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식재료의 사이클을 고려한 요리를 하는 건 나에게 의미와 재미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길이기에 조금씩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근래에 동갑내기인 1988년생 요리사 친구들을 모아 ‘건강한 한 끼’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농협에서 나오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버려진 식재료로 요리한 행사였다.
가까운 미래에 꼭 해내고 싶은 요리 미션이 있다면?
2018년 버닝 맨(Burning Man)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
미국 네바다주 블랙록 사막에 일주일간 건설되었다가 모조리 불태워 사라지는 가상 도시 말인가?
마침 한국의 버닝 맨 대표가 친분이 있어서, 참여해볼 예정이다. 버닝 맨 페스티벌에 셰프 라인도 있거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요리해볼 생각이다.
그렇다면 먼 미래에는?
강원도에 내 땅을 마련해 그곳에서 요리하며 살고 싶다. 이를테면 서승호 셰프님처럼. 태어난 곳이 강원도 양양이거든. 논, 밭도 직접 경작하며 내가 키우고 잡은 식재료로 로컬 요리를 하고 싶다.
김태민│‘렁팡스’ 오너 셰프
당신의 요리 경험 중 렁팡스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다면?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를 하러 갔을 때였다. 비스트로에서 요리를 했다. 당시 나는 스물네 살이었는데, 그런 장르의 식당은 처음 봤다. 맛있는 냄새, 식기와 커틀러리가 부딪치는 소리, 북적북적한 사람들. 편안하고, 깔끔하되, 너무 클래식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나의 식당을 그런 느낌으로 완성하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조리과학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요리를 했던 것으로 안다.
그 시절 나는 사실 일본 요리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배워보니 나와 맞지 않더라. 너무 정적이어서. 처음 일식 실습 나갔던 때가 생각난다. 극도로 깨끗하고 정갈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썩 좋지 않았다. 프랑스 요리는 확실히 자유롭다. 나에게는 이탈리아 요리보다 프랑스 요리가 더 자유롭다. 이탈리아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여겨지는 몇 가지 요리들이 있지 않나. 무슨 파스타, 뇨키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 요리는 더 열려 있다.
김태민의 경력으로는 ‘메종 드 라 카테고리’와 ‘수마린’이 잘 알려져 있다. 그전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했나?
‘랩24’에도 있었다. 실험적인 요리를 하는, 연구소 개념의 레스토랑이었는데 굉장히 새로운 요리를 많이 했었다. 그런데 그런 요리는 또 내 성향에 맞지 않더라. 현대적이면서도 클래식한 요리를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고, ‘메종 드 라 카테고리’(이하 ‘메종’)에 가게 됐다. 요리를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내 식당을 여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오픈 준비 중이거나, 곧 오픈하는 곳에서 일하려고 했다. ‘메종’과 ‘수마린’은 딱 내가 원한 일터였다.렁팡스를 열면서 하고 싶었던 ‘김태민표’ 프랑스 요리란 어떤 것인가?
클래식과 모던 사이,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요리를 하려 했다. 누군가 메뉴를 보면 조금 생경하고 살짝 새롭고 그런데 또 이상한 요리 같지는 않다고 느낄 정도의 요리. 그런데 이 중간 지점의 요리가 정말 어렵다. 새로운 요리보다 더하다. 클래식한 건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실험적인 것에 치중한 요리는 수용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대개 실험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요리를 어려운 요리라고 말하지 않나. 요리사 입장에서는 좀 다르다.
본래 본인은 어떤 음식을 즐기나?
파인다이닝과 네오 비스트로 중에는 후자가 좋다. 너무 어렵지 않고, 맛있고, 조금 색다른 조합을 도출해낸 것이 네오 비스트로 아닌가. 모든 재료를 지나치게 가공해서 내지 않는 요리를 더 즐겁게 받아들인다.
렁팡스에서 내는 당신의 요리 중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메뉴가 있나?
새로운 걸 좋아하고 무엇보다 먹는 일을 즐기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한 요리에는 만족을 못한다. 지금껏 만족한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메뉴 괜찮네’라고는 생각하지만 말이다.
김태민은 주5일제를 실행하는 젊은 오너 셰프로도 유명하더라.
서울의 요리사는 대개 휴일에도 못 쉬고, 크리스마스에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나는 성인이 된 후 호주와 미국에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인지, 이런 룰이 당연하지 않게 보였다. 호주는 연말이면 레스토랑도 25일부터 일주일가량 쉰다. 요리사에게도 요리 이외의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렁팡스는 일요일과 월요일에 쉰다. 크리스마스에도 쉰다.
조준현│’미자카야’ ‘카페 나하’ ‘멘야 하노루’ ‘성광대도’ 셰프
일본 요리를 기반으로 한 식당과 술집을 내고 있는데, 첫 경력도 일본 요리사로 시작했나?
초창기에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주로 일했다. 그리고 장진우 회사 다닐 때, ‘장스시’라는 이름의 스시집을 잠깐 했다. 그때 솔직히 좀 거만하게,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5만5천원짜리 코스를 만들어서 시작했는데 결국 나중엔 코스를 없애고 스시 비중 줄이고 이자카야 요리를 많이 했다. 그때 단골이 굉장히 늘었다. 제일 욕을 많이 먹은 곳에서 제일 좋은 반응을 얻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일본 요리를 계속 파고들게 된 것이.
미자카야에서 요리와 술을 즐기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드라마 〈심야식당〉이 떠오른다.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사실 그 드라마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원했던 건, 일단 모든 손님이 우리가 요리하는 모습과 과정을 지켜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손님과의 호흡도 중요해서 바 쪽 좌석 외에는 어떤 자리도 만들지 않았다.
미자카야는 ‘망리단길’ 같은 요란한 수식어를 얻기 전에 망원동에 터를 잡았다. 어떤 기회에, 무엇을 기대하며 이 지역에 미자카야를 만들었나?
‘미완성식탁’의 사장과 친분이 있어 이곳에 오게 됐다. 사실 이 지역에 미자카야를 내면서 기대한 건 이런 것이었다. 홍대 앞에 가면 젊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그중엔 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 ‘연어 무한 리필’이라 쓰인 식당을 찾는 이들이 있더라. 그런 젊은이들에게 그 가격대에 훨씬 좋은, 더 맛있고, 새로운 요리들을 제안하고 싶었다. 이런 요리도 있다고. 그래서 비싼 식재료는 조금도 안 남기고 원가 그대로 팔기도 한다. 아직 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인 젊은이도 일찍부터 제대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경험해봤으면 했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목표는 어느 정도 잘 이룬 것 같다.망원동의 미자카야, 멘야 하노루, 해방촌의 성광대도는 모두 조준현과 친구들이 동업으로 이룩한 식당과 술집들이다. 아직 젊은 요리사에게 동업이란 ‘하고 싶은 식당’을 하기 위한 나름의 방편이었을 텐데, 지속적으로 뭉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나?
셰프인 나와 보조를 해주는 친구까지 3명이 함께하는데 우리는 일한 만큼 월급, 즉 사업 소득을 가져간다. 사실상 식당을 꾸려나갈 수 있는 주요 기술력은 셰프인 나에게 있고, 레시피도 모두 내 것이지만 내가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지 않는다.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고 직원에게도 공개한다.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훗날 더 큰 이익을 도모하고 싶으니까.
얼마 전 미자카야와 가까운 곳에 ‘카페 나하’라는 새 식당을 열었다. 망원동의 유명 카페 ‘스몰 커피’와 함께 만든 공간이다.
스몰 커피 사장님이 로스팅룸 만들 공간을 알아보시던 중 지금의 카페 나하 자리를 발견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공간은 좋은데 로스팅룸만 하기에는 너무 컸다. 우리도 마침 밥집을 하나 해보고 싶던 참이었기에, 식사도 팔고 커피도 파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일본의 키차텐과 같은 느낌으로.
서울 미식계의 메인스트림에서 떨어진 곳에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요리사로서, 지금의 이러한 포지션을 어떻게 생각하나?
동종 업계 선배들과 유대 관계가 없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은 그들의 바운더리 바깥에 존재하는 부류다. 그런데 나는 이런 포지션이 사실 좋다. 고급스러운 요리와 편안한 요리의 경계선에서 엄청 재미있는 것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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